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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치 Jun 01. 2024

별일 없이 산다

조현병과 공황장애를 삶의 일부로서 살아간다는 것 1화


나는 조현병의 날실과  공황발작 씨실이 내면의 나이테로  빙글빙글 새겨져 산란한 상태로서 살아간다.

가끔씩, 불현듯, 들이닥치는 공황장애의 불청객에 화들짝 놀라 벌벌 떨기도 했지만 도무지 낯익지는 않으나 자주 겪는 손님이기에 차를 대접하듯 알약을 삼켜버린다.

30분 또는 한 시간 이상의 공포와 죽음의 감각이 한겨울에 꼬챙이로 꿰어진 동태가 되어  눈은 흐려지고 몸은 저릿저릿 마비된다.

아 괜찮다. 공황발작으로는 죽지는 않으니까

다만 죽음의 공포의 살얼음판을 살금살금 걷는 극도의 불안감은 심장을 쪼이고 입김에선 메슥꺼움의 흰 안개가 분사된다.


조현병의 환청과 망상은 병원에 입원하자마자 안개 걷히듯 사라졌다.

혹자는 조울증으로 옷을 홀딱 벗은 채 거리를 누벼 다니는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다반사였는데, 나는 내가 본 것과 미친 행위들을 선명히 기억했다.  

어렸을 적부터 관찰의 매의 눈이 감기지 않아서였을까. 정신병동의 환자들과 다른 점은 자신을 기억해 내느냐 못하느냐의 차이일 뿐 일상의 평범한 모습은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병원원장님의 증언으로는 이렇게 미친 여자는 개원이래 처음이랄 수 있을 정도로 당시의 나는 절박한 질문과 고성의 참혹한 모습으로 실려왔었다.


내 나이 49세 불혹을 월담해 지천명을 바라보지만 오히려 온갖 미망과 의혹으로 누덕누덕 가난한 마음이었다.

나이는 먹을 데로 배부른 상태에 경력단절로 직업은 없는 데다 정신병이 이력이 되어 기초수급자로 선정되었고 12평  임대아파트로 입주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혼자 살게 된 것이다.

이사는 번거로웠지만 원체 살림살이가 단출해 형부의 막부지휘하에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처음으로 가지는 나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는 자신만의 방을 가지려면 어엿한 생계를 짊어질 직업유무를 강조했는데 나는 반백수 한량임에도 하늘에서 나만의 방이 뚝 떨어진 것이었다.

이사하면서 젤 소중히 다뤘던 물건은 책들이었다.

한 칸에 죄 입주시키고 싶었지만 방이 좁은 관계로 안방과 작은 방에 이산가족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지만 그것도 좋았다. 마실 가듯 왔다 갔다 발품을 몇 발팔면 되니까 말이다.

이 우주에 태어나 광활한 세계를 일별 할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책벗들이기에 그런 불편은 호사스러움이었다.

드디어 오롯이 홀로 있게 되었고, 누구나의 간섭도 없이 내면을 바라볼 시간이 주어졌으니까.

물론 전문가의 약처방과 상담을 하등시 하는 게 아니라 꼬박꼬박 지키는 가운데 무의식에 켜켜이 묵은 마음의 병을 관찰하고 알아채고 질문을 던지는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어렸을 적부터 아로새겨진 질문, 그리고 병으로 나타난 내 생각들의 허상을 선입견 없이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 했다.


생활은 단순했다. 마치 한식기간이듯 불을 금하여 사온 반찬 몆 개로 끼니를 채우고 고추를 키우는 등의 소일거리도 없고 외로움을 함께할 애완동물도 키우지 않았다.

아파트에 나가면 적지않이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 반경에 생명을 들이지 않고 오롯이 내 안의 생명에만 집중하는 간소한 생활이었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원두막을 짓고 홀로 삼 년을 단순한 삶을 살았듯, 나는 그렇게 별일 없이 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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