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우 Oct 05. 2022

여행 가고 싶어 부릉부릉

기왕이면 당일치기는 말고..

가을이 오면 왜 이렇게 떠나고 싶은지 방금 멍을 때리며 생각해 보았다. 아니 정확히는 살면서 떠났던 최소 1박 이상의 여행이 뭐가 있었지 그건 언제였지 하고 보니 많은 부분이 가을이었다. 여름이나 겨울 봄에 방콕을 하고 있진 않았을 터이나 다소 일관적이고 객관적일 리 없는 내 기억이 여행은 가을이다 땅땅! 하고 판결을 내린 모양이다.

이달 하순에 남편이 제주도를 가기 때문일까? 이 남편은 기분상으로는 십 년째, 사실로 말하자면 그래도 3, 4년 째 해마다 가을에 제주도를 가고 있다. 나랑 가는 건 아니다. 친구랑 가더라. 올레길마다 발자국을 남기고 오겠다는 야무진 프로젝트로 올해가 아마도 몇 년간 이어진 대장정의 마무리인 모양이다. 단정짓지 못하는 것은 제주도에 걸으러 간대는데 이 이유는 매년 언제나 써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우도, 마라도 등 섬을 돌고 한라산 등반도 한단다. 한라산 등반하면 나도 할 말이 많은데... 각설하고 요점만 말하자면 이십 대 중반 친구들과 제주도를 처음 갔었다. 우리야말로 몇 박 며칠동안 제주도의 모든 관광지는 다 찍고 오겠다는 일념으로 렌트카를 부지런히 움직였고 그 중 하루를 통으로 빼서 한라산 등반을 하였더랬다. 때는 11월, 가을이었다. 가벼운 차림으로 웃으며 올랐지만 손이며 얼굴이 다 얼어 터질 듯한 추위에 놀라 자빠질 뻔하다가(얼마나 차림이 가벼운지 모자도 장갑도 없었다) 내려가도 내려가도 끝이 보이지 않아 이대로 산에 갇히는 건가 저 독수리만 한 까마귀의 밥이 되는 것인가 하는 헛소리를 주절주절 늘어놓으며 다리와 영혼이 분리되는 경험을 하였고 여행 내내 온 몸을 두들겨 맞으면 이런 기분일까 싶을 근육통에 시달리며 여행 내내 로보트처럼 삐걱삐걱 걸어다녔다.

아이고, 가을에 다녔던 몇 안 되는 여행을 소중하게 부려놓을 생각이었는데 내가 한라산 이야기만 나오면 이렇게 말을 멈추지 못할 것을 알았다. 누구나 자신의 경험이 최초이고 최고이지 않겠는가 그러니 십 육년이나 된 한라산 등반이 거짓말 좀 보태면 어제 일처럼 생생하고 정상에서는 눈보라에 눈도 못 떴지만 그 외에는 가을산을 오른 것이니 기분좋게 찬 바람도 생각나고 낙엽도 생각나고 그래 가을이었지.. 하게 되는 것이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으쌰으쌰해서 다녀온 일본 여행도 가을이었다. 뱃속에 우리 첫째 보물과 같이 조심조심 야무지게 마음먹고 다녀왔던 여행도 가을이었다. 작년 결혼기념일 기념으로 다녀왔던 가족 여행도 가을이었네. 시기상 가을이라 가을이라 말하는 것이지 한여름인가 싶을 정도로 더워서 땀을 뻘뻘 흘리기도 했고 이가 딱딱 부딪힐 정도로 춥기도, 하냥 내리는 비에 기분이 축 쳐지기도 했었다. 마냥 오색단풍에 파란하늘에 행복하지만은 않았다는 뜻이다.

어느 계절이든 다 그렇지 않을까? 나는 봄에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견딜 수 있는 날씨이면 떠났던 듯 하다. 허나 가을이면 이렇게 떠나고 싶어 설레인다. 여름을 힘들게 보내고 나서 맞이하는 파란 하늘과 단풍이 선물 같아서 일까? 그 선물 나한테만 주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하루하루 시간 가는 게 아까운 기분이 드는 걸 보면 어디든 다녀오긴 해야 할 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