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도 Mar 18. 2020

웰메이드

잘못된 잘 만들어진 것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열리는 영화 강의를 듣던 중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유독 한국 영화 업계에서 두드러지는 현상이 있다는 것이었다.

 

“한국에는 웰메이드 영화가 너무 많습니다. 비록 저 예산의 독립 예술 영화라고 할지라도 그 형식은 초 블록버스터 영화를 따라가려고 하고요. 모든 감독들이 입봉을 목표로 영화를 만들며 관객들도 주류의 익숙한 모습이 아니면 그것을 꼬투리 잡아 얕잡아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굳이 영화 쪽에서만 한정된 얘기는 아니지만요”

 

임준근 평론가의 개인적인 의견이고 나도 영화나 영화 업계에 대해 깊은 경험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어떤 것이 ‘잘 만들어졌음’이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이 꼭 한번 생각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회가 다양성을 많이 담아내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모든 사람들이 한 가지 지향점을 가지고 있고,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다수가 그렇게 생각하는 바람에 그 지향점과 다른 방향이거나 미치지 못한 상태나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닌 틀린 사람이 되어버린다.

 

지금의 내 상황과 엮어 생각하게 되어 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중학교, 고등학교, 입시까지는 그냥 당연하게 여겼던 같은 공부와 같은 시험, 같은 목표점이 대학에 진학하고 졸업을 앞둔 시점까지 아직 변한 것이 거의 없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심지어 소위 ‘창작’을한다는 전공임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다른 점보다는 같은 선 상에서 어느 위치에 와 있는지를 경쟁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이것이 다 나중에 먹고살기 위한 바탕이라지만 학생이라는 신분과 학교라는 보호막 내에 어쩌면 마지막으로 용인될 수 있는 차이와 모자람이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보이는 차이와 모자람은 각 개인이 어떤 것에 더 중요도를 두고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 되기도 하고 굳어 있는 사회 통념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되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짧지는 않은 4년 동안의 학교 생활을 하면서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작업이 아니라 다들 하니까, 그것이 잘하는 것이니까 라는 압박 속에서 작업을 하다 보면 회의감이 드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렇게 가끔이나마 남의 입을 통해 이런 의견을 듣지 않으면 내가 할 수없어서, 하고 싶지 않아서 회피하고 핑계를 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며 이런 생각마저 억압하게 된다. 강연 덕분에 오랜만에 트인 숨통으로 웰메이드가 아닌 나의 방향과 나의 선택이 무엇인지 자신감을 갖고 생각해볼 시간을 갖게 되었다.



웰메이드가 아니라 더 행복할 수 밖에 없는 정동진 영화제


매거진의 이전글 손편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