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6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양억관 옮김. 민음사 2013)
‘난 이렇게 생각해. 사실이란 모래에 묻힌 도시 같은 거라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모래가 쌓여 점점 깊어지는 경우도 있고, 시간의 경과와 함께 모래가 날아가서 그 모습이 밝게 드러나는 경우도 있어.’(p.p229)
나의 독서법은 이렇다.
첫째, 2~3권의 책을 한꺼번에 읽어 나간다.
가벼운 책, 무거운 책, 중간 정도 집중력을 요하는 책 이렇게 읽는다. 예를 들어, 요즘은,
‘무의식의 마음을 그린 서양미술’, ‘국제개발협력,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읽는다. 뭐가 무겁고 가벼운지는 모르겠다. 세 권이 방향과 내용이 전혀 다르다는 것으로 구분할까?
둘째, 완독할 때까지 다른 일을 못한다.
책을 한 번 들면 결말이 궁금해 놓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전집을 읽으려면 해외여행 가는 것 만큼 연중계획에 넣어야 한다. 1~10, 1~12권짜리 전집 읽을 때는 사흘 또는 나흘 동안, 집 밖을 나가지 않을 때도 있다. 심한 경우 큰 식빵 두 봉지와 생수 몇 병 놓고 시작한 적도 있었다.
셋째, 읽은 책 다시 읽는 경우 거의 없다.
한번 꽂히면 다섯 번까지 읽은 책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10년에 한두 번 정도다.
아~~
두 번 읽는 책 있다.
오늘 이 책, ‘색채가 없는~’
두 번 읽는 이유?
첫째, 이해를 못했다.
하루키의 소설답게 술술 읽혔는데, 재미있게 읽었는데, 읽고 나서 남는 것? 대체 무엇을 전하려 한 것일까? 내가 못 따라 가는 걸까? 놓친 것이 있나? 무언가 있는데, 못 찾겠다. 얻을 것있어야 하는데...그냥 독서 한 권 했다? 물론 읽은 후 남는 것 없어도 좋다. 하지만 이 책 미련이 남는다. 무언가를 건져야 할 것 같다. 이대로 반납하기 좀 억울하다. 이럴 땐 일단 보류다. 두 주 지나 다시 들었다. 첫 번째 읽을 때 붙여 놓은 포스트잇 다 떼고 다시 읽었다.
어쩌면...
‘재능이란 그릇과 같아. 아무리 노력해도 그 사이즈는 쉽사리 바뀌지 않아. 그리고 일정한 양을 넘으면 물은 더 들어가지 않아.’(p.p232)
내 그릇은 이미 넘치고 있는지 모른다.
둘째, 나다.!!
색채가 없는, 개성이 없는 다자키는 바로 나다.!
나 역시 있는 듯 없는 듯 그런 인간이다. 화려한 언변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드는 외모도 아니다. 출석을 부르지 않는 한 왔는지 갔는지 모르게 존재감 없다. 1주일 내 찾는 전화 한 통 없을 때 많다. 까톡까톡, 땡! 광고 문자는 자주 받는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다시 나가는 일 거의 없다. 철 따라 이리저리 가구 배치하는 것, 예쁜 접시 사 모으는 것, 그 접시에 음식 데코레이션 하는 것이 취미다. 다자키가 그렇다, 내가 그렇다. 색채 없는 남자다.
그래서 다시 읽었다. 꼼꼼히 읽었다. 씹어 먹듯 읽었다. 두 번 읽게 하다니!
그리고 찾았다. 구구절절 맘에 드는 문구 찾았다. 포스트잇이 첫 번 읽을 때보다 두 배로 늘었다. 한쪽 걸러 한쪽마다 명문구다. 그중 위 문구에 꽂혔다. 하고 많은 문구 중에 이 말이 들어오다니. 다자키와 성향이 비슷해서인가?
난 시간의 효용을 믿는다.
시간은 많은 것을 해결해 준다. 지독한 아픔도, 시련도, 사랑도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진다. 시간은 약이다.
‘지금, 잔뜩 뿔이 오른 지금 해결하려 하지 마. 시간이 지나면 아무렇지 않게 돼.’
난 그런 성향이다. 그러니 이 말에 꽂힐 수 밖에.
그렇다고 막무가네 기다린다는 것은 아니다.
외면하고 회피하자는 것 아니다.
경중을 따지기 어려울 때 기다림을 선택한다는 의미다.
‘우리네 인생에는 어떤 언어로도 제대로 설명하기 어려운 게 있는 법’이니까. ( p.p 308)
진실이 승리한다고? 모래가 날아가 밝혀질 때 그렇다. 너와 나 사이 오해, 언젠가는 밝혀지겠지? 둘 중 하나다. 밝혀지거나 묻히거나.
바람이 분다.
모래에 묻힌 도시를 덮는 바람인지, 벗겨 내는 바람일지는 자연만이 알 것이다.
커티샥 한 잔과 「르 말 뒤 페이」가 필요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