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목소리를 내기 위하여
“얼마 전에 이슬람 여군들에 대한 영상을 봤어요. 여군들이 남군에 못지않게 훈련을 받고 부여받은 임무를 모두 수행하더라고요. 이제 여성들이 남성과 체력적인 차이도 극복하게 된 것 같아요. 여러분도 이제 차별 없는 세상에서 꿈을 펼치세요.”
학교에 초대받아 온 어떤 남성 분이 100명 남짓 되는 우리들 앞에서 한 말이다. 어떤 악의도 느껴지지 않았고, 정말 순수한 격려를 위해 고르고 골라한 말이라는 느낌이 들었지만 따라오는 불쾌함과 불편함도 막을 수 없었다. 그 당시에는 그 감정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불편함을 느낀 몇몇의 친구들도 그에 대해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그저 그 불편함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리고 일부는 이 말을 잊었을 것이고, 일부는 각자의 시간을 갖고 그 불편함의 이유를 찾았을 것이다.
나는 겁이 많은 사람이라 이 불편함의 감정과 내가 밝혀낸 이유를 주변과 공유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내가 잘못 오해를 한 것은 아닐까? 내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아닐까? 끊임없이 고민하였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예민함이 오랜 시간 억제되고 감춰졌었기에 지금 내 감정이 다시 억눌러지고 있다는 결론에 달아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정책과 복지와 법으로 많은 여성들에 대한 보호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요즘 이런 불편함과 예민함이 가장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이미 눈에 보이는 많은 것들을 통해 배려를 하고 변화를 만들어 주고 있는데 무엇을 더 바라는 것이냐는 공격이 힘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체력적인 한계를 넘어서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그리고 체력적인 한계를 넘어섰다고 해서 우리가 겪고 있는 차별이 사라지지 않는다. 만약 그것이 사라진다면 이전까지 고통받았던 많은 여성들은 단순히 체력적인 한계를 넘어서지 못해서 무수한 차별을 감내했어야 했던 것일까? 그리고 차별을 극복한다는 것이 지금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남성의 사회와 체계에 잘 흡수되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 여성으로 차별을 받아왔기에 여성을 버리고 남성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아직도 일상의 한 마디, 하나의 행동에도 다름이 아닌 틀림을 경험하며 살고 있다. 그것은 더 이상 매우 노골적인 배타적, 공격적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는다. 하지만 매우 호의적인 모습으로, 매우 배려하는 방식으로 우리가 틀렸음을 말하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 예민해져야 하고 더 입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