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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도 Aug 21. 2022

정말이지, 이거, 기절한다

김혼비,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를 읽고

어렸을 때만 해도 내향적이라는 건 변화가 필요하다와 같은 말이었다. 그래서 엄마는 큰 소리로 말하지 못하는 나를 항상 답답해했다. 하지만 나는 목소리가 크지 않았을 뿐 그다지 내향적인 성격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직도 기억나는 일화가 하나 있는데 가족끼리 어린이날 기념으로 간 행사에서 댄스 대회가 열렸고 나는 누가 나가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무대에서 당시 유행이던 테크노 댄스를 췄다. 하지만 엄마에게 나는 항상 부족한 아이였고 내 성격을 바꿔놓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어린이 농구 교실에 다니게 되었다.


운동이라고는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했던 고무줄놀이와 체육시간의 피구뿐인 나에게 농구는 생각지도 못 했다. 막상 시작하니 농구공을 다루는 것도 힘든데 규칙은 왜 그리 복잡한지, 그리고 낯선 친구들과 몸을 부딪힌 다는 건 너무나 어색하기만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농구가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그건 내가 농구를 잘 하게 되어서도 아니고, 5초 이상 공을 들고 아무것도 안 하면 규칙 위반이라는 걸 드디어 이해해서도 아니었다. 나 혼자 잘한다고 시합이 잘 풀리는 게 아니고, 내가 못 한다 해도 시합을 망치는 게 아니라는걸 알게되었다. 승리라는 하나의 같은 목표를 위해 팀플레이를 하는 재미를 알게 되자 몸싸움이 없는 시합은 시합 같지도 않았다. 공을 뺏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그러다 넘어지면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팀원들과 한바탕 웃고 나서 일어나 다시 달렸다. 농구에 한창 빠지게 된 나는 이후에 전학 간 학교에 있던 여성 농구 팀에 잠시 속해있기도 했다. (그렇게 농구 운동선수가 되기 위해…는 아니고 농구에 관심 있는 학생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아마추어 팀이었다.) 


지금도 그 당시 농구하던 기억을 떠올리면 행복해진다. 지금 살고 있는 곳 근처에 여성 농구 팀이 있는지 종종 찾아보곤 하는데 대부분 서울을 거점으로 하는 곳 뿐이라 아직 어느 농구팀에도 속해있지는 않다. 그럴때면 아쉬워하며 혼자서라도 근처 농구장을 찾는다.



“여자가 O O를(을) 한다고?”라는 문장에서 O O에 들어갈 숫자를 줄이는 것 같은. 나와 우리 팀과 수많은 여자 축구팀 동료들은 저기서 ‘축구'라는 단어 하나를 빼는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어쩌다가 어렸을 때 농구를 잠시 했다는 얘기를 할 때면 몇 번이고 들어보았던 말이다. 내 옆에서 나와 비슷한 얘기를 하는 남성은 듣지 않는 말이기도 하다. 그럴 때면 그 말을 한 사람의 편견을 깨는데 사례로서 사용될 수 있다는 생각에 음흉한 미소를 짓곤한다.


여성들에겐 언제나 운동장의 일부만 허락되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일 년에 한 번 있는 동아리 체육대회에서 남자들은 축구도 하고 농구도 하는데 여자들은 달걀 안 흘리게 옮기기와 같은 시합을 하기 위해서만 운동장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농구를 하는 남자들을 보며 동아리 회장에게 “여자들도 농구 시합을 하나요?”라고 물어봤을 때 그런 질문은 처음 들어봤다는 듯 당황스러워한 그의 표정이 기억난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운동장을 자신 있게 차지한 여성들이 자랑스럽다. 어떤 운동이라도 괜찮으니 모든 여성들이 운동장의 구석이 아닌 중앙을 가로지르며 뛰어보는 경험을 해보면 좋을 거 같다. 정말이지, 이거, 기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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