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자본주의자들이 읽은
현대판 가족형 월든이라고 하면 되려나. 엘리트 교육을 받고 메이저 언론사에 입사한 73년생, 75년생 부부가 남편의 나이 마흔이 되던 해인 2013년, 안정적 생활과 도시의 편리함을 포기하고 두 아이를 데리고 미국 시애틀 근처 시골 마을에 정착해 살아가는 이야기다. 딱 10년 전, 이 책의 작가 박혜윤이 남편 김선우에게 시골로 가자고 했을 때 남편은 터무니없는 생각이라며 반대했지만, 10년이 지나 직장 생활에 지칠대로 지친 남편이 이번에는 은퇴하고 시골로 가자고 아내 박혜윤을 설득한다. 그렇게 네 가족은 자본주의의 변두리에서 살게 된다.
Q. 모두 책은 어떻게 읽으셨나요?
영: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가치가 아니라 자기만의 가치를 세우고 실천하고 사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가령, 보통은 부정적으로 보는 '포기하기'나 요즘 트렌드인 '자존감'에 대한 부분을 다르게 해석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예: 법정스님 책을 주변에서 추천할 때 좀 거부감이 들었는데, 이 책도 조금 그랬다. 하지만 저자의 생각이나 인생을 따라하거나 닮는 게 아니라 참고하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읽었다. 사실 남편분이 쓴 책이 나한테는 더 잘 맞을 것 같기는 하다. (*남편 김선우씨가 쓴 책 <40세에 은퇴하다>는 2019년에 출간됐다.)
옥: 대체로 좋았다. 다만 철학 이야기를 할 때 작가 본인의 이야기가 상충하는 부분은 있었다.
정: 여자가 철학책을 쓰면 이렇구나 싶었고, 그래서 좋았다. 특히 작가가 사람들과 불화하는 부분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 나도 그랬기 때문이다. 필통 에피소드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는 이유는 원하지 않는 욕망을 자꾸 주입하려 하기 때문이다. 또 본인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별것 아닌 것처럼 치부할 때 사람들은 그 사람을 불편해하고 싫어한다.
윤: 어느 단계에서 포기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하지만 어느 정도에서 포기해야 할지 모르겠다. 일단 시작하면 완벽해지고 싶은 욕구가 있지 않나. 다이어트도 그렇고, 나의 경우 비누가 그렇다.
(영: 유럽에 가서 비싸고 조악한 비누를 써봐야 언니 비누가 얼마나 훌륭한지 알 수 있을 거예요! / 일동: 빵 터짐)
진: 나는 욕망덩어리다. 그래서 매사에 '그냥' 이라고 말하며 시큰둥한 동생을 보면서 이해가 안 되고 답답한 마음이 들 때가 많았는데, 이 책을 읽고 이유가 '그냥' 일 수도 있겠다 조금은 이해하게 됐다.
저자 박혜윤은 네 가족이 평균 100만원으로 한 달을 산다고 썼다. 인터넷도 끊고, 휴대전화도 온 가족이 돌려서 쓰고, 도시에서 달고 살던 커피 대신 들에서 뜯어 말린 차를 마시고, 하지만 그 돈이 부족하다고 느끼지는 않는다고 했다.
Q: 내가 생각하는 부유함이란?
은: 난 명확하다. 회사를 그만두고 6개월을 살 수 있을 정도의 돈이 저축되어 있는 상태다.
(정도 공감하며 은의 나이 때 본인의 기준은 1년이었다고 한다.)
달: '부유함'이라는 말이 좀 애매한데, 정말 부유한 상태는 노동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는 정도이고,
그냥 여유 있는 정도의 부유함은 여행할 수 있을 때 여행하고, 곱창을 먹고 싶을 만큼 사먹을 수 있는 정도다.
진: 일년에 두 번 가족들에게 1인 10만원 정도의 식사를 사줄 수 있고, 보고 싶은 공연을 "VIP"에서 볼 수 있는 것!
정: 예전보다 수입이 늘어났지만 나의 생활 태도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됐다. 호텔에서 친구에게 부페를 사려고 했더니 1인 20만원가량 해서 너무 놀랐다. 여전히 너무 비싸게 느껴졌다.
영: 계좌 잔금을 확인할 필요 없는 여유. 가족, 친구에게 사주고 싶은 것을 고민없이 사줄 수 있는 여유.
옥: 이제 소박한 부유함 이야기는 끝난 것 같으니, 진짜 부자들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미드 '스타트업'과 '빌리언스'를 보면 어마어마한 부자들 이야기 나온다. 우리의 기준에서 그 사람들은 돈이 엄청 많지만 정작 본인들은 계속 돈이 없다고 생각한다.
Q. 오래된 습관이나 사회적 맥락 중 다시 점검해봐야 할 행위, 맛, 행동은 뭐가 있을까?
영: 분명 많았을 텐데 생각이 잘 안 난다.
정: 이미 굴복한 경험이라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일동 고민 중)
윤: 패스하시죠!
Q. 의미를 공유하지 못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야/지내야 할 때 나의 선택은? (태극기 부대 부모, 상사, 고객 등)
정: 누군가 반복적으로 충돌하는 주제는 피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할 이야기가 별로 남지 않게 되는 것 같다.
영: 사실 가족과 정치적 견해가 맞지 않는 경우에는 그 주제를 피하면 다른 부분에서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다.
옥: 그래도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면 충돌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그렇게 부딪치다 보면 점차 이해하게 되는 것 같고, 그래서 섞여야 한다고 본다.
달: 나 같은 경우 남편과 부딪치는 주제는 피하게 된다. 다만 회사 대표나 상사가 그러는 경우에는 힘들다.
윤: 시부모님이 태극기 부대다. (하아...)
일동: 너무 어렵다.
Q: '월든' 속 오두막에서 3년을 살아야 할 때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자본주의적) 아이템은?
윤/정: 온수 보일러.
진: 전자레인지 필요한데.
옥/은: 일단 인터넷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영: 일단 올 빌트인이면 좋을 것 같다. 에어프라이어도 필요한 거 아니냐?
(의외로 이 질문에서 모두 쉽게 답을 하지 못했다. 우리는 그 무엇도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것 ㅋㅋ
욕망하지 않는 삶이란 철저히 도시 자본주의자로 살고 있는 우리에게 너무 머나먼 세상이었던 것!)
Q. 나의 행동 중독에는 뭐가 있나? (아침 카페, 저녁 술 등)
영: 커피. 커피를 마시면 안 되는데 도저히 끊을 수는 없어서 디카페인 커피를 마신다. 심지어 요즘은 커피가 그리 맛있지도 않은데, 일단 커피를 한 모금이라도 마시는 행위에 중독된 것 같다.
진: 아침에 꼭 맥심 화이트 믹스를 마신다. 블랙커피를 마시면 뭔가 부족해서 다시 맥심 화이트를 마신다. 그런데 이상하게 주말에 집에서 마시면 맛이 없다.
은: 물. 아침에 회사에서 모두 커피를 마실 때 물을 마시면 다들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커피를 자꾸 권한다. 카페인이 안 받는다고 설명을 해야 그때야 그 권유를 멈춘다.
달: 행동 중독은 아닌데,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몸이 반응한다. 멍하고 머리가 아프다.
윤: 빵과 커피. 일종의 스타트 버튼이다.
Q. 밑줄 그은 문장은? (결국 게으른 메모로 각각의 밑줄은 주인을 찾지 못하고 순서대로 나열합니다.)
-나를 믿는 대신, 나를 믿어주는 사람을 믿고, 그들에게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주는 쪽을 선택하기로 했다. (168p)
-돈이 괴로움을 끝내고 행복을 얻기 위한 최고의 수단이라는 이 사회의 기본 전제가 문제였다. (154p)
-포기한 자리에는 무언가가 반드시 채워진다. (71p)
-하지만 막상 내가 일할 때에는 그 긴 과정이 나에게 의미가 된다. 나의 의미, 나의 성장, 나의 깨달음으로 연결되는 일은 그만큼 시간과 정성이 많이 들어간다. 세상의 속도와 다른 방식의 성숙과 배움이기에, 이런 일들의 가치는 돈으로 인정받기 어렵다. (126p)
-포기도 때가 있고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중요한 것은 무언가를 포기한다고 삶이 포기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72p)
저자는 도시의 풍족함과 평범하게 돈 버는 삶을 버리고 시골에 가서 산다고 해서 자본주의를 포기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돈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돈이 주는 더 중요한 가치를 위해 살 때 돈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수단이 된다. 시대를 넘어 여전히 사랑받는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는 '더 욕망하지 않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지금 가진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다'라고 믿고 자족하는 것. 이 책 한 권 읽었다고 우리 삶이 대단히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이런 삶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우리 삶은 지금 이대로 '충분히 좋다!'
11월 20일(토) 오전 10시
숲속의 자본주의자 / 다산초당
참가자: (발제자) 윤, 정, 달, 영, 진, 옥, 예, 은 (총 8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