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

41. 기수

by 재학

담배를 단칼에 끊었다는 사람을 보면 사람 같지 않다. 신이나 동물이라는 뜻은 아니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했다는 뜻이다. 열아홉 살부터 피운 담배를 사흘 끊고 다시 피고 한 달, 1년, 3년… 손가락 발가락 다 동원해도 모자랄 만큼 시도하다 끊었다.

맺고 끊는 것이 안 된다. 누구는 신중하다 하고 누구는 중간자(좋게 표현해서)라고 한다. 가능성 없음을 알았으면 단칼에 돌아서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성격이다. 물론 어느 것은 그렇게 하는 면도 있다.


진즉 가능성 없음을 알았으면 돌아서야 했거늘 놓지 못했다. 쉽사리 놔버린다면 꿈이 아닐 수도 있다는 자위를 하지만 맘대로 안되었다. 큰아이 세 살. 얼마나 예쁠 때인가. 방긋방긋 웃는 얼굴만 보고 있어도, 온종일 함께 있어도 좋은 시간에 퇴근하고 근처 대학 도서관을 갔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교수연구실 문을 두드렸다.

‘도서관 출입증이 필요합니다.’

키가 작고 머리가 벗겨진 노교수님은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더니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도서관 출입 신청서

합격의 자신보다는 위로받고 싶었을 것이다. 해 보고 싶은 것을 해 봤다는 만족감을 얻고 싶었는지 모른다. 다시 고시 공부에 매달렸다. 서른 중반이 다가오고, 가정과 직장을 다니면서 책을 든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한 번만 더 할게. 해야겠어. 이대로 주저앉기에는 너무 억울해. 여기 오려고 그렇게 고단했나 싶은 생각을 하면….

그래, 해 봐. 대신 이번이 마지막이야!

큰아이 안고 신림동 서점에 갔다. 버렸던 책을 다시 샀다.


체력과 시간 모든 것이 불리했다. 검정고시, 재수하면서 얻은 실수가 반복되고 있었다. 고집 때문에. 도서관에 앉아 30분도 안 되어 졸음이 쏟아졌다. 생과 사처럼 분투하다 1시간 만에 일어섰다. 장소를 바꿔보자. 동네 독서실(이름도 그리운 동양 독서실)로 옮겼다.

1년

짧게 끝났다.

기수의 꿈은, 원대한 꿈은 그렇게 흘러갔다. 홀가분했다. 편했다. 퇴근하면 집에 달려와 옹알이하는 큰아이와 노는 행복도, 한잔하는 즐거움도 좋았다. 즐거운 시간은 빨리 간다. 둘째가 태어나고, 자동차가 생기고, 학교를 두 번 옮기니 30대 후반이 다가오고 있었다.

‘승진 준비 젊었을 때 해야 해.’

술자리에서 선배들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은 즐거운 시간이다. 내 인생에 이렇게 홀가분할 때가 있었던가.

가끔, 흘려보낸 꿈이 그리워지기는 했다. 그때 그 길을 갔더라면 지금 어떤 모습일까? 열심히 살았던 시절이, 한순간도 헛되이 보내지 않았던 시절이 그리웠다. 현실에 불만이 있었냐고? 그렇지 않다. 자주색 자동차로 맛집 찾아다니고, 백화점 가고, 자연농원으로 설악산, 민속촌으로 아낌없이 돌아다녔다.

하루를 마감하고 저녁노을 넘어 먼 산이 희미해지는 것을 바라보다 불현듯 떠오르는 아련한 흔적이 그리워지기는 했다.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 이제는 늦었다는 절망감을 떨쳐 내며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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