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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4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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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비 스케치북 Feb 05. 2019

성당 이야기3-언더독의 여행


미사가 끝나고 내려와 보니 휴대폰을 두고 왔다. 잠깐이었는데 내가 앉았던 자리에 가보니 없다. 그 새 누군가 사무실에 맡겨 놓았나 보다. 사무실 직원에게 휴대폰을 받고 친구와 함께 성당을 나오는데 앞에서 젊은 여자가 뛰어오며 나에게 말한다.

“미술 샘 맞으시죠? 아 맞는 거 같다~샘 맞네요.” 나에게 휴대폰을 준 사무실 여직원이 나를 따라 나오며 호들갑이다. 낯익다. “아~너 은수구나”.  “네네 맞아요~”

은수는 은영이 언니다. 시계는 단숨에 16~7년쯤 전으로 돌아간다. 집에서 미술과외를 하던 때 다. 은영이가 초등학교 2-3학년때쯤인거 같다. 은영이 엄마는 휠체어에 탄 은영이를 데리고 왔다. 팔 다리는 매우 가늘고 눈이 동그랗고 큰 아이다. 은영이는 근육병이다. 은영이 엄마는 은영이가 하고 싶어 하는 사교육은 미술 뿐이라 시키고 싶다고 했다. 걷지는 못하지만 앉아서 그림을 그리고 대화를 하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팔을 높이 들거나 힘을 주거나 하기는 어렵다. 여러 제약이 있지만 은영이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 일주일에 두 번씩 꼬박꼬박 수업을 받으러 왔다. 

은영이가 수업하러 올 때면 나는 은영이 엄마에게 휴가를 주는 기분이 들었다. 은영이 곁에 늘 있어야 하는 엄마가 좀 자유로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은영이는 4학년때 생리를 시작했다. 친구들보다 1-2년이 빠르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은영이 엄마를 떠올렸다. ‘그거는 좀 늦게 시작해도 될 텐데.. 일거리가 하나 더 생겼네’ 라고 너무나 세속적인 생각을 했다.

은영이의 병은 불치병이다. 잘해야 20살 정도까지 살 거라는 말을 지인을 통해 들었다. 나는 많이 놀랐다. 앞으로 10여년이다. 그 아이의 재능이 참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은영이 생각을 하니 자연히 수현이 생각이 난다. 은영이 엄마가 지키고 있을 수 없는 학교생활에서 수현이는 은영이를 데리고 화장실을 다니는 아이다. 미술도 같이 다녔다. 키가 크고 흰 얼굴에 보이쉬 한 수현이는 은영이를 업거나 화장실에 데리고 가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했다.수현이는 틀림없이 멋진 어른으로 자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이사를 하면서 은영이의 미술수업이 종료됐다. 새로 하는 학원에 오기 힘들기 때문이다. 은영이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다시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집으로 와서 수업해줬으면 하는 거였다. 기꺼이 출장레슨을 했다. 중학생 미술은 이젤을 놓고 뎃생을 하거나 수채화를 한다. 하지만 은영이에게 애니메이션을 하자고 했다. 그 애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만화 그리기다. 은영이는 매우 좋아했다. 애니메이션이 지금처럼 인기직업이 아닌 때였고 대학진학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건 은영이에게는 너무 먼 이야기 같았다.은영이는 만화 스타일의 그림을 아주 잘 그렸다. 나는 “그냥 만화 말고 너만의 스타일을 만들면 훌륭한 일러스트가 될 거야” 라고 동기부여를 했다. 은영이는 더 즐거워했다. 은영이는 그 시절에 원하는 만화그림을 맘껏 그렸고 나와 함께 자신의 개성을 찾으려 했다. 수현이도 은영이 집에서 같이 했다. 키가 더 커서 모델 같았다. 수현이는 그림을 잘 그리지 못했다. 수업시간에는 아버지가 이래서 화나고 엄마가 저래서 짜증 난다는 말을 자주 했다. 우리는 들어주고 맞장구도 쳤다. 은영이와 수현이에게 미술 시간이란 서로 다른 의미의 해소창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은영이가 언제쯤 나와의 수업이 끝났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타블렛으로 그린 그림을 봐 달라는 메일을 주고받은 게 끝인 거 같다. 

어느 날 은영이가 경기예고 애니메이션과에 특차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학교는 장애인 선발을 했을 지 몰라도 실력은 당연히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동네에 애니메이션과가 있는 예고가 있다는 게 감사했다. 지나가다 학교 담에 축제를 알리는 플래카드가 붙어있는 걸 봤다.  은영이 그림인 것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문자로 축하해 주었다. 기분이 아주 좋았다. 네 길로 잘 가고 있구나 싶었다. 그리고 또 연락은 끊겼다. 그 아이도 나도 각자의 삶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가끔씩 ‘ 은영이는 아직 이승에 있는 걸까? 은영이 엄마의 노고는 끝났을까?’ 하고 생각 했음을 숨길 수 없다. 

그러다 문득 카톡 프로필 사진에서 대학생이 된 아이를 보게 됐다. 마음이 이상했다. 20세가 넘고 대학생이 되어 학생들 틈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은영이…영화 포스터를 보고 잇는 거 같았다. 마치 여행하는 듯한 은영이의 삶. Road movie를 보는 것처럼 나는 아이의 뒤를 따라다니고 있다. 그리고 또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작년에 나는 다시 그 동네로 이사를 갔다. 그리고 나는 두 달 전부터 성당에 다닌다. 지금도 나는 무교다. 절에 가면 은은한 목탁소리가 좋고 교회에 가면 찬송가에 은혜 받는 거 같고 성당에 가면 경건함에 고개 숙인다. 반대로 아직 어떤 종교도 이론적으로 동화되지 못하기 때문에 종교가 없다. 하지만 요즘 몇 년을 한결같이 성당으로 인도한 친구에 의해 성당에 나간다. 가끔 나의 기도를 들어 달라고 청하고 싶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휴대폰을 분실한 그날 내가 성당으로 가게 된 세번째 이유를 발견했다.


은수는 성당 앞에서 내 전화번호를 받으며 말했다.  “선생님~ 은영이가 참여한 애니메이션 CGV에서 상영해요. 제목은 ‘언더독’ 이에요. 참.. 은영이 애니메이션 회사에 다녀요.” 아… 잠시 먹먹했다. 은영이는 걷지 못한다. 하지만 자기의 삶을 뚜벅뚜벅 걷고 있었다. 은영이의 여행은 아직 한참 남은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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