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기수
어떤 조직이든 승진이 있고 그 자리는 소수고, 승진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 대한 대우가 다르다. 교직도 마찬가지다. 학교에서 승진이라고 하면 교감- 교장이 되는 것이다. 교감이 되면 대부분 교장까지 갈 수 있지만, 교감 되기가 힘들다. 대체로 전체 교원의 4~5% 정도가 50대 중반에, 교장으로 승진한다고 보면 된다.
시험 봐서 하루 아침에 교감 교장이 되는 것 아니다. 근무 경력 채워야지, 연구, 농어촌 도서벽지 근무도 필수다. 거기에 수업 실기, 돌봄교실, 청소년단체 활동, 담임, 부장 경력, 학교폭력 업무…. 평정표가 꽉 찬다. (지금은 바뀌었지만 대동소이하다) 마지막 3~4년은 높고도 높은 산 근무평정이 기다린다.
운이 좋았다할까? 고시공부다 뭐다 하는 와중에 왠만한건 확보 해 놓았다. 어떤 것은 넘치고 있었다. 부족한 것을 넘치는 것으로 채우면 얼마나 좋을까. 지역 점수가 문제였다. 한수 이북, 파주, 연천, 포천 중 파주는 대표적인 가산점 획득 지역이었다. 나이는 마흔이 넘어 가고 있었다.(보통 이 점수를 먼저 확보해 놓지만 반대가 되었다)
늦게 시작한 만큼 각오했지만 힘들었다. 미군이 떠난 지역은 예전의 활기가 사라지고, 동남아인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굉음 소리가 나면 창문으로 달려가 끝없이 이어지는 전차 행렬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봤다.
많은 것이 낯설었다. 이견이 용납되지 않고, 경력이 무시되었다. 너무나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업무 분장 회의에 놀라고 명확한 줄서기에 놀랐다. 제왕과 같은 관리자, 까마득한(?) 후배들의 텃세에 더하여 매일 밤 술자리가 이어졌다. 술 못 먹어요? 는 너희들과 어울리지 않을 거야가 되고 이는 곧 승진하지 않을 거라는 말이다. 2차 3차로 이어지는 술자리는 양주에서 넘어오는 막차를 놓쳤고, 경의선을 타지 못하면, 아쉬운 소리 해 대며 숙직실로 기어들어 가거나 방 하나 있는 후배 관사로 갔다. 거의 날마다 그렇게 했다. 으쌰으쌰에 끼지 못하고 뒤돌아 내려가는 이들이 많았다. 동화도 겉도는 것도 아닌 상태로 한 학기가 지나고 있었다.
수업? 교재 연구 부지런히 하면 즐거운 수업이 된다. 업무 별것 아니다. 조금 늦게 남아, 1안 2안 3안 중 하나면 관리자 만족시킬 수 있다. 문제는 사람이다. 학교 누구하고도 척지지 않는, 언제나 즐거운 종천이 신기했다. 수요일이면 좋아하는 술자리도 뿌리치고 수원으로 달려갔다.
‘수요일마다 수원을 왜 가?’
‘레지오 있어요.’
‘그게 뭔데?’
한 달 인가 지난 어느 일요일, 후곡성당을 찾았다. 무조건 갔다. 다른 사람 따라 하는데 수녀님이 잡아당긴다.
‘교리반 먼저 하세요.
그렇게 해서 베네딕토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