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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비 스케치북 Mar 05. 2019

딸의 성장통


통증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에게나 증상은 비슷한가 보다. 

딸아이는  잘 먹지도 않고 잠도 잘 못 자고 목소리도 작아진 채 며칠을 그러고 있었다.

나는 결국  무슨 일이 있는 거냐고 물었다.

아이는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더 이상 캐묻지 않아도 알 거 같았다.

시쳇말로 사귀던 남자 친구에게 잘린 거다.

3년이나 서로 의지하고 잘 지내더니.. 

눈물 때문에 긴 설명은 들을 수 없었다.

눈물 많고 정 많고 그런 아이다.

왠지 그 마음이 고스란히 나에게 전달되는 거 같다.

가슴이 따끔거렸다. 

공부도 안 하고.. 힘도 없고.. 또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좀 괜찮아졌니?" 

"엄마 그 말에 또 눈물이 나.." 

"그렇게 힘들면 가서 빌어. 돌아오라고!"

"해봤어"

너무 어이가 없어서 힘이 쭉 빠졌다. '저런 멍청한, 자존심도 없나. 엄마를 안 닮은 게 분명해'속상하고 분통이 터졌다. 

실은 나도 많이 화가 난다. 당장 그놈에게 전화를 걸까 생각도 들고 티비에 나오는 엄마처럼 머리에 보자기 쓰고 교문 앞에서 기다렸다가 혼줄을 내주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시간을 보내는 게 가장 좋은 해결방법일 때가 있다.  

아이는 방바닥에 무언가를 잔뜩 늘어놓더니 쓰레기 봉지에 주섬주섬 주워 담는다.

"왜 멀쩡한 걸 버리니?"

"이제 다 버려야지.."

표정이 제법 단호하다.

그래 잘한다! 

쓰레기 버리러 간 뒤에 보니.. 종이학 하고  화이트데이에 받은  장미꽃사탕은 남아있다.

아이가 남겨놓은 미련에.. 또 마음이 아팠다. 

그 녀석은 아마도 추억을 많이 만들어준 게다..   나쁜 놈.

그걸 지울 틈도 안 주고 딴 여자애한테 간 게다..   정말  나쁜 놈

정을 떼지 않고 가서 희망고문에 시달리게 했을 거다.   진짜  나쁜 놈이다. 

그래도 아플 거면 미리 아파두는 것도 괜찮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몰래 울어야 될지도 모른다. 


옷도 사고 신발도 사겠다고 해서 카드를 줬다.

알뜰하고 배짱도 없는 애가 제법 비싼 것들을 샀다.

돈으로 할 수 있는 거라면 얼마나 수월한 일일까..  

"좋은 대학교 가서 더 멋진 애 만나는 게 갚아주는 거야"

"알아"

"이제 공부해야지?"

끄덕끄덕

"그런 애 잊어 주는 거다?"

"응"

나는 아이의 슬픔 앞에 오기를 무기 삼아 공부시키겠다는 얄팍한 수를 쓰는 어쩔 수 없는 엄마다.   

며칠 전에는 딸의 생일이었다.

남편과 나는 케이크를 앞에 두고 딸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아이는 이삿짐만큼의 선물을 들고 왔다.

우리는 입이 떡 벌어진 채 선물들 구경을 하고.. 사진을 찍고.. 촛불을 껐다. 

어제는 스스로 논술 인강을 듣고 있었다.

벗어나는 회전문에 온 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전에는 책상 앞에  'K대학 00과 '  '전교 몇 등' 등의 목표들로 슬로건이 붙어 있었다.

지금은 '엄마 아빠' 두 단어만으로 자기의 결심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 딸이 지금 아픈 것이 상처가 아니라 굳은살로 남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중에 웬만한 이별쯤에 끄떡도 않을 만큼  강해졌으면 좋겠다. 

그래도

평생 변하지 않을 사람이 나타났을 때..

아이의 가슴이 설레고

그 설렘을 행복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

.

.

.

.   

아이의 성장통 뒤에서  같이 아프다. 







딸이 고 3일 때의 이야기다.

맨끝에 '나중에 같이 웃자고 이 긴글을 적는다' 라고 쓰여 있다. 

아직 웃지는 못한다. 

하지만 본인도 그 일로 굳은 살 하나 생긴 걸 아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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