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황제의 숨겨진 민낯

왕공족 이태왕(李太王) 이야기

by 전용식

이미지 설명 : 출처 국립고궁박물관, 고종황제의 국장 화첩 이미지 中


들어가며

이 글을 쓰게 된 이유가 몇 가지 있는데요, 그중의 하나가 지난 2022년 가을 덕수궁에서 열린 황제 고종의 특별전시회를 보고 느꼈던 씁쓸한 감정 때문입니다. 나라를 잃고도 고종황제는 일제로부터 이태왕 작위를 받아, 왕공족으로 대우받으며 호의호식하던 곳이 덕수궁이었기에 그렇습니다.

알다시피 고종황제는 조선의 제26대 왕이자 대한제국 1대 황제입니다. 재위 기간만 1863년 12월부터 1907년 7월까지 무려 43년 7개월인 군주이지만, 이러한 고종의 평가는 두 갈래입니다. 긍정과 부정.

칭찬 일변의 전시회처럼 쇄국을 넘은 개화 군주이고, 자주독립의 근대 국가를 꿈꾼 황제라는 의견이 긍정 평가일터이고. 조선의 역대 왕 중에서 선조, 인조에 이어 가장 무능했던 왕이 고종이라는 치욕스러운 평가가 부정 평가입니다.

부정 평가에 대해 조금만 덧붙여 보겠습니다. 세도정치의 폐단과 삼정의 문란이 극에 달해 지배층인 양반들에 대한 불만이 커지는 것을 수수방관하였고, 일본과 서양 열강의 개항 압박 시기에 우왕좌왕하면서 일본에 나라를 넘겨주게 됐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일본의 식민지를 자초한 부패 하고 무능한 군주이며, 민비와 그 일가에 휘둘린 망국의 군주라는 것입니다

물론 반대의 논리도 존재합니다.

“대한제국의 황제가 된 고종은 조선의 연호를 광무라고 고치고,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꿨다.”

“최초의 헌법이라고 할 수 있는 홍범 14조를 반포하면서 광무개혁을 실시하였고, 일제 침탈기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한 의병 활동을 독려했다”라고 말입니다.

그렇지만 위에서 언급된 평가에도 불구하고 일치하는 부분은 분명합니다. 고종 자신이 나라보다는 왕권을 지키기에 급급했다는 것. 결국 그 결과가 식민화로 가는 중요한 동기가 됐다는 비판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3.1독립만세운동은 그의 의지와는 전혀 무관한 것이라고 말입니다.

1907년 순종에게 선위한 후 이름뿐인 ‘태황제(太皇帝)’로 물러나고, 1910년 일본과 대한제국이 합병되자 대한제국의 이름은 조선으로 고종은 태황제에서 ‘이태왕(李太王)’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당시 이태왕 전하가 덕수궁에 머물고 있었기에 ‘덕수궁 전하’라고도 불리었습니다.

이태왕 전하는 일본에 나라를 넘겨준 지 9년째인 1919년 1월 21일 덕수궁 함녕전(德壽宮 咸寧殿)에서 승하하였습니다. 별다른 병세가 없는 가운데 시신이 부풀어 오르는 등 사후 징후가 뚜렷했기 때문에 이태왕 전하의 사인을 둘러싸고 일본에 의한 독살설이 제기되었고, 이러한 소문은 민족의 의분을 자아내며, 반일 감정을 더욱 부채질하였기에 국상이 거행될 때인 3월 1일 만세운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어찌 되었든 조선의 마지막 왕이나 다름없던 이태왕 전하는 민씨를 비롯한 7명의 아내를 두었으며, 그녀들에게서 6남 1녀를 낳았습니다. 능은 홍릉으로 경기도 미금시에 있습니다.

흔히들 위대한 인물은 시대가 만든다고 합니다. 그러나 위대한 인물이 시대를 만들기도 합니다.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활용하기 때문에 위대한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이태왕 전하를 돌아보면 늘 아쉬움이 따릅니다. 일본과 서구의 위협 속에서 국력을 증강하여 백성들을 배불리 먹이고 평온한 삶 속에서 개인의 행복을 지켜주는 것이 한 나라의 왕이 취해야 할 자세일 터인데, 오히려 국가자원을 자신의 안위와 자신의 탐욕을 채우는 도구로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통해서 지나온 이 나라의 역사를 이해합니다. 과거 선생님들이 알려줬던 그러한 지식. 한쪽의 역사가들은 식민사관의 여파로 우리는 잘못된 역사관을 가지게 되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아무리 영특한 사람도 지나온 우리의 역사를 바르게 이해하기 힘듭니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자신의 지식으로, 올바른 역사 지식을 가져보려고 할 것입니다.

이 글의 구성은 1부 ‘시대적 상황, 배경’을 통해 당시의 상황, 다시 말해 좌초하는 ‘조선’과 ‘대한제국’의 선포에 관해 설명했습니다. 2부 ‘대원군의 혁파와 민비 그리고 고종'은 대원군의 개혁을 통한 당시의 노론 세력과 갈등 그리고 민비와 고종의 무능함을 비중 있게 다뤘습니다. 3부 ‘누가 매국노인가! 한일합병과 경술국치'는 국왕이라는 존재로 말미암아 그 개인의 욕망과 탐욕이 결국은 나라를 팔아먹게 되는 과정을 깊이 있게 설명했습니다.

4부 ‘왕공족의 탄생. 왕공족의 후예들'은 고종이 나라를 팔아먹은 대가로 그 후예들과 족속들이 어떠한 특혜를 누리면 살았는지를 정리했습니다. 5부 ‘이태왕(李太王) 전하의 여인과 일상'은 4부의 연장선상에서 무위 호식하고 지내며 숱한 여인을 탐닉하며 신문물을 접하는 이태왕 전하의 일상을 공개합니다. 덕수궁찬시실일기(德壽宮贊侍室日記)를 통해 전달합니다. 이에 따라 6부 ‘이태왕(李太王) 전하의 흥청망청'은 이태왕 전하의 참모습을 찾게 해주는 해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미리 밝혀 둘 것은 필자가 이야기하는 고종황제에 대한 사실들 그리고 고종황제의 재위 기간에 벌어졌던 시대적 사건과 상황들은 널리 알려져 있고,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것입니다. 다만 일반적으로 논란이 되는 부분은 되도록 형평을 취하고자 했으나, 필자 나름대로 해석한 부분도 있다는 것을 미리 밝혀드립니다. 이 점 오해 없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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