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주 10km를 걸었는데 집에서 도자기 마을까지 왔다 갔다 하는 길이 젤 좋았고 비와도 좋았다. 어린 시절 멱 감고 놀다가도 물컹하고 부드러운 하얀 흙(백토)을 본 기억이 있는데 지금 생각하면 여기, 도자기 마을 근처의 냇가였다.
정동원 가수의 할머니가 이곳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중이라 연두색 옷을 입은 팬들로 주말 평일 문전성시지만 조선시대 화공 장승업의 이야기인 취화선의 마지막 장면을 여기서 찍었다는 것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하동군 진교면 백련 도자기마을 가마
기생 매향을 만나 다시 그림 한 점 그려주고 장승업이 도착한 곳이 도자기 마을이다.
떨리는 손으로 백자에 그림을 넣었는데 수전증 환쟁이로 오해도 받았다가 몰라 봬서 죄송하다는 말도 들었다가,
자네(도공 1)는 어떤 그릇이 나오길 바라나?
ㅡ 화공들은 철사가 안 녹아 그림이 온전히 살아 나오길 바랄 것이고
ㅡ 유약 바른 사람들은 유약이 잘 녹아 흘러내리길 바랄 것이고
ㅡ 가마 주인은 한두 점 명품이 나오길 바랄 것이지만요
어디, 그게 맘대로 되는 것인가요? 불이 하는 것이지요
도공 1이 도원에게 이렇게 말하고 한 숨 쉬러, 자러 간 사이 도원(장승업)은 불이 된다. 가마로 들어간다.
장승업과 스승 김병문(안성기 역)을 보면 이소룡과 스승 엽문이 생각난다.
나는 어떤 지면에 아래처럼 시를 발표한 적 있는데
최소한
1회전은 무조건 맞아라
명심해라
2회전은요?
계속 맞아라
그럼 상대방은 기고만장할 텐데요?
너무 창피하지 않아요, 나만 맞으면
3회전 30초 남겨 놓고 딱 한 번만 공격해라
왜 자꾸 의욕을 꺾으십니까?
넌 아무 생각하지 말고 집에 가서 잠이나 푹 자라
맘에 들지 않겠지만,
전 맞기 싫습니다
힘을 모으는 법은 맞아 보는 게 제일 확실하다, 얘야
제발
싸움만은 하지 말거라, 얘야
-석민재, '밥이나 겨우 먹고 삽니다'
밥이나 겨우 먹고 삽니다
장승업의 천재성은 인정하나 손에서 붓으로 붓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진심에 대하여 스승은 늘 강조했다. '붓의 혼은 밀지 말고 끌고 가야 한다. 모양만 갖춘다고 그림인가? 의미(뜻)가 담겨야지'. 그림 선배들의 조언과 스승의 가르침에 장승업은 술상을 자주 엎었고 스스로에게 화를 자주 냈다.
그림에는 '완성'이 없다.
무술에는 '완성'이 없다.
화원들의 장점은 다 받아들여 작품은 수려하나 아주, 달라지고 싶어 했던 장승업과 세계 각종 무술의 장점과 영춘권을 결합해 간단하면서도 '한 획의 낭비가 없었던' 이소룡.
그림에도 혈이 있다. 무술도 혈이다. 내 발로 서서 이뤄야 꿈이 아니라는 김병문의 말이 참 좋았다. 샛바람 잘 불게 해주고 날씨 변덕 없게 해 주소서, 말하며 불을 지핀 자의 기도가 들려오는 날,
도자기 마을 여기저기를 이소룡처럼 다니며 정성스럽게 살폈다. 기마자세만 시킨다고, 맞으라고만 했다고, 불평 많았던 이소룡이 절권도 창시자가 되기까지 매일 10km를 달려 엽문 스승께 갔던 순간을 떠올렸다. 불이 되어 사라진 장승업을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