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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 Jan 20. 2024

색채가 없는

독서일기 6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양억관 옮김. 민음사 2013)


난 이렇게 생각해. 사실이란 모래에 묻힌 도시 같은 거라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모래가 쌓여 점점 깊어지는 경우도 있고, 시간의 경과와 함께 모래가 날아가서 그 모습이 밝게 드러나는 경우도 있어.’(p.p229)     



나의 독서법은 이렇다.   

  

첫째, 2~3권의 책을 한꺼번에 읽어 나간다.

가벼운 책, 무거운 책, 중간 정도 집중력을 요하는 책 이렇게 읽는다. 예를 들어, 요즘은,

 ‘무의식의 마음을 그린 서양미술’, ‘국제개발협력,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읽는다. 뭐가 무겁고 가벼운지는 모르겠다. 세 권이 방향과 내용이 전혀 다르다는 것으로 구분할까?

     

둘째, 완독할 때까지 다른 일을 못한다.

책을 한 번 들면 결말이 궁금해 놓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전집을 읽으려면 해외여행 가는 것 만큼 연중계획에 넣어야 한다. 1~10, 1~12권짜리 전집 읽을 때는 사흘 또는 나흘 동안, 집 밖을 나가지 않을 때도 있다. 심한 경우 큰 식빵 두 봉지와 생수 몇 병 놓고 시작한 적도 있었다.

     

셋째, 읽은 책 다시 읽는 경우 거의 없다.

한번 꽂히면 다섯 번까지 읽은 책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10년에 한두 번 정도다.     

아~~

두 번 읽는 책 있다.

오늘 이 책, ‘색채가 없는~’

    

두 번 읽는 이유?

     

첫째, 이해를 못했다.

하루키의 소설답게 술술 읽혔는데, 재미있게 읽었는데, 읽고 나서 남는 것? 대체 무엇을 전하려 한 것일까? 내가 못 따라 가는 걸까? 놓친 것이 있나? 무언가 있는데, 못 찾겠다. 얻을 것있어야 하는데...그냥 독서 한 권 했다? 물론 읽은 후 남는 것 없어도 좋다. 하지만 이 책 미련이 남는다. 무언가를 건져야 할 것 같다. 이대로 반납하기 좀 억울하다. 이럴 땐 일단 보류다. 두 주 지나 다시 들었다. 첫 번째 읽을 때 붙여 놓은 포스트잇 다 떼고 다시 읽었다.     

어쩌면...

‘재능이란 그릇과 같아. 아무리 노력해도 그 사이즈는 쉽사리 바뀌지 않아. 그리고 일정한 양을 넘으면 물은 더 들어가지 않아.’(p.p232)

내 그릇은 이미 넘치고 있는지 모른다.


둘째, 나다.!!

색채가 없는, 개성이 없는 다자키는 바로 나다.!

나 역시 있는 듯 없는 듯 그런 인간이다. 화려한 언변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드는 외모도 아니다. 출석을 부르지 않는 한 왔는지 갔는지 모르게 존재감 없다. 1주일 내 찾는 전화 한 통 없을 때 많다. 까톡까톡, 땡! 광고 문자는 자주 받는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다시 나가는 일 거의 없다. 철 따라 이리저리 가구 배치하는 것, 예쁜 접시 사 모으는 것, 그 접시에 음식 데코레이션 하는 것이 취미다. 다자키가 그렇다, 내가 그렇다. 색채 없는 남자다.


그래서 다시 읽었다. 꼼꼼히 읽었다. 씹어 먹듯 읽었다. 두 번 읽게 하다니!

그리고 찾았다. 구구절절 맘에 드는 문구 찾았다. 포스트잇이 첫 번 읽을 때보다 두 배로 늘었다. 한쪽 걸러 한쪽마다 명문구다. 그중 위 문구에 꽂혔다. 하고 많은 문구 중에 이 말이 들어오다니. 다자키와 성향이 비슷해서인가?  


난 시간의 효용을 믿는다.

시간은 많은 것을 해결해 준다. 지독한 아픔도, 시련도, 사랑도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진다. 시간은 약이다.    

‘지금, 잔뜩 뿔이 오른 지금 해결하려 하지 마. 시간이 지나면 아무렇지 않게 돼.’

난 그런 성향이다. 그러니 이 말에 꽂힐 수 밖에.

그렇다고 막무가네 기다린다는 것은 아니다.

외면하고 회피하자는 것 아니다.

경중을 따지기 어려울 때 기다림을 선택한다는 의미다.

‘우리네 인생에는 어떤 언어로도 제대로 설명하기 어려운 게 있는 법’이니까. ( p.p 308)


진실이 승리한다고? 모래가 날아가 밝혀질 때 그렇다. 너와 나 사이 오해, 언젠가는 밝혀지겠지? 둘 중 하나다. 밝혀지거나 묻히거나.


      

바람이 분다.

모래에 묻힌 도시를 덮는 바람인지, 벗겨 내는 바람일지는 자연만이 알 것이다.

커티샥 한 잔과 「르 말 뒤 페이」가 필요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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