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이 비행하며, 자신만의(?) 우주의 섭리를 따르고 남의 눈에 띄지 않도록 신중하게 행동한다.
미동 없이 응시를 하다 먹음직한 정보를 낚아채는 날렵함이 있다.
난 20년 전에 에니어그램을 시작으로히포크라테스 기질검사,에고 검사와 더불어10년 전부터MBTI를 통해 스스로를 객관화 관찰해서 내 유형을 찾아내어 타인과의 몇 광년의 거리감을 이러한 도구를 통해 이해하게 되었다.
조현병과 공황발작이 발병하기 전이나 지금이나 일관되게 자아 탐구가 치열한 것은 아무래도 마음공부와 내면 저변의 원형의 고착된 질병 부분에 관심이 많은 까닭이리라.
mbti16 유형 중 나는 INTP아이디어뱅크형,논리적인 사색가에 속한다.세계에서 1%, 한국에선 3%로 분표 된 소수인종인 셈이다.
인터넷에떠도는16 personalities자가검사로도, MBTI 전문가에게 검사를 의뢰한 결과또한 찐 INTP으로 판명됐다.
비대면 톡으로 한 시간가량 상담했는데, 도출된 표보다 훨씬 선호도가 분명하고 높으리라 확정받았다.
사람을 16가지로 분류하는 점이 의아했으나 내 유형에 대해 검색한 결과호기심의 싹이 텄다.
무엇보다 나 같은 인간이 있다는 것에 안도를 느꼈다. 이해를 받는 느낌이었다.
이 세상에 나만 이상한 녀석이 아닌 것이었다.(잠시 정신줄을 놓아 공중부양한 병력이 있으며, 환자들 사이에서도 나는 하루종일 두꺼운 책을 좌선한 채 읽어대는 미친 여자로괴소문이 자자했다)
INTP의 특징으로는 아이디어 뱅크, 관찰력, 가능성을 열어두는 유연한 시각, 새로운 정보에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문호 개방식 사고, 보이지 않는 의도나 부조리를 꿰뚫어 보는 인식력, 창조적인 직관력, 숲을 그리는 빅피처, 세부사항에 미숙한, 사회성 부족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대표 유형으로 아인슈타인이 거론되는데, 사족을 붙이자면 그의 어마어마한 물리학적 업적에 물리학도인 부인 밀레바가 한몫을 단단히 했다는 사실이다. 세부적인 꼼꼼함이 약한 그를 도와 함께 논문을 완성시켰다는 사실에 주목해 본다. 사실 INTP들은 아이디어 구상에 강점이 있는 반면 그것에 뼈대를 만들어가는 세부작업에 맹점이 있다. 만약 밀레바가 없었다면 그의 어마어마한 건축물 같은 이론들은 지상에 정착하지 못했으리라 뒷북으로 생각해 본다. 이렇듯 INTP들은 현실세계에 발 붙일 수 있도록 조력자가 필요한 유형이다.
여담으로 아인슈타인은 복잡한 공식만큼이나 복잡한 여성편력으로 유명하다. 천재라서 인성까지 천재는 아닌 것이다. 그래도 노벨상 상금을 밀레바에게 몽땅 준 것으로 보아 양심은 있는 모양이다.
백발에 쭈글쭈글 나이테로 주름진 가운데 새싹으로 혀 내미는 사진을 볼 때마다 만감의 곁가지가 교차한다. 내 안의 장난기가낄낄자란다.
아인슈타일 왈''나는 신의 생각을 알고 싶다. 나머지는 세부적인 것에 불과하다.""란 달팽이관을 자극하는 말이 좋다.
나 또한 궁극적으로 신의 생각을 알고, 아버지를 닮은 신의 자식으로서 신의 생각대로 살고 싶은 열망이 있다.
INTP들은 관심분야 외에는 몸의 치장이나 영양등일상생활의 건강한 루틴을 벗어날 때가 있다.
나의 경우 일식일찬으로도 충분해 영혼없이 한 끼 때우기 일쑤이다. 한 때 친구들이 먹이를 한아름씩 서식지로 가져와서 몰골은 면하였다.
또한 실용적인(때를 타도 표시 안 남) 체크남방과 청바지를 주구장창 입고 다닌 흑역사가 있다.
어느덧 나이가 들어 주변의 아우성과 만류로 여자 사람 행색을 얼추 갖추게 되었다. 그중 편안함을 고려해블라우스와 치마를 즐겨 입는다. 긴치마는 훌렁 입고 벗기에도 편하고 자유자재한 다리의 윤곽을 감춰주는 이점이 있다.
거기에 단아하기까지 한다. 아, 물론 성격은 단아함과는 멀어 지랄 맞다.
아인슈타인도 편하다는 이유만으로 치노 팬츠를 즐겨 입었으며 스티브잡스도 터틀넥과 청바지를 고집했다. 그들은 몰두하는 분야 외에는 청교도적일 정도로 단순하고 검소하다. 관심분야에 몰두하려면 효율적인 생활패턴이 디폴트 값인 것이다.
난 세상의 모든 이치와 우주의 원리까지를 통달하기 위해 관심분야가 다양하다. 일명 파우스트 증후군인 괴짜인 셈이다.알아야 할 것이 너무 많아 궁금증의 목록이 차곡차곡 쌓여간다.
기계처럼 보통 인간 범주에서 한 발짝 물러나 인간 본질과 세상의 이치와, 우주의 원리를 입력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의 머릿속은 꼬리에 꼬리를 문 생각들이 똬리를 튼다는 것이다. 밥을 먹을 때도 걸을 때도 쉼 없는 상상과 사고가 뫼비우스의 띠로 돌아간다. 그 여파로 나는 방향치, 길치 타이틀이 있다. 주변을 봐야 길을 익힐 수 있는데, 중얼중얼 생각에 몰두한 결과이리라. 그리고 몸까지 골골하다. 잘 때에도 두뇌는 끝없이 돌아간 듯 아침마다 찌뿌듯 흐린 체력이기가 보통이다. 이렇듯 나의 머릿속은 여러 생각들로 중첩된 과부하로 멍 때리기라는 상태가 되기 일쑤이다. 방전된 방심인, 사고를 잠시 스킵해 놓은 상태인 멍 때리기는 명상과 사뭇 비슷하다. 거미가 고요히 한 치의 낌새도 없이 거미줄에 매달려 있듯이. 그러다 불현듯 한 마리 직관적 통찰이 걸려들면 곧장 달려가 꽁꽁 싸매어 정수를 빨아들인다.
이러하니 자연 집돌이와 집순이의 생태가 형성된다.
나는 동굴골방 서식지에서 연구를 하고 취미를 하는 것에 최적인 존재이다.
혹하는 관심분야만 있다면 동굴골방에서 마늘빵과 쑥떡을 먹으며 10년 정도는 거끈히 버틸 수 있는 곰의 후손인 셈이다. 가끔은 외롭지 않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런 질문에도 외로움은 사람의 부재로 인한 것이고 고독은 자가 격리한 채 자아성찰을 하는 것이라고 정의를 내린다. 그냥 쓸쓸한 헛헛함을 사람으로 채우려는 것에 별 감응을 느낄 새가 없을 뿐이다. INTP는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유형이라고 하지 않는가! 심심해서 만나 스몰토크나 나누는 것에는 식상함을 느낀다. 나는 대화에 중요한 의미를 둔다. 그 사람만의 가치관이나 일상 속에서의 독창적 경험에서 우려낸 해석들을 들을 때면 달팽이관이 촉촉해진다.
권위적 이론을 듣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실제 생활의 독자적 이론을 펼쳐내는 대화의 물결에 퐁당 헤엄치기도 한다. 심심파적 시간 죽이기가 아니라 시간을 생생히 살리는 순간들이다.
연애에서도 공통 관심사나 아니면 그 사람만의 삶의 기단이 층층한 사연들을 환영한다. 거기에서 인간에 대한 호기심이 충족되고 이해도도 다채로워진다.
그런데 다양한 경험이 꼭 인격의 성숙도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한 때의 무용담으로 전락해 버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들은 그저 사는 대로 생각해 버리는, 과거에 묶여버린 듯했다. 그럴 때면 호기심의 풍선에 바람이 스르르 빠진 듯 맥 빠지고 재미가 없어진다.
관심은 멀어져 지나가는 행인1로 분류된다.
단지 그에 대한 호기심이 충족되어 데면데면해지는 게 아니라, 비전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관찰력과 분석의 메스를 통해 통째로 폐부까지 까 본다.그래서 아니다 싶으면 손절을 한다.
이상이 높아서같이 비전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끝까지 지켜내는 행동력을 발휘한다.
주의할 점은 상대가 연락 빈도에 연연하는 타입일경우이다. 며칠 연락 없다고 상대방에게 죄책감을 유발하는 징징대는 감정에는 그만 냉정해져 버린다. 내 경우 연락의 빈도에 따라 사랑치가 비례하는 수치가 적용되지 않는다. 핑크 렌즈를 벗은 게 아니고 걸음이 더딘 것일 뿐이다.
나는 이제야 좋은 토양을 일궈 파종을 하려는데 상대방은 벌써 열매를 추수하려는 계절일 때 그 시차를 좁히지 못하였다.
나의 인간관계는 공적인 자리에서는 내향인답게 과묵한 편으로 평가받지만, 사적 관계에서 본의 아니게 날 것으로 반응할 때는 특유의 독특함에 주변은 화들짝 놀라고 만다. 놀라면 관심을 받게 되고, 그 관심이 부담스럽고 귀찮아, 이때 인간생태에 관한 관찰력을 십분 발휘하여 보통사람 페르소나를 시전 하게 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내 영역 유지에 차질이 생기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람 속에 섞이되, 있는 듯 없는 듯해야(투명망토를 씁니다) 상관받지 않고 오롯이 내 머릿속의 세계에 몰두할 수 있었다.
그토록 계산하면서 시뮬레이션으로 한 바퀴 돌리지 않는다면 시회부적응의 뒷골목으로 새게 된다.(그럼에도 뒷골목 출신입니다)
어렸을 때 여자아이들이 함께 화장실을 가고, 삼삼오오 모여 도시락 비빔밥을 먹는 것을 의아하게 보았다.
혼자 먹거나 운동장 한 켠 플라타너스 나무에 기대 햇볕에서 무수히 빛나는 먼지 알갱이들을 바라보기를 즐겼다.'역시 인간은 우주 속의 먼지 같은 존재야....'(망상일까 통찰일까)
나는 은둔형 개인주의자이다. 남에게 피해도 이익도 받지 않는다는 베틀에 내가 소중하다는 날씨와 남의 존재 또한 내 존재처럼 존중하자는 씨실로 짜여있다. 그렇기에 소수의 친구와의 좁고 깊은 우정의 피륙은 현재까지 낧지 않았다.
가끔은 공허감을 느낀다. 파우스트는 말한다. "아, 나는 이제 철학도, 법학도, 의학도, 게다가 쓸데없이 신학까지 열심히 공부하고 철저히 연구했다. 이 결과가 이 가엾은 바보 꼴이구나.조금도 현명해지지 않았다.그리하여 안 것은, 우리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것뿐이다." 결국은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진실 하나를 위해 아등바등 지식에 매달린다는 아이러니. 그래서 늘 아이디어를 실행함에 늦장을 부린다.
미루기의 끝판왕이다. 공허의 발길 따라 사람들을 만나 진탕 술을 마시고 왁자지껄한 시간 뒤에는 허무함이 발목을 비튼다. 주변에서는 그런 모습에 드디어 인간 행세를 한다고 안심하지만 그럴 땐 최악의 상태인 것이다.
하여시간을 죽이기 위해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 시간을 살리기 위해 혼자의 시간이 필요하다.
고독력은 직관과 통찰력으로 이어지는데 그 가교역할을 하는 것은 관찰자 시점을 유지하는 것이다.
공황발작이 왔을 때도 그 상태를 앓아하면서도 고요히 바라보는 나 자신이 있다. 이게 INTP의 특징인지, 나의 특징인지는 모르지만 어렸을 때부터 동물이나 식물과 광물(?)까지 면벽하듯 관점의 개입없이 바라보는 파브르의 관찰자 모드가 기본장착되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공황발작에 꼬챙이에 꿰어 파닥파닥 헐떡일 때조차 그 바라보는 나를 놓치지만 않는다면 병에 대한 우울감과 좌절감과 희생자코스프레에 감염되지 않는다.
물론 굉장히 고통스럽다. 근데 고통으로 해석하지 않는 일면이 부드럽게 바라봐 준다고 해야할까!
그래서 주변의 당황이나 걱정의 간섭없는 홀로의 순간이 역설적이게도 나를 살리는 시간인 셈이다.
아무래도 역경에 맞서 힘내지 않고 힘을 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힘을 빼면 잔뜩 움츠러든 긴장과 고통의 빡빡함에 틈이 생기는 것이다.
하여 고독력은 나의 원동력이다. 현실은 은둔형 독거인이지만. 하하.
p.s)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감정적이기보다는 정서적인 사람이다. INTP는 따뜻한 기계 아닌가. 개별적인 관계에선 너트에 볼트 끼우는 것처럼 아귀를 맞춰야 하는 수고로움이 귀찮지만 인류애는 있다고 말하고, 잠시 전원을 끄겠습니다.방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