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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국식 Jul 05. 2021

퇴근하고 뭐하세요?

다채로운 교직생활을 위해

"퇴근하고 뭐하세요?"


처음 발령을 받고는 퇴근 후의 시간을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어디서부터 일의 시작이고 어디까지 신경을 써야하는지 가늠이 안되었다. 퇴근을 해도 퇴근을 한 것 같지가 않았다. 그 당시에 나는 맥주와 영화로 시간을 보냈다.


돈을 막 벌기 전에는 동네 슈퍼에서 카스나 맥스 큰 병을 사서 먹었다. 편의점에서는 맥주 됫병을 팔지 않았다. 돈을 벌면서는 편의점으로 갔다. 지금은 너무 보통이지만 당시에는 수입맥주 4개를 만원에 파는 것이 뜨는 트랜드였다. 트랜드를 따라 나도 퇴근길에 오늘 마실 맥주를 샀다. 지금 나의 맥주생활은 그때 마신 4병들이 맥주 경험으로 완성되었다. 그리고 그 맥주를 마시면서 영화도 많이 봤다. 넷플릭스나 왓챠도 없던 시절 지금보다 훨씬 더 이것저것 많이 봤다. 그렇게 본 영화들의 전부는 기억나지 않지만 조각조각들은 남아 살아가는데 부분부분들을 채워주곤 했다.


나도 어디서 선생입네하며 말할 수 있게 된 건 일년 쯤 지난 후였다. 그때는 운이 좋게도 학교에 친구들이 생겼다. 일하면서 생기는 고민도 나누고 욕도하면서 재밌게 일할 수 있었다. 그리고 퇴근해서도 재밌게 놀았다.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취했다. 그때는 직장에 친한친구 하나씩 있는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당연한게 아니라 엄청난 행운이었다. 교직생활에서 최고의 행운이자 시절이었을 수도 있겠다 싶다. 그리고 그때 먹고 마시고 취했던 시간이 지금까지 교직생활을 하는데 얼마나 큰 힘인지. 지금은 서로 다른 곳에서 근무하지만 멀리서도 위로가 되는 친구들이다.


그렇게 3년을 술마시고 놀다보니 건강에 문제가 생기지 않으면 그것도 이상하겠다. 무엇보다 아이들과 지내면서 쉽게 지치고 피곤해지는 것이 문제였다. 게다가 무릎인대도 좋지 않아서 수술도 여러 번 한 상태라 오래 서있거나 하면 더더욱 피곤해지는 날들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이렇게는 안되겠다 싶어 꽤 충동적으로 집 앞에 헬스장에 찾아갔다. 별 고민도 안했다. 그렇게 퇴근 후의 생활이 바뀌었다.


처음 찾아간 헬스장에 들어갔을 때 만난 사람이 있었다. 사실 조금 쫄아 있는 상태로 들어갔었는데 아마 그 사람이 아니었으면 등록도 안 했을 것 같다. 등록을 했더라도 덜컥 PT까지 신청하진 않았을 것이다. 덩치와는 다르게 친절하게 운동목적을 물어보고 무릎 재활의 목적이라니 자신이 어려워하는 부분도 속이지 않고 차분히 풀어가는 대화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그가 나의 첫 트레이너이다. 운동을 하면서 무엇을 배우고 이뤄간다는 사실이 설레고 좋았다. 내 몸을 그렇게 자세히 들어다보고 부분부분 세세하게 감각을 일깨우며 집중하는 시간이 처음이었다. 언젠가는 나보고 왜 그렇게 운동을 하냐는 말에 "명상하려구요"라고 대답했었는데, 실제로 집중해서 운동하다보면 명상하는 느낌으로 하게 된다.


그렇게 퇴근 후 운동에 빠진 무렵 항상 술마시며 놀던 친구들이 놀렸다. 헬스라는게 지금처럼 대중적으로 유행하지도 않았고 비싼 돈을 내고 PT를 받는다는게 핸드폰 요금 비싸게 계약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때였다. 물론 나때문은 아니겠지만 어쩌다보니 친구들도 같은 헬스장에 다니게 되었다. 이제는 직장에서도 만나고 퇴근하고 헬스장에서도 만나게 되었다.


운동을 시작하고 모두 좋았는데 몇 가지를 적자면 일단 본업을 더 잘 할 수 있었다. 몸이 쉽게 피곤해지지 않으니 쉽게 짜증내지도 않고 아이들의 말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지금도 바빠서 운동을 빠지거나 하면 반대로 느껴지는 변화이기도 하다. 다음으로는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어 좋았다. 운동을 배우면서 하는 대화들도 운동을 배우는 것 만큼이나 재밌었다. 그리고 운동을 하면서 알게된 사람들과 마주칠때 하던 스몰토크도 돌이켜보면 삶을 풍요롭게 하는 한 부분이었다.


언젠가 요즘 선생님들은 자기 취미 생활에만 집중이라는 듯이 하는 말을 들었다. 별 의미없는 요즘애들은 어쩌구 하는류의 말이라고 생각한다. 응답하라 1997에 "빠순이를 무시하지마라, 빠순이가 그 열정으로 사회에서 얼마나 열정적으로 사는데"라는 대사가 있다. 무척 공감한다. 나조차 무언가에 열정적으로 좋아하거나 미쳐있거나 해본 적은 없으나 대체로 교직생활을 하면서 아이들과도 잘 지내고 할 이야기도 많았다. 좋은 선생님이 되겠다며 연수에 연수를 이어 듣던 때도 있었고 교육만 생각해야 좋은 선생님이 되는지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다르다. 아직도 좋은 선생님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을 만나고 결국 영향은 말을 전하는 교사 자신이기 때문에 교사가 어떤 사람인지가 제일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지금의 생각이다


퇴근하고 뭐하세요. 간단한 질문이지만 이 질문을 참 좋아한다. 예전에는 퇴근 후를 물어보는 일이 종종 있었다. 내가 나이가 어려서 쉽게 물어보기도 했었겠지만, 정말 궁금했던게 아닐까 싶다. 어른이 시간이 아이의 시간보다 빠르게 흘러간다고 한다. 이유는 슬프게도 삶이, 하루가 점점 단조로워지기 때문이란다.


그런 이유로 앞에서 항상 멋있는 글을 연재하고 있는 황고운을 보면 멋있다는 생각을 한다. 아웃박스라는 단체를 운영하면서도 다른 독서모임도 운영하며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는 참 대단한 사람이다. 우연히 또는 운이 좋게도 작년에 운동모임을 같이하면서 느낀 거지만 노는 것까지도 무엇보다 누구보다 진심으로 열심히다. 


요즘에는 커피에 빠져있다. 처음에는 매일 아침 마시는 커피를 좀 더 맛있게 먹을 수 없을까에서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지금은 아침에 출근하면 핸드밀에 원두를 갈고 정성스럽게 커피를 내리게 되었다. 그 시간은 일찍 출근하여 여유롭게 교실살이를 시작할 수 있는 동력이 된다. 그리고 퇴근 후에는 다음날 아침에 마실 원두를 고르면서 그 원두를 생산하고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에 푹 빠진다. 그저 한 잔의 커피를 위해서 그래프를 그리면서 연구하는 사람들을 보고 또 그 열정이 나에게 전해진다. 그러면 또 열심히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리고 나도 아이들에게 그런 사람이길 생각한다.


나중에 혹시나 아이가 생겨서 나의 시간을 순수히 나를 위해 쓰기가 어려워지면 퇴근 후를 계획하는 게 힘들겠지만 끊임없이 재밌어 할만한 무언가에 빠지고 설렐 수 있길 바란다. 인생을 다채롭게 재밌게 살아가는 사람을 보면 앞으로의 인생을 더 기대하지 않을까.


누군가 언젠가 나에게 "퇴근하고 뭐하세요?" 물어오기를 기다린다. 그러면 나는 조금 격양된 목소리로 그때 관심있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기를 스스로 기대해본다. 그리고 오늘은 여기서 물음을 던져본다.


"퇴근하고 뭐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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