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기수
신문이나 텔레비전에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한 인생 이야기, 주경야독의 성공담이다. 그중 2/3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많나? 정정한다. 1/3! 천재가 아닌 이상(설령 천재라도) 하루 10시간 공부하는 사람과 낮에 일하고 밤에 피곤한 몸으로 책상에 앉는 사람은 출발부터 다르다.
재수에 실패했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할 때 선택은 했으나 집중을 못했다 특차 실패, 전기 실패, 후기에 원서를 넣은 대학은 우수한(?) 순위로 합격했다. 후기는 오기로 넣었다. 합격해도 가지 않을 생각으로 지원했다. 재수해서 합격했다는 기분을 맛보고 싶었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눈물이 났다. 늦은 밤 한강 다리를 건너며 강물만큼 많은 눈물을 흘렸다. 한겨울 강바람이 춥지 않았다. 실패해도 돌아갈 곳이 있다는 안일함 때문이었을까? 주경야독의 한계 때문이었을까. 한 번의 행운을 믿은 결과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돌아온 대학은 낯설었다. 정을 붙이지 못하고 겉돌았다. 강의가 없는 날이면 예전 수석 가게에서 일할 때 배운, 돌을 주우러 다녔다. 4년 동안 전공 서적을 몇 권이나 샀을까? 두 권? 세 권? 수업에 필요한 부분만큼 다른 사람의 책을 복사하고, 소설처럼 쓴 리포트를 제출했다. 학생 운동, 수많은 축제와 동아리 활동 모두 시큰둥했다. 여기 오려고 그렇게 살았나 싶은 마음에 힘들었다. 학교 앞 막걸리 주점에서 한 학기를 보내니 오기가 발동시켰다. 여기서 주저앉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방황이 기다리고 있음을 나중에 알았다.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안 되어 있으면 얼마나 힘든 시간을 지나야 하는지, 삶은 실패에서 배운다지만 고집과 오만이 앞을 가리면 또 다른 실패가 기다리고 있음을….
동네 형이 서울 소재 법대를 다녔다. 시골에 갈 때마다 형에게 갔다.
‘젊음은 불태우려 있는 거야. 그럴 만한 목표를 찾아서 한 번쯤 태우는 것도 멋진 일이야.’
형은 집보다 마을 뒤 재각에서 생활했다. 두툼한 책을 쌓아 놓고 밤낮으로 읽었다. 사법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해질녘 하천 둑을 걷는 모습도 멋져 보였다. 그래, 젊음은 불태우려 있다 했지? 태워보자. 멋지게 한 번 태워보자.
법전을 들었다. 고시 대열에 합류했다. 학교 도서관 자리 중 하나가 졸업할 때까지 지정석이 되었다. 학과 누구하고도 어울리지 않고 매달렸다. 결과는 비참했다. 평균 C+ 성적으로 졸업을 했고, 고시는 1차도 붙지 못했다.
법학 교육을 통해 잘 훈련된 법률가와 법학 환경이 만들어진 곳에서 법률적 정신으로 출발했어야 하는 공부를, 법과는 전혀 관련 없는 대학에서, 법을 공부했던 사람도, 법을 공부하는 사람도 없는 대학에서 법 공부를 했으니 출발부터 잘못이었다. 실패의 쓰라림만 되씹었지 반성을 못했다. 실패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결과는 이후 또 한 번의 실패를 만나게 되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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