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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 May 08. 2024

누가 양보할 것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후문이 있다. (폐쇄했으므로 있었다.)

예전에는 정문보다 통행량이 많았다고 한다. 그 방향에 큰 마을이 몇 개 있어 등교 시간이면 교문이 미어 터질(?)만큼 걸어 들어왔단다. 문방구 앞에는 학용품과 불량식품(?)을 사느라 아이들 줄이 저 아래 도로까지 이어졌다나? (아무래도 과장 같다.)


그 후문을 지난 주 폐쇄했다.

통행이 없어서 그랬냐고?

아니다. 지금도 아침 저녁으로 꾸준히...할머니 세 분이 이용하신다.

물론 나도 가끔 후문 지나 마을에 있는 편의점을 간다.


할머니 한 분이 씩씩거리며 오셨다.

‘사람이 다니는 길을 그렇게 만들어 놓으면 어떻해요? 얼른 다시 만들어 놓으라고 하세요.’

‘예?’

‘후문 말예요. 아무리 땅이 좋기로서니 길까지 갈아 심으면 어떻게 하라고!’

이럴 때는 행동화가 최고다.

벌떡 일어나 달려가 봤다.

과연 코앞까지 갈아 엎어 놨다.

막무가내로 이렇게 하지는 않았을 거다. 필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마을 이장 왈,

‘그 땅 몇 번 주인이 바뀌고, 지금 토지주는 서울 사람이래요. 도지를 주었는데...’

사정은 어느 정도 아는 느낌 속에 곤혹스러움이 배여 있다.     

읍사무소에 문의하니,

사유지가 맞네요다.

     

사정은 이렇다.

후문을 둘러 사유지가 지나가고, 그 앞 5M에 국유지가 뾰족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예전에, 전전전전 주인이 문방구를 하고 살 때는 자기 땅으로 지나는 학생들 못지나게 막을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내 땅 내 놓으며 어서 오라고 할 정도로 좋았다. 학생들이 줄어 들고, 문방구에 동전 한 잎 떨어지지 않게 되었을 때, 미련없이 떠나기로 결심했다. 문방구를, 즉, 땅을 팔고 떠났다.

같은 동네 사람이 농사 지을 때는 차마 내 땅 지나지마 경계를 짓지 못하고, 길 만큼 손해 보면서 살았다. 땅이 몇 번 팔리고 팔린 땅에 대량으로 작물을 심는 사람들의 (주로 고구마, 대파, 도라지 등 전년도 농산물 가격에 따라 다르다.) 트랙터는 (올해부터) 정확한 경계로 땅을 갈았다.     

길이 없어진 대강의 상황이다.

     

수십년을 다닌 길이 없어진 할머니들은 차량 통행이 빈번한, 사람 다닌 흔적이 없어 말만 인도인 길을 몇백 미터나 돌아 오셔야 했다. 3분 거리를 15분이나 걸었다. (그 거리는 할머니들에게 천리 길이다.)

화 나실 만 하다.

     

방법은 간단하다.

그 땅을 사거나, 문을 없애거나다. 아니다. 토지주가 양보하는 방법, 농부가 조금 손해를 보는 방법도 있다. 물론 할머니들이 새로운 환경을 아무런 거부감 없이 받아 들이는 방법도 있다.


     

마이클 샌델은 말한다.

‘혼동 되는 상황을 생각하고 이를 정리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는 것이 바로 철학으로 가는 기폭제다.’

     

삶은 나에게 날마다 철학하기를 강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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