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생일 축하해
요즘도 가끔 손편지를 쓴다. 친구의 생일이나 졸업, 연말이나 다른 중요한 일이 있을 때. 매번 꼬박꼬박 모든 사람들에게 쓰고 싶지만 중고등학교 때만큼의 부지런함은 잘 유지되지 않는다. 오래전부터 알던 친구들은 나에게도 손편지를 자주 써준다. 그들이 그들의 다른 친구들에게도 손편지를 써주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와 그들 간에는 오래된 습관이자 약속처럼 해마다 한 편의 손편지는 주고받는다. 그렇게 쌓인 편지가 내 방 침대 아래 박스에 꽤나 모였다.
대학교 친구에게 처음으로 생일 선물과 함께 손편지를 써주자 친구가 놀랐다. 그냥 축하 카드인 줄 알았던 작은 종이에 빼곡히 글이 차 있을 줄은 몰랐다고 했다. 그리고 내 생일에 다시 손편지 답장을 써줘야 할 것 같아 부담이 된다고 했다. 그래도 그 해 나의 생일에 그 친구로부터 손편지를 받을 수 있었고, 또 하나의 귀찮고 부담스럽지만 그래도 좋은 약속이 하나 더 생겼다.
내 기억상 아빠는 나에게 두 번의 편지를 써줬다. 두 번다 컴퓨터로 써서 에이포 용지에 프린트 한 편지였다. 나는 웬만한 편지는 다 보관하는 편인데 저 두 편지는 찾을 수 없는 걸 보니 내 기준에 에이포 용지에 정갈하게 프린트된 글자들은 편지로 생각되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확실히 정갈한 글자에 정돈된 내용의 편지보다는 몇 번을 읽어보고 생각해봐야 이해가 되고 그림이 그려지는 삐둘빼둘횡설수설 편지를 더 좋아한다. 그쪽이 더 진심처럼 다가온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디서부터 시작할지는 모르겠지만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이마 아안 큼 있다.”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그래서 편지를 읽으면서도 마치 얼굴을 보며 수다 떠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나도 편지를 쓰기 시작할 때는 큰 생각 없이 시작한다. 마음에 드는 편지지를 고르고, 편지를 받는 사람의 이름을 쓰고, 내 이름을 쓰고. 누구야 안녕? 하고 일단 시작해본다. 그러고는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을 손이 아파올 때까지 마구마구 써내려 간다. 그러다 보면 쓰고 싶은 말을 다 쓰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중간중간 흐름은 당연히 뒤죽박죽이고, 끝에는 항상, 아무튼 생일 축하해 혹은 아무튼 메리 크리스마스 등으로 급하게 편지를 마무리 짓는다.
뒤죽박죽 횡설수설 편지는 내 취향이기 때문에 받는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나는 대로 하고 싶은 말을 마구 써 내려간 편지는 일단은 주어진 면적은 다 채우게 되어 있기 때문에 상대방도 글씨로 빽빽한 편지를 받는다면 잠시라도 마음이 풍족해지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