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기수
올림픽이 끝나고 생활이 하루가 다르게 변했다. 손으로 쓰던 공문서가 1년 만에 타자기로 대체되더니, 다음 해에는 컴퓨터 연수를 시킨다. 수업 끝나면 자전거로 읍내에 나갔다. 당시엔 학교마다 공문 수발용 자전거가 하나씩 있어 학교 아저씨가 타고 다니며 공문을 받아 왔다. 1시간 거리 교육청 과학실에 열심히 다녔다. 그림 하나 띄워 놓으면 한줄 한줄 10분 동안 나타나던 8비트, 이상한 사진을 띄우던 선배는 무안해 어쩔 줄 몰라 하고, 주변에서 그거 놔두라고 웃던 모습이 선명하다.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은 도로에 자동차가 많아진 것이다. 하늘색 프레스토는 드문드문해지고 엑셀, 프린스가 늘어났다. 엑셀은 회색이 많았고, 프린스는 대부분 검정이었다.
무엇보다 주거 형태가 아파트로 이동하고 있었다. 아파트가 도시를 점령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변화의 가운데 서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엔 어떤 모습일까?
교감 선생님 꾸중(?)을 듣고 글씨를 바꾸기로 했다.
‘심 선생, 글씨가 너무 그림이야.’
‘알겠습니다!’
이 역시 읍내까지 가야 한다. 저녁 챙겨 먹고 창고에서 자전거 끌고 읍내로 달렸다.
옆방 교무 주임님은 논 살피러 가신 이씨 아저씨 오실 때까지 숙직실을 지켰다. 읍내를 부지런히 다녔지만 넘쳐 나는 시간을 산골에서 보내는 것이 힘들었다. 외로움보다는 뒤처지는 기분, 멈춤에서 오는 방향 상실감이랄까? 그런 것이 힘들었다. 수원으로 내신을 냈다.
결혼생활을 자가로 시작한다는 것이 처음부터 계획이다. 대출을 잔뜩 앉고 아파트를 샀다. 영혼까지 끌어모은다는 표현은 30여 년이 지나 나왔지만, 당시에도 그랬다.
11평 신매탄 주공아파트. 아파트를 사지 않으면, 변화의 바퀴에서 떨어지면 다시 올라타기 힘들 것 같은 조바심이 일었다. 떨어지는 순간 낙오라는 생각에, 지금 아니면 영영 못 살 것 같은 조바심에 앞뒤 가리지 않고 계약했다. 너도나도 아파트를 말하니 당연히 아파트여야만 했다. 아파트에 산다면 왠지 도시적인 느낌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고 마당 있는 주택이 로망이 된 것을 보면 주거 형태도 유행이다.
그동안의 저축과 두 사람의 대출을 모으면 될 것 같았다. 최대치의 대출을 계산하고 계약을 했다. 대출을 신청하면 막 해 줄 것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고쳐지지 않는다. 모을 수 있는 대로 끌어 모았다. 봉급이 나오는 농협을 가니 보증인 두 사람이 필요하단다. 교무 주임님과 선배에게 부탁했더니 흔쾌히 들어 준다. 부모 자식 사이에도 안 서준다는 보증을 서 준다니. 얼마나 고마웠던지 저녁 거하게 먹고 술도 2차를 했다. 고마웠다.
다음 날 은행 문 앞에서 선배가 미안하다고 마누라가 알면 큰일난다며 돌아섰다. 최소한 절반이라도 갖고 시작했어야 하는데, 겨우 30%도 안 되는 돈으로 계약을 덜컥 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