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린다.
나는 비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 빗소리는 귓가를 경쾌하게 두드리지만, 내 마음을 가라앉힌다.
투둑투둑
빗소리처럼 내 마음도 흘러내리는 것만 같다.
힘든 일이 있었다. 여전히 힘들기도 하다. 그리고 마음속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하얀 종이가 비에 젖으면 회색빛으로 바래듯이 내 마음도 그러했다. 그리고 무기력을 데려왔다. 무기력함. 사실 이런 경우가 거의 없었다. 나에게 찾아오는 징후이기도한 이 무기력은 나에게 늘 병을 주고 나서야 없어졌다. 단순히 비가 와서라기보다는 유독 비오는 날 그런 경우가 많았고 내 생각에 나는 지금 아플예정인 것 같다. 이런 시기에는 약해지기 마련이었고 기댈 곳이 필요한 어린아이가 되곤 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갈 수록 어린 모습을 드러내기가 꺼려져 감추고 감추며 혼자 끙끙 앓기 시작했다. 혼자 참아내기. 어쩌면 조금은 나이가 들어 내가 터득한 방법인 것 같다. 비가 내려 땅이 젖고 몸이 젖고 마음이 젖어서 결국에 나도 흘러내린다. 누군가의 이해를 바라지도 다가와주기도 바라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나에게서 멀어지기를 권장하는 편이다. 이런 날의 나는 상당히 날카롭게 가시를 세우고 있으니. 오늘이 그러하다. 너무 힘들고 지쳐서 내가 했어야할 공적인 일들도 양해를 구하고 뒤로 미뤄버렸다. 다가오는 추위에 이불을 뒤집어 쓰고 방구석에 몸을 뉘인채 하루 종일 생각을 버려냈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상당히 냉소적이고 이성적인 상태인 지금 이런 글을 쓰는 것은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 '이제 그만 그 안에서 나와라'라고 말하기 위함이다.
이런 배려없는 글을 쓰기는 싫었지만 나만의 해소방법 그리고 반드시 필요한 출구였기에 생각을 적어내려간다. 나만의 카타르시스. 그리고 나는
내일부터 아플 예정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