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잉 — 사라져가는 것들의 진동

프롬 Fromm 「찌잉」

by 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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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에서 감상하세요

https://youtu.be/h5nI_IHNdYI?si=a7m_GC8b0VjVfEzN



긴 저녁, 기억의 문


긴 저녁, 낡은 스탠드에서 흘러나온 누런 불빛

아래, 책장을 덮다 말고 흘린 시선이 오래된

사진첩의 모서리를 스친다.


화려한 장면은 없다.

그 문은 커피 잔 김이 흩어지는 틈새에서 불현듯

열리고,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던 손편지의

글자들이 조심스레 숨을 쉰다.


노래는 고조되지 않는다. 마치 먼 창밖에서

빗방울이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지는 듯, 담담하게

이어진다.




기억의 틈


가사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빛바랜 사진처럼 남는 장면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되살아나는 감각이다.


“코트깃 너머로 흔들린 그대 옆모습.”


사라진 듯한 순간의 숨결이 돌아와 화자의 몸짓이 된다.

기억은 공백 속에서 가장 선명하게 살아난다.


사라짐과 붙들려는 몸짓 사이, 미세한 떨림이

존재를 증언한다.

그 떨림은 음악 속 ‘찌잉’처럼, 조용히 가슴을

울린다.




소멸의 질감


“찌잉”, “스르르륵.”

의성어는 단순한 소리를 넘어 질감이 된다.


찌잉 — 가슴 깊은 곳에서 울리는 미세한 진동


스르르륵 — 그 진동이 부드럽게 풀려 사라지는 촉감


붙들기도 전에 녹아내리는 눈송이처럼,

사랑하는 순간들은 손끝에서 흘러간다.


소멸은 잔혹하지 않다.

부드러운 이별의 맛 속에서 화자는 조용히

음미한다.




웃음의 윤리


“왜 웃어 줬나요 / 그대도 스르르르륵 사라져 버릴 것을.”


상처의 항변이 아니다.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웃음을 건네는 행위,

그것은 윤리적 결단이다.


웃음은 기만이 아니다.

사라짐을 전제로 한 용기다.

순간을 빛나게 하기 위해 완전함을 약속할 필요는 없다.

불완전함을 안고 웃는 태도 더 진실하다.


사랑은 지속을 약속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에게 미소를 남긴다.

그 미소는 순간의 충만을 선택하고, 사라짐을

인정하는 예의가 된다.




보컬과 편곡의 결


노래의 목소리는 절규하지 않는다.

담담한 증언, 서늘한 관찰자처럼

보컬의 미세한 떨림과 숨결이 찌잉을 구현한다.


편곡은 최소하다.

여백과 잔향이 소멸의 감각을 배가한다.

길게 남는 여운과 잔잔히 떨리는 숨결이

모두 가사 속 사라짐과 만나, 곡 전체에 시간적

얇기를 만든다.


음악적 장치는 가사의 철학과 맞닿는다.

최소한의 소리, 길게 남는 잔향, 작게 떨리는 발성—

모든 요소가 사라짐 속 사랑의 정서를

시청각적으로 구현한다.




사라짐 속의 사랑


“내가 사랑하는 건 모두 다 스르르르륵.”


절망이 아니다.

조용한 수용이다.

사라짐을 인정하는 순간, 사랑은 여전히 의미를 가진다.


그 의미는 지속이 아니라, 경험의 밀도에 있다.

알면서도 웃고, 사랑하고, 잃는다.

그 반복 속에서 삶은 조용히 떨며 흐른다.


스쳐가듯 사라진 것들이 남긴 떨림,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가장 단단한

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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