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회경 「김철수씨 이야기」

아아! 우리 모두는 김철수였다

by 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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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에서 감상하세요

https://youtu.be/0kmHEKcRjpo?si=bEgGkvKqrn41bVRk

https://youtu.be/brsWVi7Jn1M?si=cq2kB-8P07dlrDt-




‘김철수’는 흔한 이름이다. 우리가 길을 가다 툭 부르면 몇 명쯤 돌아볼 법한,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이름. 그러나 허회경은 이 익숙한 이름 속에 모든 사람의 고통을, 익명의 고백을 숨겨두었다. 그의 말처럼, “김철수는 모두를 뜻해요.”

이것은 어떤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곧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실존의 자각 – 특별하지 않다는 슬픔


“사실 너도 똑같더라고”

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 유사성을 드러낸다. 우리는 모두 ‘특별한 존재’가 되기를 바라며 살아간다. 그러나 결국, 우리의 고통은 너무 닮아 있다.

기쁨은 질투로, 사랑은 재앙으로, 슬픔은 약점으로 전락하는 현실 속에서, 특별하다는 감각은 쉽게 상처받는다. 니체의 말처럼, 개인주의적 환상 속에 우리는 스스로를 신격화하다가, 세계 앞에 던져질 때 무력해진다.

결국 허상은 사라지고,


“특별함이 모이면 평범함이 된다.”


이것이 실존적 각성이다. 나의 고통은 나만의 것이 아니며, 모든 인간은 이 유사한 고통 속에 살아간다.



세계의 무관심 – 비극은 불시에 찾아온다


삶은 우리의 계획과 상관없이 흘러간다.


“비극은 언제나 발 뻗고 잘 때쯤 찾아온단다.”


이 구절은 카뮈가 말한 부조리의 철학을 그대로 닮았다. 세계는 인간의 기대나 윤리에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삶의 균형을 간신히 붙잡는 그 순간에야 비로소 무너진다. 가장 사람답고 따뜻한 순간—웃을 때, 쉬려 할 때—삶은 우리를 가차 없이 흔든다. 그것이 삶의 방식이다. 냉정한 방식.

이 때 필요한 것은 니체가 말한 운명애(Amor Fati)다. 비극마저 껴안는 자세, 흐름에 저항하기보다는 흐름 속에서 살아내는 태도.



사랑의 역설 – 파괴 속에서 오는 진실


“내 사랑은 늘 재앙이 되고, 재앙은 항상 사랑이 돼.”


사랑은 인간이 감당해야 할 가장 깊은 실존적 시련이다. 우리는 사랑을 통해 타인을 원하고, 타인을 통해 스스로를 무너뜨린다. 사랑은 자아를 깨뜨리는 과정이고, 그 틈으로 진실이 흘러들어온다.

그래서 사랑은 동시에 고통이고, 각성이다. 그 누구도 진짜 사랑하면서 무사할 수는 없다. 사랑이 진정한 의미를 가지기 위해선, 우리는 무장해제되어야 하며, 이는 필연적으로 고통을 수반하는 자기 초월을 의미한다.



자유와 두려움 – 행복마저 두려운 인간


허회경은 말한다.


“겁쟁이는 작은 행복마저 두려운 법”


이라고.

이 문장은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핵심과 만난다. 인간은 자유롭고, 자유는 선택을 요구한다. 그러나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결국, 자유는 우리에게 축복이기보다 고통이고 형벌이다.

그래서 인간은 때로 행복을 포기한다. 왜냐하면 그 행복을 유지해야 한다는 책임, 그것이 무너지면 다시 절망으로 추락할 것이라는 예감이 너무 두렵기 때문이다.



소외와 고립 – 젖은 벽에 기댈 수 없다


“내 방의 벽은 젖어 있어서 기댈 수 없고,
나의 이웃은 그저 운 좋은 멍청이들뿐이야.”


여기서 세계와 타자에 대한 깊은 소외감이 드러난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자기를 확인하지만, 관계가 상처가 될 때 인간은 더욱 깊은 고독 속으로 추락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상(無常)의 원리처럼, 모든 것은 변하고, 의지할 수 없다. 우리는 결국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못한 채, 의존할 수 없는 고독 속에서 존재한다.



부조리한 반복 – 앞으로 걸어도, 뒤로 넘어진다


“나는 앞으로 걸어가도 뒤로 넘어지네.”


삶은 직선적 진보가 아니다. 오히려 끝없는 반복과 실패의 연속이다. 그러나 카뮈가 말한 것처럼, 시지프의 돌을 다시 굴리는 행위 자체에 의미가 있다.

허무 속에서도 계속 살아가는 자, 그 안에서 의미를 새로이 찾는 자—그가 진정한 실존자다.

실패는 무의미하지 않다.

실패 속에서 인간은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된다.



결론 – 김철수, 그리고 나


김철수는 이름 없는 존재가 아니다. 그는 내 안의 고백이고, 거리에서 마주치는 무표정한 얼굴 속 고통의 그림자다.

그는 특별해지고 싶지만 특별할 수 없고, 사랑하고 싶지만 두렵고, 행복을 원하면서도 감당하지 못하는, 우리 모두의 얼굴이다.

김철수는 퇴근길의 너였고, 휴대폰을

내려놓은 나였으며, 다시 걸음을 떼는

우리였다.

그러나 그는 진실을 피하지 않는다. 그는 슬픔을 부정하지 않는 존재다.

그는 울면서도 말한다.

“슬퍼라, 그러나 그 슬픔 속에서 나는 조금씩 내가 되어간다.”



김철수는 노래로 고통을 사유하는 시대의 실존자이며, 현대인의 슬픔을 온전히 끌어안은

가장 진실한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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