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지 팔달산

10.남자

by 재학

소음이 사라지고 뒤이어 한 남자가 나타난다. 오른쪽 어깨에 가방이 걸려있다. 다가올수록 남자의 모습이 드러난다. 허름한 옷차림, 낡은 안전화를 신었다. 신발이 크다. 어깨에 걸린 가방이 축 늘어져 있다. 길을 걷는 것보다는 앉을 자리를 찾는 것이 목적인가 보다. 그런 자리가 쉽지 않다. 벤치마다 누군가가 하나씩 차지하고 있다. 세 사람이 앉을 수 있는 벤치에 한 사람이 앉아 있어도, 끄트머리에 앉아도 눈치가 보이는지, 먼저 차지한 사람으로부터 온몸으로 표출되는 싫음을 막아낼 자신이 없는지. 한쪽이 빈 벤치를 지나쳐 간다. 오르막 못 미쳐 하나를 발견했다. 사람의 왕래가 빈번하여 선호도가 떨어지는 벤치다. 조금 전까지 할머니 한 분이 차지하고 있었다. 앉을 만큼 앉았던 것인지, 다가오는 남자의 몰골 때문인지 할머니가 일어서 비켜난 덕분에 남자의 차지가 되었다. 남자는 벤치에 앉아 잠시 왔던 길을 바라본다. 가까이 당겨 살펴보자.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맞은편 소나무 숲을 올려다본다. 그냥 시선을 옮기는 것뿐인 것 같다.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을 꺼내 화면을 열어 본다. 화면을 바꾸기 위하여 손가락이 움직이는 것 같지 않다. 화면의 불빛이 사라진다. 남자는 그렇게 핸드폰을 손에 들고 멀리 도시가 저물어 가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남자의 등 뒤로 조선의 개혁군주 동상이 남자와 같은 방향으로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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