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누가 봐도 그렇고 내가 생각했을 때도 뻔히 다른 사람들에 비해 확연히 못하는 게 여러 개 있다. 자기 비하의 시간은 아니니 마음 편하게 읽어도 된다.
길 설명을 못 한다. 인터넷에서 본, 거기가 어디야 라고 누가 물었을 때 멀리서 봐도 보일 법한 큰 건물이나 인상적인 특징을 이야기 해야 하는데 앞에 무슨 간판이 있어 라고 말하는 수준까지는 아니어도(아닌 거 맞나) 이건 뭐 앞뒤 좌우 말고는 다른 이에게 어떤 장소나 가는 길을 설명하는 게 잘 안 된다.
마찬가지로 길을 잘 못 찾는다. 큰 쇼핑몰이나 복잡한 시장에서 길을 잃는 건 부지기수인데 이것은 교묘하게 동선을 설계하여 본 것을 또 보게 해 쇼핑을 유도하려는 고도의 작전에 내가 기꺼이 걸려준 거라고 모자란 핑계를 대어 보자.
테트리스 게임은 잘 하는데 가방에 물건 차곡 차곡 넣는 건 잘 못한다. 이런 것 까지 문제거리라고 평소 생각했던 건 아닌데,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나면 플라스틱 사각 카트나, 종이 박스를 조립해 물건을 담는데 내가 담고 있으면 꼭 남편이 다시 담는다. 그러면 더 많이 들어간다. 남편이 하도 잘하길래 언젠가부터 가만히 서서 지켜봤더니 왜 아무것도 안 하냐고 묻는다. 해봤자 다시 꺼내길래.. 아 이렇게 쓰면 주제가 부부문제로 가나?
집 근처에 오픈 준비를 하는 식당이 있다. 어제 남편과 차 타고 그 근처를 지나가다 그 생각이 나서, 그 가게는 언제 오픈 하려고 아직 준비를 안 하지? 하니까 식탁이랑 의자 갖다놨던데? 한다. 그래? 하며 가는데 남편이, 저기 봐봐 저기 안에 식탁 있잖아 라고 한다. 오 그러네? 나는 벌써 그 가게 지나간 줄 알았어 라고 말하니 남편이 허.. 했다. 참고로 걸어서도 차로도 자주 지나다니는 길이다.
저의 총체적 난국이 보이시나요? 이 모든 건 '머릿속에 지도가 없다' 라고 남편이 내린 결론이 긴 설명을 대신 할 수 있겠다. 서두에 말했듯이 나는 왜 이럴까,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공간 지각 능력이 엄청 뛰어났으면 사는 게 얼마나 편리할까? 라고 말하니 그거 말고 돈 버는 능력이 더 뛰어난 게 좋지 않아? 라고 남편이 말했다. 그러더니 선택해 보라네. 둘 중에 하나만 가진다면 뭘 가지겠느냐고 말이다. 이 사람이 참 나를 뭘로 보고 말야. 당연히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