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영쓰 Aug 29. 2022

프리랜서의 멘털 관리

365일 불안할 순 없잖아

투두리스트만 쓰고 끝나버리기도 하는 나의 하루.


프리랜서가 불안한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경제적인 불안정과 일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가장 크다.  


1. 프리랜서의 본질인 불안정

중간중간 회사 생활을 한 기간을 빼면 프리랜서로 일한 지도 10년이 다 돼간다. 그래도 일을 줄 회사도, 모아둔 돈도, 꼬박꼬박 들어올 고정 수입도 없던 프리랜서 초반 시절보다는 훨씬 더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다음 작업할 책이 없고, 이번 달 들어올 돈도 없고, 통장 잔고도 점점 사라지면 초조해진다. 출판 번역가는 보통 책 계약을 하고 난 후 한 달 이내에 100만원을 계약금으로 받고 책 분량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2-3개월 정도의 작업 기간을 갖는다. 300페이지가 넘는 두껍고 어려운 책은 4-6개월씩 작업하는 경우도 있다. 원고를 마감한 후 번역료 잔금은 (가장 이상적인 경우) 다음달 말에 지급받는다. 계약금 100만원을 받고 난 뒤 3-4개월 간은 출판사에서 들어올 돈이 없다는 말이다. 그 사이에 다른 책을 계약해도 어차피 받을 수 있는 돈은 100만원. 이전에 작업한 책의 잔금이 들어오는 경우도 있지만, 2-3개월 단위로 마감을 하면 1년에 작업할 수 있는 책은 많으면 4-5권 정도다. 그러다 보면 아무 수입도 없는 달도 생긴다. 미래를 위해 저축을 하는 건 너무 어렵고 기껏해야 2-3개월 생활비 정도를 세이브해 두는 것 같다. 물론 이건 내 경우이고, 다른 일을 하는 프리랜서나 능력 있는 번역가들은 더 풍족한 경우도 많겠지. (그렇겠지...다 나 같진 않겠지.)


책만 번역하면 당장 다음달에 들어올 돈이 없으니 책을 하는 중간중간 다른 번역 원고나 잡지 번역도 하고 여러 가지 글도 쓰고 (최근에 딱 한번) 강의도 한다. 이런 일들은 책 번역보다는 원고료가 빨리 들어오는 편이지만, 빨라야 한 달은 걸린다. 그래도 이런저런 돈 들어오는 수익원을 많이 만들어놔야 들어올 돈이 전혀 없는 슬픈 일을 막을 수 있다. 이런 불안감과 매번 싸우는 게 너무 지긋지긋해지면 한번씩 채용 사이트에 들어가서 나에게 고정 수익을 줄 회사가 없나 기웃거린다. 


2. 내 일은 지속 가능한가에 대한 고민

공무원인 남동생은 회사 생활을 하지 않는 누나의 경제적 불안정을 누구보다 걱정하며 한번씩 전화해서 유튜브를 해봐라, 사업을 해봐라, 부동산을 공부해라, 재태크를 해라 이런저런 솔루션을 제시하지만 그걸 못하는 이유는 매번 넘치고, 그런 통화를 마치고 난 날은 더 힘이 빠지고 내 일이 하찮아 보이기도 한다. 지금은 풍족하진 않아도 할 일이 있다는 데 매우 감사하고 있지만, 가끔씩 마지막 남은 책 작업이 거의 끝나가는데도 다음 작업할 책이 들어오지 않을 때도 있다. 이제 그만 은퇴해야 하나 싶고, 다른 알바 자리라도 알아봐야 하나 싶고, 메일함을 뒤적거리며 예전에 일했던 편집자들에게 안부인사인 척 책 좀 달라는 메일을 보내기도 한다. 그럴 때 들어오는 짧은 번역 일거리는 너무 소중하다. 매일 수도 없이 출판사에서 온 메일이 없나 메일함을 확인하고 온라인 서점에 들어가서 예전에 써뒀던 외서 기획서를 보낼 적당한 출판사를 찾기도 한다. 아침 산책을 하며 출근하는 인파와 그 사람들을 싣고 가는 버스를 보면 정말 백수가 된 것만 같고 이 백수 기간이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이런 기간에 미뤄뒀던 책 읽기과 자기 계발 같은 건 더 안 된다. 몸은 한가하고 마음만 몹시 분주한 상태. 물론 이 기간은 길어야 한두 달 안에 끝나지만, 불안해하며 시간을 허비하는 건 방학숙제 미뤄두던 초등학교 이후로 계속되는 악순환이다. 


3. 피할 수 없는 악평, 끝없는 적성 고민

검색 사이트에 자기 이름을 넣고 검색하는 건 연예인만이 아니다. 번역가도 마찬가지다.(혹시 나만 그..그..그런가?) 특히 새 책이 나오고 나면 책 판매 성적과 평이 너무 궁금해서 매일 책 이름을 넣고 검색해 본다. 그러다 그 검색 취미는 예전에 나왔던 책들로까지 확장되고, 그러다 예전에 했던 책에 달린 '번역이 엉망...' 같은 후기를 보고 혼자 화들짝 놀라 서둘러 홈버튼을 누른다. 쓸데없는 취미와 자연스럽게 이별하는 순간이다.  굳이 내가 작업한 책을 검색해 보지 않더라도 다른 번역가들이 유려하게 번역해 놓은 책을 마주하면 '나 같은 게 번역을 계속해도 되나' 싶은 자기 의심이 든다. 잘하는 번역가는 왜 이렇게 많고, 다들 어디서 이렇게 일을 하고 있나.

시나리오를 쓰는 언니가 자신감이 떨어질 때 예전에 자기가 썼던 칭찬 받은 드라마를 돌려보고 '그래, 난 원래 이렇게 잘쓰는 작가였어.'하고 자신감을 회복한다던데, 나도 가끔 그런 방법을 쓴다. 정말 열심히 했던 책, 잘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번역 원고를 열어보며 '맞아 , 난 잘하는 번역가야.'하고 자신감 회복에 나선다. 


4. 시간이 쌓이면서 느는 기술, 빠른 포기와 남탓하기

예전에는 내가 작업한 원고에 대한 담당자 피드백이 안 좋거나 심지어 아무 피드백이 없어도 괜히 걱정하고 눈치를 봤다. '원고가 별로인가? 마음에 안 드나?' 요즘은 '난 충분히 잘했어. 담당자랑 스타일이 안 맞는 거야.' 하고 간편하게 정리한다. 한번 일을 해보고 다시 일을 주지 않는 회사와는 잘 안 맞다고 빠르게 결론내리고 내 원고를 좋아해주고 다시 일을 주는 회사와 계속 일한다. 담당자가 고쳐달라면 군말 없이 몇 번이고 고쳐주고, 같이 일하고 싶은 출판사나 편집자한테는 몇 번이나 일방적인 구애를 보냈지만, 이제는 적당히 끊고 원문의 의도에서 벗어나지 않거나 오역이 아닌 한은 대부분의 수정도 그냥 넘어간다. 번역서의 질은 번역가의 역량과 노력이 중요하지만, 책 만드는 건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니니 잘 읽히는 방향으로 수정된다면 나도 오케이. 그리고 내가 일하고 싶은 곳이라도 몇 번 트라이해도 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인연이 없는 것인 줄 알고 빠르게 마음 접기. 


5. 매일의 루틴 지키기

설령 투두리스트만 쓴 뒤 아무것도 못하고 하루가 끝난다 하더라도 투두리스트는 매일 쓴다. 요가와 근력 운동도 3-40분은 꼭 하고, 비가 오지 않으면 만보 걷기도 열심히 채운다. 이번여름엔 캄보디아 언니네도 들어오고 이런 저런 일이 많아 일하는 리듬이 깨졌지만, 아침 9시에는 자리에 앉아 일을 시작하려고 한다. 중간에 딴짓을 하며 놀더라도 저녁 6시까진 책상에 앉아 있고 늦어도 밤 12시에는 잔다. 하루에 정한 번역 분량은 되도록 채우고, 마감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넘기지 않는다. 불안감을 만드는 요인은 되도록 제거하고, 안정감을 주는 매일의 루틴은 지키려고 한다. 프리랜서의 본질이 불안정이라면 잘 껴안고 살아봐야지. 오늘의 할일 지금부터 시작.


작가의 이전글 프리랜서의 일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