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한만큼 다툼이 줄어든다
낮에 아이의 친구가 집에 왔다. 같이 놀러 나가기로 했는데 기다리다가 우리 집으로 먼저 온 것이다. 그 아이는 우리집에 와서 10여분 가까이 머물렀다. 가만히 망부석마냥 앉아있지도 않았고 여기 저기로 다니면서 나하고도 이야기를 나누고 내 아이들하고도 마찬가지였다. 우리집은 거실에 책상이 나와 있는데 남편은 그 책상 앞 의자에 앉아 모니터로 예능을 하나 보고 있었다. 나는 설거지를 하고 있었는데 이 이상한 기분은 뭐지 하고 생각했다가, 아이의 친구와 아이가 나갈 즈음이 되어서야 남편이 아이의 친구에게 일언반구 인사 한 마디 건네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챘다.
이걸 이야기를 해, 말어? 나의 장점인지 단점인지 알 수 없는 부분 중 하나는 의혹이 생기면 기어코 입 밖으로 꺼내고 만다는 것이다. 남편에게, 아까 00가 집에 와 있는데 왜 인사를 안 해? 라고 말했더니 남편은 이모티콘으로 치면 <0.0??>같은 표정을 지었다. 무슨 소리인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거다. 00이가 집에 왔었잖아?? 라고 말하니 ??????? 한다. 왔었다고??? 라는 말에 내가 더 놀랐다.
당신 뒤를 몇 번이나 왔다갔다 했는데? 문이 열리는 소리며 닫히는 소리며 하나도 안 들렸다고?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으니 나는 묻고 묻고 또 물을 수밖에. 우리집이 70평이냐면 절대 아니다. 현관문 열면 집 안이 다 보인다. 아이의 친구가 서글서글하게 안녕하세요를 외치지 않은 걸 뭐라고 할 것도 아니고, 나랑 남편은 우리가 먼저 인사를 건네는 편인데 인사를 하고도 남았을 사람이 가만히 모니터만 보며 히죽거리고 있는 모습이 이상해 보이더라만, 전혀 몰랐다고 하니 더 이상했다.
저 부분 때문에 다투기도 엄청 다투었다. 나는 이해가 안 되었기 때문이다. 진짜 안들린대. 본인이 뭔가를 하고 있을 때 옆에서 뭐라 말을 하면 안 들린단다. 나는 이런 적이 없어서 그래서 이해가 되지 않아서 부러 말을 안 듣는다고 생각해 역정도 많이 내었다. 근데 정말로 안 들린다네? 나는 이해가 안 되고, 본인도 안 들리는 데 어쩌라는 식이고.. 화내지 말고 계속 이야기를 해 달라고 하길래 뜨악한 적도 여러번이다.
공감도 지식의 영역이라더니, <금쪽같은 내새끼>를 열심히 보았더니 그 해답을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안 된다네. 안 들린단다. 주위를 환기를 시키고 말을 걸어야 한다고 했다. 팔을 살짝 잡는다거나, 얼굴을 보게끔 한다거나 하여 본인을 보게 한 다음 이야기를 간략하게 핵심만 전달해야 한다고. 나는 이 프로를 보기 전에 조금은 터득을 한 셈이긴 했다. 이름 부르고 자기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으면 본론을 이야기 했다. 지금도, 내 말 들려? 들을 거야? 라고 하고 대답 듣고 말을 할 때가 많다.
나는 내 MBTI가 뭔지도 모르고, 남편 것은 테스트를 해 보았고 결과도 봤지만 뭔지 까먹었다. 심리테스트도 잘 하지 않는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미래이지 지금 내가, 나와 관련 있는 사람의 심리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알면 뭐 어쩌라고..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하나는 알겠다. 적어도 싸움은 막아준다. 이렇게까지 말을 한 마디 하는 것도 애를 써야 하나 하며 화딱지가 나지만 저 사람이 내 말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는 건 알았으니 화 두 번 낼 걸 한 번만 낸다.
지나간 일일 뿐인 역사를 대체 왜 공부해야 하냐고 묻는 아이들에겐, 과거를 알아야 지금이 이해가 되고 앞으로도 예측을 하고 대비를 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하면서 그게 비단 역사에 국한되는 일만은 아니라는 걸 깨닫는 요즘이다. 기실 내가 분노하는 지점은 국내 정세도 국제 이슈도 아닌 나와 내 주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부족에서 오는 갈등이다. 그러니 시선을 안으로 돌려야 한다. 해결책은 차차 생각할 일이고, 나와 너를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을 할 수는 있다.
그래도 아까 있었던 저 일은 정말 충격이었다. 저렇게까지 들리지가 않는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