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여행
일행의 부상으로 하이킹을 며칠 일찍 끝마치게 되어 일정이 비게 되었다.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다 치트완 국립공원에 가기로 했다. 네팔 남부에 위치한 치트완 국립공원은 많은 멸종 위기 동물이 살고 있는 곳으로 여행객들은 사파리를 하기 위해 찾는다. 게스트 하우스 사장님은 우기에 치트완을 가는 건 추천하지 않는다고 하셨지만 우리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찾아보니 치트완에서는 혼자 돌아다니는 게 어렵기 때문에 보통 교통, 숙박, 밥, 액티비티가 모두 포함되어 있는 패키지를 통해 갔다 온다고 했다. 포카라 내 여행사 4군데를 돌아다니며 발품을 팔아보았는데 호텔에 따라 가격 차이가 나는 듯했다.
다음 날 포카라에서 아침 7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치트완으로 향했다. 치트완까지 6시간 정도 걸렸는데 이미 카트만두에서 포카라까지 가며 12시간 동안 버스를 타봤기 때문에 이 정도는 아무렇지 않았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누군가 우리를 손으로 가리키며 반갑게 흔들었는데 앞으로 2박 3일 동안 같이 다닐 가이드였다. 버스에서 내리는 유일한 동양인이라서 한눈에 알아봤나 보다.
버스 정류장에서 숙소까지는 릭샤를 타고 이동했다. 모든 교통이 패키지에 포함되어 있다 보니 지도를 보지 않아도 되고 흥정을 하지 않아도 되어서 편했다. 치트완은 시골이었다. 초록 초록한 논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사람들은 보기 힘들었다. 정신없는 카트만두에서 어딘가 들떠있는 사람들로 가득했던 포카라에서 왔다 보니 오히려 좋았다.
걱정했던 숙소의 첫인상은 괜찮았다. 직원들은 친절했고, 웰컴 드링크는 시원하니 맛있었고, 키우는 강아지는 귀여웠다. 하지만 방에 들어가자마자 생각이 바뀌었다. 여행사에서는 분명히 이 숙소가 최근에 리모델링을 해서 깔끔하다고 했는데 도대체 어디를 어떻게 고쳤다는 건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근데 또 뭐 어쩌겠는가. 불평을 하려면 네팔에 오지 말았어야지. 먼지가 없어 보이는 곳에 짐을 대충 풀고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식당에 손님이 아무도 없어서 직원에게 물어보니 내일까지 손님은 우리뿐이라고 한다.
일정상으로는 타루족 박물관을 갔다가 강가를 따라 걸으며 일몰을 보고 전통 춤을 구경하는 거다. 그런데 비가 계속 와서 어디도 가기 애매하게 되어버렸다. 대신 숙소 근처 구경을 가보기로 했다. 마침 운이 좋게도 숙소가 시내 근처에 있어 걸어서 충분히 갈 수 있었다. 시내에 가게는 꽤 있었는데 호텔처럼 손님은 없었다. 비도 추적추적 오니 분위기가 으스스했다. 인기 많아 보이는 곳에서 빠니뿌리를 먹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다행히 전통 춤 공연은 실내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날씨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공연장으로 가니 예상외로 사람들이 많았다. 아마 오늘 치트완에 놀러 온 사람들이 다 모였지 않았을까. 공연은 재미있었다.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참여하는 공연이었다. 여러 춤을 보여주었는데 원을 그리며 돌면서 나무 막대기를 서로 치며 소리를 내는 공연이 가장 멋있었다. 마지막엔 모두가 참여하는 춤판이 벌어졌다.
밤새 비가 내리더니 다음 날 아침에는 오랜만에 해가 떴다. 비가 오면 아무런 일정을 할 수 없어 걱정을 했는데 저 멀리 설산이 보일 만큼 날씨가 좋았다. 어제까지는 믿음직스럽지 않아 보였던 가이드는 어느새 유니폼을 입고 한 손에는 막대기를 한 손에는 'Book of birds in Nepal' 책을 들고 있었다.
첫 번째 일정은 카누를 타고 갠지스 강을 따라 흘러가며 강에서 사는 다양한 동물들을 보는 거다. 이 갠지스 강은 인도의 바라나시까지 이어지는 그 갠지스 강이었다. 10년 전 인도 여행에서 보았던 갠지스 강의 상류가 치트완이었다니, 신기했다. 며칠 동안 계속 온 비로 강의 유속이 빨라져 평소에는 45분 정도 걸리는 투어가 오늘은 25분 정도면 끝난다고 했다.
오랜만에 나온 햇빛을 즐기기 위해 나온 악어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강에는 두 종류의 악어가 사는데 한 종류는 순하고 한 종류는 모든 것을 다 먹어버린다고 한다. 불과 2주 전에 낚시를 하고 있던 현지인의 다리를 물어 죽였다고 한다. 가이드는 치트완에서는 사람이 동물에 의해 죽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며 별일이 아닌 듯 말했다. 그러다 악어 한 마리가 물에 들어갔는데 가이드가 순간 잠시 놓고 있던 막대기를 들었다. 물어보니 악어가 혹시나 배를 공격할 수 있어서 그랬다고 했다…!
배는 우리를 투어가 끝나는 곳에서 내려주고 또 사람들을 태우기 위해 돌아갔다. 오늘같이 유속이 빠른 날에는 다시 돌아가는 데 2시간이나 걸린다고 한다.
다음 일정은 정글 워크. 단어 그대로 정글을 걷는 거다. 배에서 내린 곳부터 시작했다. 아쉽게도 길이 좋지 않아 정글 깊숙이는 들어가지는 못했다.
정글 워크가 끝나는 곳은 코끼리 브리딩 센터였다. 사람들이 정글을 걸어 다니기 힘들기 때문에 코끼리를 훈련해 타고 다닌다고 한다. 이곳에서 엄마는 여러 마리 이지만 아빠는 한 마리라고 한다. 로날드라고 불리는 이 코끼리는 사나워 지금까지 20명이 넘는 사람을 죽였다고 한다. 최근에도 집에 들어가 사람들을 죽였다고.
이렇게 사람들이 계속 죽어가는 데도 왜 아무런 대책이 나오지 않는 걸까. 가이드는 동물에게 죽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난하기 때문인 거 같다고 했다. 치트완에서 집이 없어 떠돌아다니는 사람들 중에는 갠지스 강에서 잡은 물고기와 길가에 나는 코끼리 풀을 시장에 팔아 생활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사고가 주로 발생한다는 거다.
숙소에 다시 들어왔더니 셰프가 달팽이 요리를 준비해 놓았다. 즐겨 먹는 식재료는 아니기에 간단히만 먹고 시내에 나가 카페에 들어갔다. 네팔 생맥주를 팔고 있기에 맥주를 마시며 가장 해가 뜨거운 시간을 시원하게 보내다 마지막 일정인 지프 사파리를 하러 갔다.
정글 워크에서는 정글의 입구 정도만 탐험했다면 이번에는 지프를 타고 안쪽까지 들어가 볼 수 있었다. 정글에는 사슴이 많이 살고 있었는데 얼마나 많이 봤던지 끝날 때 즈음 가니 더 이상 놀랍지도 않았다. 사슴도 우리를 보고 놀라워하지 않고 그냥 빤히 쳐다봤다. 그 외에도 악어, 코뿔소, 코끼리, 새, 멧돼지 등 다양한 동물들을 볼 수 있었다. 정글이다 보니 풀과 나무 사이로 동물들이 숨어있었는데 가이드는 어떻게든 동물들을 찾아냈다.
지프 사파리를 끝내고 정글을 나오면서 오랜만에 아름다운 노을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