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신승훈_나비효과
: 신승훈 씨의 ‘나비효과’ 선생님과 함께한 경험들이 지금의 내게 큰 영향으로 다가온 것에 대한 노래로 선정해봤다.
왠지 거창한 예술가의 입에서 나올것 같은 말이지만 난 똥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대 때 나의 꿈은 디자이너, 만화가등이었다. 10대 때 내 인생에서 미술이 큰 영향을 미친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내 그림의 첫 시작은 6살 때 만난 미술 선생님이었는데 그 인연은 내가 초등학교를 마치는 순간까지 이어졌다. 미술선생님은 단순 강사가 아닌 멘토의 느낌에 가까웠다. 미술에 대한 기술적인 역량보다는, 미술 자체에 대한 관심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또 내 시야를 넓여주시기 위한 많은 경험을 쌓는 데 함께했다. 그리고 당시 나의 일상을 학원에서, 혹은 선생님과 많은 시간을 보냈었는데 일상에서조차 많은 영향을 받았다. 옛날 기억이 정확하게 나는 것들이 별로 없어서, 정확하게 기억나는 조각은 없지만 선생님과 보낸 시간 중 나의 인생에 순간순간 스며들어있는 것이 많다.
솔직히 당시에 미술학원을 생각했을 때 가장 강렬하게 떠오르는 기억들은 함께 일상을 보냈던 일이다. 미술선생님 댁에서 컵라면을 먹거나, 볶음밥을 해주시면 선생님과 함께 밥을 먹고 선생님의 강아지와 놀곤 했다. 당시 먹었던 음식들 중김치볶음밥에 약간의 설탕을 뿌렸을 때 맛이 최고조가 된다는 것, 처음 먹어본 사리곰탕 컵라면들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부모님이 두 분 다 선생님이었기에 오후 시간이 항상 비어있었는데 선생님이 나를 업어키우셨던게 아닐까. 지금생각해보면 단순 학원 선생님이 그렇게까지 해주시기 쉽지 않은데 나를 굉장히 아껴주셨던 것 같다. 어렸을 적엔 그것도모르고 당연하게 선생님과 시간을 보냈었다.
이 때 강아지라는 존재에 대해서 처음 알게되고 애정을 느끼게 되었다. 미술학원에서 아롱이, 다롱이와 함께 그림을 그리고 아롱이가 새끼를 낳았을 때 너무 강아지가 좋아서 강아지 키우는 건 절대 금지라던 부모님께 애걸복걸하며 아롱이 새끼 1마리를 집에 데려와서 1박 2일을 함께 지냈다거나.. 지금 생각해보면 참 나도 똥고집이 심했다. 그리고 그 경험이 이어져 결국 지금의 ‘코코’를 키우게 되고 또 유기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 대학생 때 유기견 관련 프로젝트를 하게 된 기반이 되었다.
어렸을 때 미술 선생님과 자주 가던 그림대회의 풍경
동시에 선생님은 미술과 관련된 여러가지 경험을 통해 다방면의 감각을 키울 수 있도록 하셨다. 가장 많이 기억에 남는 것은 미술대회였는데, 나는 유치원 때부터 수 많은 미술대회를 나갔다. 그 중 여러 번 상을 탄 경험은 지금까지도 부모님에게 자랑거리가 되었고 나에게도 엄청나진 않지만 그림에 대한 역량이 조금은 있구나라는 작은 자신감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어렸을 때 그림을 잘 그린다 해도 갈고 닦지 않으면 무뎌지고 제쳐진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중고등학생 때 노트에 만화를 그리거나 하며 끄적이는 취미를 꽤 길게 가져가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여러 전시회, 오페라, 발레, 뮤지컬 등도 선생님으로 인해 접하기 시작했는데 이게 지금의 내가 뮤지컬을 시작하게 한 첫 단추였지 않았을까 싶다.
솔직히 그 때 이후로 내가 미술에 깊게 관심을 두지 않아서 지금 내가 다른 그림을 그린 친구들 혹은 나보다 더 늦게 그림을 시작한 친구들보다도, 훨씬 역량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다만 여러가지를 폭넓게 느껴본 경험으로 인해 내가 감각적인 부분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쉽게 공감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 같다. 특히 마케터로 일을 하고 있는 지금도 내게 미적인 부분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면 생각을 할 수 있는 범위가 좁아졌을 것이다. 조금 거창하게 이야기해보자면 미술 선생님과 함께 경험했던 것들이 내 취향, 내 삶의 기반이 되지 않았을까? 당시 함께한 것들이 나비효과처럼 내 삶에서 이렇게큰 부분이 될 줄 몰랐다.
중학생에 들어서면서 살고 있던 지방에서 급하게 인천으로 이사를 오면서 선생님과의 인연은 끝났었다. 그리고 몇년이지나 대학생이 된 후 연세가 좀 있으셨던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전해들었다. 당시에도 꽤나 충격이 컸지만 지금이렇게 글로 적으며 선생님이 나에게 준 영향을 돌이켜보면서 감사하다는 말, 고맙다는 말, 당시에 선생님이 함께 해준 시간들이 이렇게 내가 잘 크도록 만들어준 단단한 뿌리가 되었다는 말 한마디를 전하지 못한 것이 마음 한켠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글과 함께 올린 ‘신승훈-나비효과’ 음악의 가사처럼, 선생님을 보내기 전에 조금 더 빨리 미리 느꼈더라면 지금 우리는 차한잔을 함께 하며 “그땐 그랬지~”라며 소소한 담소를 나누며 웃을 수 있었을까.
지금도 나는 내가 먼저인 이기적인 사람이라, 이 부분을 간과할 때가 많다. 나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을테니 주변을 조금 더 돌아보고 늦지 않게 마음을 전하며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