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는 옅어지지 없어지지 않네
70퍼센트 이상의 마음이면 고
대학생 이었을 때 그리고 졸업 후 몇 년간 자주 생각했던 말은 '인생에는 세 번의 기회'가 있다는 말이었다. 이십 대 이후에도 인생이 이어질 것을 몰라서, 다시 말해 세 번의 아니라 여러 수십 번의 크고 작은 기회가 노상 내 눈 앞에서 혹은 꼭꼭 숨어라 하고 있을 거라는 걸 미루어 짐작하지 못해서 그 때의 나는 적어도 두 번, 아니 합치면 한 번의 기회를 놓친 건 확실하다며 손가락으로 헤아리며 때때로 후회를 했다.
대학에서 일어일문학을 전공했는데 같은 과 학우들은 2학년을 전후해서 유학원을 통해 일본으로 어학연수를 갔다. 나를 포함해 우리 셋도 그 길을 고민했는데 둘만 일본에 갔다. 1년간 연수를 가 있으려면 당연히 많은 돈이 필요했기에 친구들은 여름방학에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니 집에서도 도움을 받아야 했다. 나는 결국 가지 않기로 하였는데 두 가지 이유였다. 돈이 없어서였고, 보내달라고 집에 말을 할 용기가 없어서였다. 보란 듯이 나는 한국에서도 일본어를 잘 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쓰면 세 가지인가? 아니다. 두 가지가 맞다. 못 갈 것 같으니까 나는 한국에서도 잘 할 수 있다고 합리화를 한 것이기 때문이다.
외국에 나가 지낸다는 건 다만 그 나라 언어를 익히는 것만은 아닌데, 그 때 나는 그 생각을 못했다. 그렇다고 1년간 혼자 학교를 다니면서 일본어를 잘 하게 되었냐면 당연히 아니다. 늘 함께 하던 친구가 없이 혼자일 때 이럴때야말로 연애를 해야 한다고 친구가 말했지만 그마저도 시들시들했다. 졸업하고 나서, 뒤늦게나마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내가 벌어서 가야겠다고 생각해 유학원 가서 상담을 했는데, 필요한 서류 중에 부모님의 직장..뭐지?원천징수 그런 서류가 필요해서 엄마에게 조심스럽게 말해봤는데 그런 걸 떼기가 쉽지 않다며 곤란해 하셨다. 그 때는 번거로워서 안해주나 싶어 섭섭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름의 사정이 있으셨던 것 같다.
그 즈음 많이들 가곤 했던 워킹 홀리데이 비자도 준비를 해 보았으나 대차게 떨어졌고.. 일본에 갈 기회를 날린 것에 대해 한 번씩 생각한다. 당시에는 일본어를 현지에서 배울 기회를 놓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었으나 지금은 거기에 하나가 더 붙었다. 다사다난하고 힘든 일도 많았겠지만 그래도 1년간 타국에서 지내보는 기회가 흔히 오는 것이 아닌데, 거기서 얻는 게 어마어마할 텐데.. 하여 역시 아쉽다.
용기가 없고 핑계는 많아서 연수는 다녀오지도 못하고 열심히 공부하지 않아 일본어도 시원하게 잘하지 못하고 전공 살려 취직은 했으나 정작 영어로 된 인보이스만 실컷 만들다 퇴사한 나는 그렇다면 그 길을 갔더라면 신나게 전공 살려 일을 하고 있을까? 알 수는 없다. 어차피 모두가 전공대로 진로를 정하는 것도 아니고 일을 선택하는 이유와 기준은 사람의 수만큼이나 다양할 테니 말이다.
이제는 그런 것이 내 일상에 영향을 미치기에는 너무 미약해졌다. 시간이 많이 많이 흘렀고 그 때는 미루어 짐작하지 못했던 결혼 후 애 낳고 키우는 삶에서 매일 백팔번뇌와 후회가 휘몰아치기 때문이다. 헌데 가지 않은 길이라는 주제에 정작 이런 글을 쓰고 있다니.. 오래 간다 오래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