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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동이네 Jun 23. 2022

이러니 내가 어딜 가겠니?

                                                                                                            

첨엔 하고 싶어 시작한 일이었으나 그것도 해를 거듭할수록 일은 머리와 몸에 익을지언정 마음만은 처음같지가 않다.

나날이 쌓이는 업무 피로와 스트레스, 또 집안일로 인한 피로도도 무시 못하지.


그래서 돌파구를 생각했다. 주 5일 안팎에서 꼬박 일을 했으니 주말에는 온전히 나를 위해 좀 놀아보자고. 애도 혼자서 충분히 있을만큼 컸으니.

매주 금요일 퇴근 후엔 여행을 떠났다. 물론 동행이 있을 때도 있었지만 동행이 없을 때가 더 많았다. 왜냐하면 나처럼 이제 도저히 못 참겠다 나 하루 없어도 어찌어찌 돌아가겠지 설마 엉망이 되기야 하겠어하고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애 낳고 살림하며 직장까지 다니는 여자가 1박이란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은 게 서글프지만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일은 어떠냐 다음 주는 어떠냐하며 자기 시간에 나를 끼워 맞추려는 동행 희망자들을 어쩔 수 없지만 떼어내고 나부터 살아야겠다 싶은 마음에 금요일마다 1박으로 어디론가 떠나기 시작했다. 

1박! 그래, 팔자 좋은 사람이야 1박 갖고 뭘 하겠어 1박이야 아무 때나 갈 수 있지 하겠지만.. 내 심정 아는 사람은 다 알거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리하여 그 깟 1박으론 국외는 어림없을테니, 할 수 있는 국내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지난 주는 제주도, 이번 주는 강원도, 다음 주는 서울... 이런 식으로 국내 곳곳을 돌아 다녔다. 비행기 티켓을 일찌감치 끊어놔야 하는 제주도를 제외하면 미리미리 짜는 여행 계획 조차 없이 그 때 그 때 마음이 끌리고 발 길이 닿는대로 다녔다. 

그리고 토요일 밤에는 어김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야 일요일 하루를 쉬고 다음 주에 또 일을 할 수 있기에.

난 이렇게라도 할 수 있는 나의 현실에 천만다행을 넘어 참 감사함까지 느끼며 이렇게 짧고 짧게 전국을 다니기 시작했고 날이 갈수록 혼자서도 익숙하게 여행을 하기 시작했다. 혼자만의 여행을 다녀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동행이 있어 좋은 면도 있는 반면 혼자서 하는 여행은 진짜 집중력이 짱이다. 그 여행지에서 느낄 수 있는 온갖 감성을 오롯이 혼자서 온 몸과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니 처음에는 동행을 찾지 못해 혼자 시작한 여행이었지만 이제는 그 맛을 알아버려 일부러라도 혼자 가는 여행을 선택하게도 되었다. 이런 생활이 몇 년이 흘렀다.


서론이 길었다.

그런 나에게 나도 모르게 큰 변수가 찾아왔다. 

우리 집에 70일 된 강아지가 한 마리 온 것이다. 원래가 강아지를 너무 좋아했지만 이러저러한 구차하고 말하자면 길어지는 이유들로 나이 40이 훌쩍 넘도록 강아지를 한 번도 키워본 적이 없었다. 

그런 나에게 70일 된.. 한참 손 많이 가고 아기아기한 강아지가 왔다. 

그래.. 우린 분명 전생에 지독한 인연이 있었던 거야. 유리장 안에서 처음 보는, 길 가는 나를 보고 어찌 그리 두 발로 서서 잔망을 떨고 핥으려 난리를 치고 꼬리를 흔들며 반응을 하는가. 나보고 어쩌라고. 

오만가지 생각이 찰나를 스쳐 지나갔지만 좋아, 이것도 인연일테니 내가 너 하나만큼은 끝까지 책임지겠어라고 맘 먹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그 아이를 기어이 데려오고야 말았다.

그런데 이 기특한 녀석은 정말 기특했다. 

집에 오니 잠만 잔다. 밥을 조금 먹고 나면 또 잔다. 한 삼일은 짖지도 않았다. 똥 오줌도 자다가도 지 집에서 나와 패드로 가서 몇 번 킁킁 거리면 거기에 눈다. 

오오~~~ 이런 천재견이 있나. 

깨어 있을 땐 온 식구들에게 장난을 걸고 좋아 죽는다. 온 식구들도 깜동이만 본다. 

그래서 난 그 주에 여행을 못 갔다.

어린 강아지가 눈에 밟히고 너무 귀여워 못 갔다.

그리그리 해가 지나고 지나 올해로 내 나이 50에 그 70일 된 강아지는 9살!

이젠 서로 눈빛만 봐도 다 안다. 이 녀석이 무어라 하는지. 그리고 서로가 너무 애틋하게 기다리고 그 마음이 어떤지 알겠기에 어디를 못 간다.

일이 끝나고 퇴근을 하면 평일에도 이제부터 내 세상, 쇼핑이라도 하고 드라이브라도 해야 집에 들어가던 생활은 추억 속으로 사라진지 이미 오래다. 우리 깜동이는 나만 기다리고 있을텐데 허둥지둥 가방을 챙기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면 아니나 다를까........

처음엔 무지무지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그런데 지금은 애틋하다. 서로 눈 빛만 봐도 어떤지 다 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가 되어주고 위로가 되어준다. 삶에서 낸들 굽이굽이 어려움이 왜 없었겠나, 그래도 무심한 듯 내 옆에서 한결같이 함께 있어주고 눈물 핥아주는 녀석이다. 존재 자체가 나에겐 사랑이고 위로다. 

그렇게 나는 세상이 바뀌었다. 내 위주로 세상을 바라보고 외부에 관심을 기울이는 방법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던 내가 세상을 알아가고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이 나이가 되어서야 깨달아 나가고 있다. 발 밑에 지나가는 개미조차 의미가 있고 그들의 삶도 소중하다는 걸 알겠다. 그러기에 내가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마음을 먹고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느끼기 시작했고 작은 발걸음을 떼고 있다.


깜동아, 우리 깜동아, 내 깜동아, 엄마에게 와줘서 진짜진짜 고마워. 

너로 인해 세상이 평화롭고 온 우주가 아름답구나. 

이러니 내가 어딜 가겠니? 

널 두고 어딜 가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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