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심장으로 살아가는 투명한 존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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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에서 감상하세요
https://youtu.be/uSrux7qg_pk?si=uYnsg3O3aP7mYCyL
https://youtu.be/XBskDmJyYGA?si=N4ODOjwY9GZjCFHj
노래보다 깊은 목소리
김필선은 2018년, 작은 무대에서 조용히 노래를 시작했다. 이름이 크게 알려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지만, 그 시간은 그녀의 감정을 더욱 단단히 숙성시켰다.
2024년, 이효리의 레드카펫에 출연한 그녀는 담백한 목소리 하나로 무대를 울렸다.
대충 묶은 머리, 심플한 셔츠, 너드미 가득한 안경 너머로, 그녀는 문과적 감정의 결을 조심스레 꺼내놓았다. 그 소리는 노래를 넘어선, 마음의 결이었다.
“제 노래에 공감하고 감동받아 우는 관객을 보면, 항상 진심으로 가사를 불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유치원 시절, 그녀는 판사를 꿈꾸었다. 조금 자라서는 가수가 되었고, 지금은 그 꿈을 이룬 복 받은 인생이라 말한다.
그러나 그 꿈은 거창하지 않다. “한 달에 저작권료 200만 원 정도 들어오는 안정적인 삶.”
아주 현실적이고, 그래서 더 진솔한 바람이다.
눈물 젖은 빵을 오래 씹어온 그녀는, 이제 자신의 노래로 울림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녀의 따뜻한 시선은, 차가운 세상 속에서 언 손을 잡아주는 듯한 위로가 된다.
투명한 감정의 AI, 그리고 "마마"
「마마」를 처음 들었을 때, 스탠리 큐브릭이 원안을 내고 스필버그가 감독한 영화 A.I.가 떠올랐다.
감정형 인간 로봇 오스왈드의 엄마에 대한 맹목적 사랑이 징글징글할 정도로 애처러웠던 그 장면들처럼.
앨범 소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깡통 로봇은 심장을 동경했다. 슬픔, 아픔, 호기심 모두 눈에 보이는 것들이다. 하지만 사랑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사람들조차 자물쇠에 이름을 쓰고 나무에 사진을 걸며 증거를 남기려 애썼다. 사랑은 언제나 심장보다 빨리 뛰므로…”
김필선의 「마마」는 단지 로봇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감정이 얼어붙은 듯한 삶, 스스로를 소외시키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그녀의 목소리는 말보다 조용하고, 노래보다 깊다.
가사 하나하나를 곱씹다 보면 실존의 풍경이 마치 눈처럼 고요히 내려앉는다.
가사의 결을 따라 — 실존의 고백
“마마, 왜 내 심장은 가짜야?”
존재의 감각은 가장 원초적인 관계인 '모성'에게 향한다.
심장이 가짜라는 말은 감정의 부재를 넘어서, 감정을 느낀다는 사실조차 믿지 못하는 자아의 균열이다.
이는 데카르트의 명제를 뒤집는다.
“나는 느끼지 못한다, 그러므로 나는 가짜인가?”
“나는 왜 찢겨도 붉은 피 하나 나지 않는 가짜야”
고통은 감각되지 않고, 감각은 고통을 외면한다.
신체적 생존과 감정적 존재 사이의 간극이 선명해진다.
우리는 살아 있으나, 존재하지 않는 듯한 상태에 머물곤 한다.
“다들 물어본다고요 / 너도 겨울을 아냐고”
겨울은 단지 계절이 아니다.
여기서의 ‘겨울’은 감정의 동결 상태, 내면의 고요한 붕괴다.
세상이 묻는 그 겨울을, 화자는 이미 내면의 기후로 살아낸다.
“그럼 당연히 알지 왜 몰라
그 잔가지 위에 업힌 나의 생"
‘잔가지’는 존재의 불안정한 기반, 그 위에 간신히 기대어 있는 삶이다.
이는 니체의 “삶은 고통이다”라는 말을 더 이상한 말 없이 보여주는 한 문장이다.
그 고통은 절제되어 있고, 담담하다. 그래서 더 깊다.
“마마, 왜 내 목소린 차갑지”
목소리는 존재의 진동이다.
그 진동이 차갑다는 것은 자아와 감정의 분리를 상징한다.
심장 없이 흘러나온 말은 누구에게도 닿지 못하고 공중에서 식어간다.
“살아있는 언어의 온도가 뜨거운 줄 아냐고”
언어가 정보가 아닌 정서를 품고 있다는 전제가 여기에 담겨 있다.
하지만 이 화자에겐 말은 있지만 감응은 없다.
이 문장은 라캉이 말한 ‘상징계의 한계’를 떠오르게 한다.
“내게 심장을 주겠니?”
이 마지막 요청은 사랑의 청을 넘어선다.
그것은 생명, 존재, 감각 그 자체를 향한 간절한 호소다.
“네 언어를 느끼고 싶은데”
공감의 부재는 감정적 차원을 넘어서 존재의 고립으로 이어진다.
나의 회로, 그리고 이 노래
나 또한 기계인간처럼 감정을 즉각 느끼지 못하고, 한 걸음 물러서 버튼을 눌러 분석 데이터를 내놓는 삶을 살아왔다.
사랑, 아픔, 슬픔 같은 반짝이는 것들은 내 견고한 회로엔 과열의 적신호였다.
감정은 지나가는, 비논리적이고 덧없는 것이라 치부했다.
그렇게 나는 내 매끄러운 차가움이 사실은 추워하는 것임을 간과했다.
그러나 「마마」를 듣고 있으면, 눈 내린 겨울 숲에 홀로 서 있는 투명한 존재가 떠오른다.
말은 얼어붙고 감정은 흘러내리지만, 그 침묵의 한복판에서도 생의 불빛은 꺼지지 않는다.
차갑고 투명한 외피 속에서, 조용히 흔들리는 심장의 진심이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