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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치 Jun 10. 2024

별일 없이 산다

슬기로운 병원생활 3-1화

조현병의 환청과 망상이 클라이맥스에 치달았을 당시 구급차에 간신히 실려 병원에 도착해서는 곧장 사지를 묶인 채로 1인실로 인도 되었다.

원초적 공포에 멱을 감고 세차게 흐르는 무의식의 물결에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강한 진정제의 투약 때문인지 정신이 가물해지면서도 병실문의 흐린 창문을 통해 나와 인연된 사람들이 슬픈 낯빛으로 바라보다가 사라졌다. 그들은 완전히 미친 여자에 대해 연민의 눈을 하고 있었다. 그것마저 망상의 파도임을 인지 하며 파르르 떨리던 눈이 감겼다.


조현병이 발광해 진돗개1호가 발령되기 전, 나는 평화로운 성정으로 서식하는 초식동물처럼 살았다. 발달장애인인 어린 조카의 교육에 심혈을 기울여  성장과정을 관찰하며 또래 애들과는 느림보이지만 그 아이에게 알맞은 시간에 맞 사랑과 교육열에 몸무게는 40kg으로 건어물로 쪼그라질 때 까지 자신을 몰아세웠다.

한 마디로 너무나 열심히 살았다.

남들은 벌써 그 만한 자기새끼를 품을 때, 나는 내 새끼 남의 새끼라는 분별도 없이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바깥에 눈맞춤도 하지 않은 생명에게  형용사적 아름다운 순간을 일별하며 느낄 수 있는 인지의 근육을 단련시키려 애썼다.

한 마디로 너무 열심히 살았다. 힘을 내고, 힘을 짜내고, 힘의 나사를 바싹 조였다.


물론 지금은 열심히 살지 않는다.


조현병에서 비롯되는 신비로운 망상과 현학적인 말들이 봇물터져도 그 흐름은 지나가는 것들이었다. 지나가는 것에 잠시 적셔질 수는 있으나 곧장 그 광기의 물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마르기 마련이다.

신기루는 착시현상이다. 당장의 무의식의 갈급함에 속아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늦은 밤 휴식기에 하던 명상조차 너무 열심히 해서 상기가 되어 조현병의 조짐이 슬몃 코브라의 혀처럼 실룩 이죽거렸다.


내 병적증세와 기이한 현상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병명을 알아내었다. 조현병.

나는 미쳐가는 것이었다. 스스로가 미친 상태라는 것을 자각하는 것은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옛날 어렸을 적 동네에 미친 여자가 있었는데, 그녀는 늘 치맛단을 허벅지 위로 올려 노출시킨 뒤 중얼중얼 반복적인 말을 어눌하게 했다.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그녀에게 돌을 던지고 짓궂은 장난질로 놀려댈 때면 모친이 달려와 마귀할멈처럼 무섭게 애들을 내쫓았다.

그녀가 오버랩되면서 나도 정신줄을 놓아 애드벌룬으로 날아가버리면 어쩌나 공포스러윘다.

미친 상태를 자각하는 것은 괴로우나 차라리 그편이 나았다.

매트릭스에서 빨간 알약과 파란 알약을 골라야 하는 장면이 나오듯,나는 꿈속같은 미친 세계의 남루한 현실이나마 진짜로 인식할 수 있는 빨간 약을 선택할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출동한 구급대원들에게 상위포식자로 빙의한 듯 으르렁대면서도 그런 나를 인식함을 놓치 않으면서 좌선을 한 상태로 그들의 비지땀 범벅 합동포획으로 나는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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