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짐은 또 다른 만남을 예고한다지만...
애틋한 이별을 봤다.
보는 내 가슴이 아팠다.
얼마나 애타는 얼굴이었는지 회상하는 지금도 절절하다. 멀어지는 사랑을 향하여 달려가지 못하는 대신 눈으로 쫓고 쫓다 더 이상할 수 없을 때의 절망감.
아~ 정말 사랑이구나.
(혹시 그 사람이 읽고, 그게 아니었어요, 왜 맘대로 해석하세요라고 할까봐 장소는 밝히지 못하겠다. 대신 다른 것은 모두 사실이다.)
지난 휴일 지방을 다녀왔다.
300여 km거리라 열차를 이용했다. 함께 간 일행의 출발지가 제각각이라 올라오는 예매 시각도 달랐다. 가장 빠른 사람 시간에 맞춰 역에 모이니 난 아직도 2시간여 남았다.
‘몇 시 출발이야?’
‘7:43’
‘난 9:36...’
‘너무 많이 남았네. 어떻할래?’
‘할 수 없지 뭐. 사람 구경도 재밌어.’
무심히 창구를 보는데...‘변경’이라는 표찰이 붙어 있다. 살아가면서 무언가 꽂히는 순간이 있고, 뭔가에 집착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하고 싶은 것, 끌리는 것’이라고 해야 하는.
그 말이 그랬다. 무슨 뜻인지 안다. 내 기차표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알지만 희박한 가능성에 망설이는 것보다 아예 시도도 하고 싶지 않은 포기에 더 가까운 마음으로 ‘시도’를 했다.
(되겠어? 하는 마음 9/10, 혹시 알아? 하는 마음 1/10)
마침 창구도 한산했다.
‘이 시각을 예매 했는데, 혹시 변경 되나요?’
‘네, 됩니다. 몇 시로 원하시나요?’
??! 뭐야?
‘가장 빠른 것으로요.’
‘7:28분 있습니다.’
전광판에 초록불이 켜진 열차다. (10분 남았다!)
‘주세요!’
번개처럼 변경하고,(물론 다음 역에서 환승하지만 어쨌든 처음 보다는 훨씬 좋다.)
멀뚱히 앉아 있는 친구에게,
‘나 먼저 간다.~~~’
‘어어어~~왜...내가 먼저인데...’
살다 보면 앞선 사람이 앞선게 아닐 때 많다.
이별의 장면을 보게 된 곳은, 환승을 하기 위해 내린, 동○○역.
KTX. SRT(아직도 두 기차의 차이점 잘 모른다.ㅠㅠ) 가 11번 선로, 12번 선로로 들어와 순식간에 사라진다.
몇 대인가 멈췄다 몇 사람을 내려 주고 그 만큼의 사람들이 타고 떠났다.
유치원쯤 되는 아이 둘 데리고 가는 젊은 부부, 친구인지 친척인지 구분이 안되는 부부를 배웅하는 사람, 멀리 사라지는 기차를 내내 지켜보는 것으로 보아 가족일 가능성이 높다.
휴일의 끝이라 그랬을까?
늦은 시각이라 그랬을까.
젊은 연인들이 많다.
여자 친구 손 꼭 잡고 기차에 오르는 그 순간까지 좀 더 가까이 있고 싶은 본능을 억누르며 손을 놓지 못하는 연인, 한 번 더 안아 주고 기차에 올려 보내는 남자, 그렇게 몇 쌍의 헤어짐이 있고, 이 기차 다음에 내가 탈 기차다하면서 바라보는데, 왼쪽 15도 정도였을 거다. 기차를 바라보는 여자(아마 20대 초반, 절대 중반은 넘지 않은)의 얼굴이 이상하다.
아~ 우는구나.
우는 얼굴이구나. (앳딘 얼굴이 잔뜩 구겨져 있어 화가 난 것으로 착각했다.)
유리창에 바짝 붙어 바라보는 남자를 향하여 가슴 높이의 손을 흔드는 건지 멈춘건지 조그맣게 흔들린다. 아마 눈물을 닦느라 더 이상 올리지 못한 것 같다.
울고 있다.
유리창 안의 남자(흐릿하여 구분은 어렵지만 앳되다.)도 손을 흔들고 창 밖의 여자는 울고 있다.(2024.5.15수. 밤. 비가 온다.~~~)
울든 웃든 시간은 흐르고 기차는 떠난다.
달려가는 기차를 향하여 몸을 돌리면서 선명하게 봤다.
여자가 울고 있다.
굵은 눈물이 두 볼을 타고 흐르는 것을 닦지 못하고 기차 꽁무니를 쫓고 있다.
살아가면서 수 많은 이별을 한다.
가슴 찢어지게 아픈 이별도, 돌아서면 잊혀지는 이별도 한다.
‘헤어짐은 또 다른 만남을 예고’한다지만 이별은 아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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