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

37. 기수

by 재학

가지 않은 길을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시간이 지나고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다른 길을 선택했다면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아무도 모른다. 삶에 가정이 있을까?


발령이 적체되는 시기였다. 재작년 졸업한 선배가 이번에 발령 났다더라, 작년 졸업생은 대부분 먼 곳으로 갔다더라, 너희들은 기본적으로 1년은 기다려야 할 거라는 말이 들렸다. 자취방에 남아 있는 것도 어렵게 되었다. 고향으로 돌아왔다. 낡은 자전거로 골짜기를 돌아다니며 분노와 좌절을 삭였다. 이 시기가 휴지기였으면 좋으련만, 그렇게까지 만들지 못했다. 열패감이 앞섰다. 뭐가 부족했지? 다른 사람보다 못한 게 뭐였지? 왜 세상은 노력한 만큼 돌려주지 않는 거야.

삶은 잠깐의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오랜 고난을 갖는다. 고난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기다림의 시간이라는 의미다. 기다림은 인내와 고독을 요구하기에 고난이라 생각한다. 열여섯 소년이 스물여섯 살 청년이 되었다. 하루도 쉬지 않고 달렸다. 그 결과가 지독한 고독이었다. 결과는 어떤 위로도 주지 않았다.

‘고독이 끝나지 않았구나.’

문득 어느 골짜기를 걷다 고독은 이겨내라고 오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한 달여 보내다 인근 도시에 사는 막내 고모 집으로 갔다. 고모 집에 얹혀살며 기간제 교사로 1년을 보내고 올림픽의 열기로 가득하던 88.3.1.자로 발령을 받았다.

안성


버스가 하루 세 번 들어오는 조그마한 시골 학교가 초임지다. 작은 가방 하나 들고 부임했다. 50년이 넘었다는 흙벽돌을 쌓아 만든 사택 방 한 칸을 준다. 밤이면 젖을 뗀 새끼 고양이가 베니어합판 천정에서 덤블링을 하고, 마당 작두샘에서 퍼 올린 물로 씻었다. 작은 마루에 앉으면 학교 뒷산으로 날아드는 산 새 소리가 한가로웠다. 옆방 교무주임 선생님은 자주 집에 가셔서 혼자 차지가 되었다. 수수꽃다리 향기를 마시며 혼술을 했다.

여기 오려고 그렇게 치열하게 살았나 싶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