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후, 하면 이소룡이다. 절권도 이전의 이소룡. 도교사상을 바탕으로 손과 발, 온몸을 움직였던 무술.
다리 찢기도 앞구르기도 잘 못 하는 내가 이소룡을 좋아한다. 그의 삶에서, 생각에서, 태도에서 '글 쓰는 이론, 시 이론'을 찾아 혼자 공부한다. 이소룡의 선생 소여해도, 엽문도 내게 훌륭한 선생님이다.
우리에게 TV라는 어마어마한 싱크탱크가 왔을 때는 이소룡은 죽은 사람이었으나, 유선방송을 통해 이소룡, 성룡의 웃픈 영화를 보면서 매일 살아있는, 방금 죽었으나 또 살아나는 기인처럼 만났었다.
두 손을 잡았다. 왼 손 위에 오른손을 포갰더니 태극이 되었다. 배꼽에 당겨와 살짝 놓고 숨을 마셨다 뱉었다 한다. 흑과 백. 음과 양은 이것을 말하는 게 아닐까 하며 순간 내 짧은 깨달음에 스스로 놀라기도.
이소룡이 오늘은 이거 했다가 내일은 저거 했을 때, 무술을 배우지 않았을 때는 차차차도 잘 췄고 권투도 잘했다. 먼저 사람을 때리지는 않았으나 자존심이 세 싸움도 했다. 때리고 와도 걱정이고 맞고 와도 속상해 부모가 늘 애탔다. 잠 못 자는 날이 잦았다.
책에서 본 대로 싸운 이소룡이 어느 날 자신이 이긴 이유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돼지 하고 닭은 먹이를 찾는 법이 다르며, 방어할 때는 돼지처럼 뒤뚱거리며 나아가다가 공격할 때는 닭처럼 해야 해."
"닭처럼?"
"닭은 공격할 때 부리를 쓰지 않아. 끊임없이 날갯짓하면서 부리로 상대를 쪼지만 그건 상대를 홀리는 것이고, 진짜 공격은 발톱으로 상대의 모이 주머니를 잡지.."
"그랬구나. 그래도 제발 참으면 안 되겠니?"
공격과 방어를 같이하는(탄타수)데 유리한 영춘권을 소여해라는 선생(이소룡 아버지의 친구)을 만나 배운다.
아저씨, 전 이기고 싶어요
아저씨, 전 공부가 맞지 않아요
죽을 때까지 배워 남는 건 무엇일까?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무술은 평생하는 거야, 개인적인 일이야...
권투에서 이겨도 마음은 별로였던 이소룡, 차차차 전국대회 참가를 포기하고 만난 영춘권, 엽문 선생. '그저 살아갈 뿐이다. 무언가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로 현시대까지 무술 스승, 전설이 되기까지 그는 어디서 무엇을 왜 하였는지 내가 본 만큼, 알고 있는 만큼 이야기 나누고 싶다.
나는 문학 창작 전공자가 아니다. 훌륭한 시 이론서나 필독서라 말하는 책들은 밑줄 치면서 공부했고 하고 있다. 하지만 논리 없이 이론 없이 가장 사실있게 보여준 책은 이런 주인공들 이야기다.
시처럼 살다 간 사람들의 생생한 희로애락과 그들이 어떻게 무엇을 위하여 살았는지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시간이 가장 효과 있는 공부다. 이소룡 이야기가 그렇고 엽문은 내게도 스승이다. 이들을 글 스승이라 부르면 웃을 사람들이 많겠지만, 나는 자주 언급한다.
엽문처럼 가르치고
이소룡처럼 배우라고.
싸움이거나 무술이거나 사람과 사람의 최단거리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혼자 일어나야 할, 일으켜야 할 몸과 정신에 대한 일이다. 배워도 배워도 끝없는 질문이다. 물어도 물어도 정답 없는 답이다. 시도 이와 같다.
이소룡이 좋아서 그의 생애와 영춘권, 엽문에 대한 영화를 보고 또 본다. 유하 작가가 쓴 산문 <이소룡 세대에 바친다>를 좋아하며, 어느 조감독이 쓴 <이소룡 평전>을 중고 책방에서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