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기수
사회는 정신을 차릴 수 없이 급변했다. 민주화에 대한 요구와 행동이 컬러텔레비전으로 쏟아지고, 아시안 게임에 이어 88 올림픽의 열기가 온 나라를 달궜다. 승용차가 보급되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야구 중계 소리가 골목을 메웠다. 송탄에서 월세방을 많이 놓고 있다는 교감 선생님은 스텔라 승용차를 몰고 다녔다. 주변에 승용차 소유자가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가끔, 읍내 나갈 때 옆자리에 타보는 경험을 했는데 보는 것과 달리 출렁거려서 아주 맘에 들지는 않았다.
사회가 흘러가는 소리는 TV 속에만 있었지 산속 사택은 외딴섬이었다. 봉고로 도시에서 출퇴근하는 선생님들이 떠나면 오십 중반 교무주임 선생님과 둘만 남았다. 눈이 부리부리한 교무주임님은 사택 방안에 가만있질 못했다.
‘심 선생 저녁 먹은겨?’
‘예, 방금 먹었어요.’
‘그럼 나와.’
산을 한바퀴 돌고 약수터로 내려왔다.
‘이 약수터는 음기가 강해서 매년 고사를 지내야 햐. 그걸 좀 허술하게 하믄 꼭 동네에 한 사람씩 가출을 하는디, 누가 허는지 알으? 아줌니가 가출을 한댜. 거 장근이네 옥수네 다 엄니가 없잖여. 그래서 그런겨.’
지어낸 이야기인지 진짜인지는 모르겠으나 2, 4학년인 두 아이는 정말 엄마가 없었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약수터 순례가 산 너머 막걸릿집을 거쳐 읍내까지 갈 때도 있었다. 주로 오일장 날에 맞춰 갔다. 달빛 아래 교무 주임님의 인생 조언인지, 승진에 뒤처진(교감 선생님보다 나이가 많았다) 본인의 이야기인지를 중얼중얼 들으며 돌아왔다.
아이들과의 생활은 즐거움이었다. 열여섯 명. 여름이면 아이들 데리고 학교 앞 작은 개천으로 갔다. 작은 모래톱도 있고 수풀을 더듬으며 송사리도 잡고 물장구치며 놀았다. 돌아오는 길에 현지네 배나무밭을 지나면 축구공만 한 배를 몇 개 주었다. 등나무 그늘에 앉아 게임하며 먹었다. 한 입 크게 베어 먹기, 흘리지 않고 먹기, 냠냠 소리 내며 먹기…. 벌칙은 엉덩이로 이름 쓰기! 일요일에도 우리반 아이들 불러 (어차피 골목에서 놀았다) 들로 산으로 쏘다녔다.
봉급이 생각보다 많았다. 재형저축 하나 들고 나머지는 놀러 다니며 썼다. 2년을 아무런 생각 안 하고 보냈다. 허우적거리며 달려온 다리가 휴식을 필요로 했을까? 다시 일어서 달리기 위한 충전의 시간이었을까? 책 한 권 읽지 않고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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