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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우 Sep 25. 2022

불쏘시개의 반성문

오늘은 아이에게..

  작은 아이가 학교에서 수학 일일 학습지를 받아와서 풀고 있는데, 선생님한테 혼이 났다고 했다. 두 자리 곱하기 두 자리를 하는데 뒤에서부터 풀어야지 이상하게 푼다고 했다는 것이다. 선생님이 화를 냈다는 말에, 선생님이 화를 낸 게 맞아 아니면 너가 그리 느낀 거야? 하고 물으니 화를 냈단다. 주산을 배우는 데 앞에서부터 풀어요 라고 하지 그랬니 하고 말하니, 그렇잖아도 다른 데서 배울 땐 이렇게 배웠다 라고 말했는데 뒤에서부터 푸는 거라고 화를 냈단다.

  아이가 말을 전하면서 그 때 생각이 났는지 울먹이는데 나는 그 모습을 보고 화가 났다. 다른 데서라고 하지 말고 주산이라고 했어야지 라고 말했다. 난 대체 무엇에 화가 난 거지? 요샌 진짜 돌아다니는 불쏘시개가 된 기분이다.

  아니 이 선생님은 왜 화를 내는거야? 아이가 어디서 배웠다 그러면 어디서 배웠는지를 물어보던지, 영 그게 마땅찮으면 학교에서 배운대로 풀어보라고 알려주던가 하면 될 것을 왜 화를 내느냔 말이야? 아니 그리고 주산이 무슨 야매야? 이 학교에 없다 뿐이지 다른 학교에서 방과후 수업으로 버젓이 있고 방과후가 뭐야 계산기 없던 시절에는 뭐 가지고 숫자 계산했느냔 말이야?

  아가, 이모가 주산 선생님이지? 네가 배우는 게 잘못된 게 아니야. 학교에서 배운 거랑 달라서 그래. 그리고 지금 배우는 단원이 곱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거라 네가 밖에서 배운 거랑 달라서 헷갈릴 수 있어. 언니도 작년에 이 부분에서 많이 틀려서 담임 선생님이 곱셈이 약하다고 하셨었어. 엄마가, 주산을 하고 있다, 지금은 배우는 게 달라 충돌을 해 헷갈리는 시기고 곧 자리가 잡힐 것이라고 생각한다 라고 말씀 드리니 수긍하셨어.  네 식대로 풀어서 답이 잘 나오니까 괜찮아.

  선생님이 화를 냈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나도 너무 화가 난다. 그러나 시간이 좀 흐르자 나 자신에게 화가 난다. 아이는 학교에서 자신의 보호자인 담임에게서 인정도 못 받고 혼만 나고 왔는데 집에선 엄마라는 보호자가 자신에게 화를 내고 있다. 게다가 덧붙여 네 식대로 풀면 맞다고 했는데 덜렁덜렁 푸는지 열심히 푸는데 내 눈에만 덜렁덜렁으로 보이는지 답이 자꾸 틀리니까 역정을 따불로 낸다.

  나도 엄마가 처음이라서 서툴다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아이는 나보다 약한 존재니까 설명과 이해보다는 손쉬운 방법인 화가 먼저 나오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이렇게 저열하고 비겁할 수가 없다.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셈이니 말이다. 사과를 하는 날도 있고 사과를 못 하는 날도, 안 하는 날도 있다. 대충 화 풀린 척 안아주고 끝낼 때도 많다. 어떤 형식이든 엄마가 웃는 양이면 망설임없이 다가와 안기며 웃는 아이의 너른 마음에 감사하고 매일 부끄럽다. (2022.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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