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살에 떠난 여행

43. 기수

by 재학

답답할 때, 힘들 때, 버거울 때, 술, 담배 무엇도 도움이 안될 때가 있었다. 무엇이 힘들었냐고? 현실적인 문제다. 무리해서 마련한 집 대출로 수입의 대부분이 나가고, 자리다툼이 본격화하는 직장, 아이들 사춘기, 진학, 형제 사이 갈등…. 수도 없이 많은, 살아가면서 만나는 그런 일들이 힘들 때, 대부분 마흔 안팎의 나이에 만나는 일들이다. 그런 일은 왜 한꺼번에 오는지.

지금이야 수양이 되어(?) 실개천 산책이나 동네 뒷산만 가도 해소 되지만(??) 예전엔 그렇게 현명하게 해소하지 못했다. 온몸으로 표현하고 풀었었다.(지금 생각해도 부끄럽다)

나를 찾아서


평소엔 무심히 지나칠 말이지만 그때, 마음이 그럴 때 눈에 띄면 팍 꽂힌다. 나를 찾을 수 있단다. 복잡다단한 삶에서 떠나자. 잃어버린 나를 찾을 수 있단다. 떠나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템플스테이


여주 신륵사에서 했다. 1시간 거리라 방학하는 날 바로 출발했다. 당시 갖고 다니던 레토나 밴에 되는대로 싣고 달렸다.

11명이 모였다. 30대에서 50대, 종교도 직업도 다양했다. 지하철 공사 다니는 50대, 무역회사 대리, 자영업…. 새벽부터 저녁 잠자리 들 때까지 총무 스님의 안내에 따라 일과가 진행되었다. 20년도 더 지난 기억이지만 3박 4일을 알차게 보냈다는 기억이 있다.

3일째 날이었지?

첫날부터 무심히 흘려주던 만 팔백 배를 한다고, 점심 먹고 모이라는 공지가 왔다. 모두 약간의 도전감, 흥분, 기대를 안고 한 손에 수건 하나씩 들고 갔다. 평소처럼 잔잔한 미소의 총무 스님이 어마어마하게 긴 염주(3,000개라고 했나?)와 이쑤시개처럼 작은 나뭇조각 한 움큼을 바닥에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힘들면 중간에 멈춰도 됩니다’

네 시간 걸렸나?

1시간마다 쉬는 걸 세 번 했으니까. 앞에서 이끄시는 총무 스님은 기다란 염주가 한 바퀴 돌 때마다 이쑤시개(?) 하나씩을 얹었다.

체격이 좋은 서른다섯 살 이 대리가 먼저 떨어져 나가고, 다음에 도배 일을 한다는 엄 사장, 지하철 공사 부장 순으로 주저앉았다. 한 번 앉은 그들은 몇 번 시도와 멈추기를 반복하다 결국은 끝날 때까지 앉아버렸다.

멈추고 싶은 마음이 굴뚝처럼 솟았다. 잠깐 쉬다 다시 하면 되잖아. 끝까지 안 했다고 누가 뭐라 하는 것 아니고 힘들면 쉬었다 따라와도 된다고 했잖아. 5분만 쉴까? 잠깐만 앉았다 다시 합류할까?


고집이 있다. 스스로에게 지지 않는, 지고 싶지 않은 고집이 있다.

설정한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고집까지 있다.

첫 한 시간이 힘들었다. 이쑤시개가 절반을 넘어 가며 감각이 사라졌다. 무념무상이 찾아왔다(?). 끝나고도 널브러지지 않았다. 완수한 세 명 중 한 명이 되었다. (총무 스님까지 네 명이다)

방학 끝나는 날 둘째 아들을 데리고 과일 사 들고 찾아갔다. 총무 스님은 여전히 잔잔한 미소만 보여 주었다.


템플스테이 마치고 고락(?)을 함께한 동기들은 몇 번인가 만남을 유지했다


그리고 만팔백배는 오랜 시간 성취감으로 남았다.

매거진의 이전글베네딕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