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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우 Sep 21. 2022

선선한 바람은 떠나라는 신호

콧구멍에 바람을 넣어줘야...

오늘은 날씨가 하루 종일 선선하다 못해 아침 저녁으로는 추웠습니다. 오전에 약속이 있었는데 집 안은 서늘해서 봄 가을에 입는 잠바를 꺼내 입으면서 좀 과한가?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나가면 햇빛이 뜨거워 내내 손에 들고 있어야 할 수도 있지만 지금 추우니까 입고 나갔는데 순두부찌개 먹을 때 잠시 벗은 것 말고는 내내 입고 있었어요. 이렇게 날씨가 찹찰해져서 참 좋습니다.



하늘도 그렇게 예쁠 수가 없어요. 여름에 시퍼런 하늘은 좀 무서울 때도 있는데 오늘 본 하늘색은 맑고 시원해 보였습니다. 솜사탕을 찢어놓은 듯 흩어져 있는 구름도 가벼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날씨만 선선하면 저는 습관처럼 '놀러 가고 싶다'라고 생각해요. 놀러가는 기분이 팍팍 나려면 집에서 멀어야 하고 교통수단도 남달라야 하죠. 그렇습니다. 아 제주도 가고 싶다.. 하고 중얼거렸어요.



올해는 우리 엄마가 칠순이 되는 해 입니다. 어디 멀리 가기는 힘들고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별로 없지만 밥만 먹고 말기에는 아쉬워서 언니네랑 다같이 단풍을 보러 가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생신이 가을이거든요. 그렇다면 어디다? 내장산이다! 저는 핸드폰으로 올해 단풍 시기를 검색하였고 엄마의 생신 일주일 전 토요일로 디데이를 잡고서 언니에게 말을 했어요. 우리는 그 날 내장산을 갈 거야.



남편에게도 이야기 했습니다. 알겠다고 하더니 그 날 퇴근하고 나서 묻더라구요. 차를 세 시간을 넘게 타야 하던데? 응 좀 멀어. 하고 쿨하게 대꾸합니다. 하루 자고 오는 거야? 하고 묻기에 아니 당일치기로 다녀올거야. 허니 묻네요. 그럼 출발을 몇 시에 하는 거야? 글쎄 오전 6시 30분?



출발시간은 입에서 나오는대로 말한 거지만 내장산 시뻘건 단풍 보러 우리만 가는 건 아닐테니 먼 거리와 주차 등을 고려하면 그 때 출발해도 도착해선 붐빌 거예요. 내장산은 두 번 가봤어요. 제가 알에서 막 깨어난 아기 오리라 아무거나 처음 본 걸 엄마라고 따르는 건 아니지만, 내장산 처음 갔을 때 몇몇 시뻘건 단풍과 백양사에 단풍이 정말 좋았습니다. 어쩌면 어릴 때 부터 사람 많은 곳에 부러 가는 걸 별로 경험해 보지 못한 제가 사람들에 섞여 혹은 밀려가며 시간을 보낸 그 자체가 즐거워서 오래 기억이 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다만 네 시간 가까이 가야 한다는 말에 엄마가 힘들어 하실 수도 있겠구나 하는 걱정이 됩니다. 선뜻 그러자 했던 언니에게도 왕복 8시간 가까이 차를 타야 한다고 말하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겠어요. 아름다운 단풍은 가까이에서도 볼 수 있는데 그래도 칠순인데 라며 내장산 단풍이 참 좋지 라며 애써 무리해 일정을 잡은 것 같기도 합니다. 근데 엄마는 뭐 하고 싶냐 뭐 드시고 싶냐 물으면 안 가도 된다 아무거나 먹어도 된다 라고 하실 것 같아요.



설악산 보다는 가까운데.. 하고 나 혼자 속으로 농을 던져 봅니다. 내장산이 무산되면 다음은 지리산 노고단이어요. 설악산, 내장산, 지리산은 단풍과 관계 없이 제가 가 본 곳이라 정해진 후보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우리 지역 명소에 나오는 무학산도 있고 팔룡산도 있는데.. 아니야 단풍은 일교차가 커야 예쁘다구요.



엄마의 칠순 핑계로 저의 놀러 가고 싶은 마음을 채워 봅니다. 어딜 가든 숙박은 하지 않을 거라 사실 출발 전날까지만 정해도 되지요. 지금은 다들 그 날 스케쥴만 비워 두었습니다. 이러면 제가 몹시 바쁜 것 같지만 이런 거 아니면 달력에 일정 적을 일도 별로 없어요. 이러다 얼른 그 날이 오겠지요? 매일매일 조금이라도 의미 있는 일들을 하며 기다려 보려고 합니다. 이렇게 글도 적었으니 오늘은 의미 있는 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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