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반성문
이 한 장으로 끝나야 할 텐데..
요며칠 저는 마음 상태가 꽤 불안정해서 어디든 누구든 붙들고 하소연을 하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 기분인 상태로 글을 쓰면 키보드를 때려 부술 듯 글자들이 하염없이 넘쳐났을 거예요. 근데 그러질 못했고, 그 다음에는 정신상담을 받고 싶었어요. 내가 유명한 사람이라면 <금쪽상담소>에 신청이라도 해 봤을 텐데. 그러질 못하니 <금쪽같은 내새끼>나 <금쪽상담소>를 가급적 챙겨 보려고 합니다. <금쪽같은 내새끼>는 아이에 대한 고민을 다루지만 결국 그 아이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부모에게로 시선이 옮겨지니 어느 프로든 매번 출연하는 사람들에 저의 모습이 보여 마치 제가 상담받는 양 진지해질 때가 많습니다.
봄에 계약했던 새 자동차를 이달 초에 받았는데요, 그저께 밤에 잠시 드라이브를 다녀오려고 나섰는데 차를 가지러 지하주차장에 간 남편이 한참을 안 나오는 거예요. 이중 주차가 되어 있었나 보다 하고 기다리다보니 곧 나오더라구요. 그런데 표정이 좋지 않은 채 내리더니 차 옆면을 살피는 거예요. 아이고, 미세하긴 하지만 패인 자국과 길이가 짧긴 한데 칠이 벗겨질 만큼 긁힌 자국이 두엇 있었어요. 이중주차가 되어 있는 차를 밀기에는 어중간해서, 그리고 먼지 많은 타인의 차에 굳이 손 대고 싶지 않아서 그냥 빼려고 시도하다가 기둥에 긁힌 모양이었어요.
저는 너무 속상했어요. 너무 속상하고 너무 다양한 이유로 속이 상해서 말이 다 안 나올 지경이었어요. 택시에 손 대기 싫어서 라고 중얼거리는 남편이 너무 미웠어요. 왜 좀 밀면 안되나요? 손은 닦으면 되잖아요? 그냥 나도 따라 내려갔어야 했는데, 그럼 내가 밀었을텐데 하는 후회도 밀려왔어요. 저는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있을테니 차를 빼오라고 한 거였거든요. 이 차에 최초로 스크래치는 제가 만들 거라고 생각했어요. 십 년 넘게 탄 우리 차 긁어먹은 게 대부분 저였으니까요. 차라리 남편이 먼저 긁어놓는 게 내 마음이 편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만도 않았어요.
차라리 긁힌 게 더 크면 정비를 맡기겠는데 내 손톱만한 길이라 애매한 것도 짜증이 났어요. 정비소에 갔는데 대수롭지 않다며 나를 유난하다 취급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러고 있는데 남편이 옆에서 다음달이나 다다음달에 차키 나오면 그 김에 가서 한 번 봐달라고 하면 되겠다고 말하는 거예요. 다다음달? 라고 되묻는 제 목소리가 날카로웠는지 남편이 저더러 정비소에 갈 시간이 되느냐고 묻더라구요. 날이 밝으면 당장 갈 거라고 말했어요. 제가 그렇게 말하는데도 회사에서 컴파운드를 가지고 와서 칠을 해 보겠다고 말하길래 내가 정비소에 가겠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말하니 알겠다고 하더라구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미안하다고 남편이 말하는데, 알아들었는데도, 너무 화가 나고 속이 상했어요. 차를 받고 육 개월이나 지나서 긁혔으면 덜 속상했을까? 나는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이렇게 화가 나는 지 알 수도 없었어요. 내가 만약에 차를 긁어먹고 남편이 이렇게 인상을 쓰고 있으면 저는 억울하고 서러워서 울어버렸을 거예요. 그걸 알겠는데도 마음이 안 풀렸어요.
그리고 70만원에 안녕을 한 이 앞에 타던 차가 생각났어요. 한 번은 밤에 친정에서 차를 빼서 나오다가 트럭 옆을 지났는데 그으으윽 소리가 길게 났어요. 너무 놀라서 내려서 보니 옆면이 앞문부터 뒷분까지 다 그여 있는 거예요. 트럭에 철심 같은 게 삐져 나와 있었나 봐요. 너무 속상하고 남편한테 눈치도 보이고 좀 더 크게 돌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후회도 되었어요. 남편은 덤덤하더라구요. 그럴 수도 있지. 라구요. 고마웠어요. 저는 차를 수리하고 싶다고 말했더니 그건 안된다고 하더라구요. 차의 기능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안에서 운전하면 밖이 보이지도 않는다, 보험으로 수리하면 다음해에 보험료가 많이 오른다는 이유였어요. 차가 오래되었다는 것도 한몫했겠죠. 틀린 말이 하나도 없어서 그냥 타고 다녔어요.
그런데 저는 차를 탈 때마다 그 상처가 보여서 너무 싫었어요. 남편이 뭐라든 말든 고쳤어야 했는데, 보험료 오른다고 집 기둥뿌리 뽑히는 것도 아닌데. 지금이니까 이렇게 말하는 걸 수도 있지만요. 그 때나 지금이나 남편의 말은 별로 틀린 게 없어요. 이번에도 남편이 잘못한 건 없어요. 택시에 손을 대기 싫을 수도 있죠. 차를 긁어 먹을 수도 있죠. 어차피 시간 문제였으니까요. 이런저런 거 다 차치하고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냉큼 기분이 풀어져야 하는데도 저는 너무너무 속이 상하고 화가 났어요. 차가 긁힌 그 순간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 남편은 이내 저한테 이 말 저 말 걸고 했는데도 저는 대꾸를 하나도 하지 않았어요.
내 차가 긁혀 속이 상하면 내가 해결을 하려고 하면 되는데, 남편의 반응이 무성의해서 화가 났던 것 같아요. 큰 마음 먹고 샀는데 애지중지 하지 않는 것에 화가 났어요. 그렇다한들 차 조금 긁힌 거 가지고 남편한테 이렇게까지 화가 나는 저 자신도 옹졸해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저는 기어이 어제 아침 정비소에 갔는데 차 색상에 맞는 페인트가 현재는 없어서 주문을 해야 하고 시간이 걸릴 거라는 답을 들었어요. 남편에게 이렇게 이야기하니 인터넷에서 비슷한 색을 구입해보겠다길래 싫다고 했어요. 하루가 지나도 제 목소리가 그따위니 내가 남편이라도 슬슬 열이 받겠다 싶을 정도였어요. 오후가 되어 평소연락을 잘 하지 않는 동창이 도색일을 하는데 거기 전화해보니 와 보라고 했다 라며 남편에게 연락이 왔어요.
그 즈음에는 이유도 모르게 화가 치솟았듯 자연스럽게 기분이 괜찮아지고는 있었는데 남편이 저렇게 말하니 마음이 좀 풀리는 것 같았어요. 남편은 한 번씩, 혹은 자주 '대충 하자' 라는 말을 해요. 몰랐는데 저는 그 말을 듣기 싫어하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 말을 들을 때 마다 짜증이 솟구쳐요. 제가 완벽주의자는 절대 아니구요. 헐랭이에요. 그래도 마음은 안 그러거든요. 뭘 대충해, 정성스럽게 해야지 하며 대꾸를 하긴 하는데 마음 속에 맺혀 있었나봐요. 그러던 차에 차가 긁힌 것도 대충이라는 말은 안 했지만 하는 말에 행동에 대충이 느껴진 것이 제 분노 버튼을 누른 게 아닌가 하고 짐작은 해 봅니다.
쓰면 쓸수록 제가 정신병자 같네요. 남편에게 엄청 엄격하고 요구하는 게 많은 것도 잘 보입니다. 어제 밤에는, 아니 계속 사과는 했었어요. 미안하다, 상황을 다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기분이 나아지지는 않는다. 다만 나는 이번 차를 정말 깨끗하게 타고 싶었다. 앞에 타던 차에 긁힌 거 그거 못 고친 게 두고두고 후회가 되었다. 남편은 별 대꾸 없었어요. 어제 밤에 한 번 더 사과했어요. 아이들에게는 늘 역지사지를 말하면서 정작 저는 그러고 살 지를 못하죠. 나랑 사는 건 극한 직업인 것 같아요. 조금만 잘못하면 삼족을 멸할 듯 뎜벼드니 말입니다.
바닥이 뜨거워 발을 제대로 딛지 못해 이리저리 폴짝 폴짝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뛰어다니는 기분이었어요. 너무 울고 싶었습니다. 내가 도대체 왜 이러지 원래 이런 사람인데 이제 드러난 건가 이게 정점인가 이제 시작인가 온갖 생각이 다 들었어요. 혼자서는 도저히 해결이 안 되어 상담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울컥한 순간 우루루 써 버리면 그 순간은 배설한 듯 시원하나 두 번은 그 글을 보고 싶지 않아지는데, 이렇게 한 숨 돌리고 장황하나마 늘어놓으니 오히려 제 자신을 차분하게 돌아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글은 다시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정말 다른 의사선생님들 다 존중하지만 오은영 박사님을 만나뵙고 싶어요. 상담시 십 분에 얼마라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