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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비 스케치북 Jan 01. 2019

다 큰 딸의 육아일기

1년이란

1년이란...     

아침에 눈을 뜨며 오늘 24시간을 무엇을 하며 보낼까 생각하고... 그 하루가 30번 지나면 달력을 한 장 넘기고...  그 달력 열두 장을  차례로 넘기고...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번의 계절이 바뀌는... 시간이다.     

재미있게 본 영화 건축학 개론에서 교수님이  말했다.     

'멀다는 게  무슨 뜻인지 생각해본 적 있나?  물리적 거리. 시간적 거리. 심리적 거리.    

내가 사는 곳에서 가장 먼 곳은 어딜까?  음... 나는 짝사랑하는 사람이 사는 곳이 제일 먼 곳인 거 같은데~"

    

재수생에게 일 년이란 어떤 시간일까?  1년 전 딸내미는 계속되는 '불합격' 소식에 눈이 쾡하고 입술은 부르트고  혼자 밤새 운 게 분명한 얼굴로 아침 식탁에 나오곤 했다.  2월 말까지 추가합격도 하지 못하고 자의보다는 타의로 재수생의 1년을 보냈다.  츄리닝 두 벌로 학원을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면서.  

  

지난 수능일  고사장으로 들어가는 아이를 돌려세워 인증샷을 찍는데 갑자기 아이는 울컥 눈물을 쏟았다.  그 한컷의 사진에 담긴 아이의 표정에는 말 못 했던 1년이 다 담긴 듯했다.  

그 날. 하루 종일 기도했다.  하느님 우리 아이가 또 울지 않게 해 주세요.   수능 성적표가 나왔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  고3 때 연애에 실연에, 그런 거 하느라고 받은 성적과는 역시 달랐다.  언어를 제외한 대부분의 과목에 '1'자를 달았으니 단단히 설욕전을 한 셈이다.  성적표를 받은 다음날 아침. 이불속에서 아이는 조용히 말했다.     

 "엄마... 이런 기분이구나."     "엄마... 마음이 편안해."     

아직 논술에 수시에 정시에 일정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아이는 작년과 다른 결과에 만족해했다.

수시 우선선발 자격요건을 갖춘 성적에 살짝 자신감이 붙은 아이는  상위 3개 대학만 지원했다.  결과는 모두 불합격이었다.  정시가 남았다고 의연해하던 아이가 어느 날 노트를 보여줬다. 하루 스케줄을 적은 노트에는  'K대학교'에 대한 소망을 매일매일 적어 놓았다.  마음이 짠 했다.     

'네가 가고 싶은 대학에게 매일매일 인사하고 매일매일 생각해'라고 재수를 시작할 때 아이에게 말했었다.  

티도 안 냈으면서 그렇게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쉽지만 거긴 내가 갈 곳이 아닌가 봐."     

정시 원서를 써야 하는데  작년의 악몽이 살아나는지 몹시 불안해했다.  이 삼일이 멀다 하고 아침이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또 그 꿈을 꿨다고 한다.   3 수하는 꿈. 하향지원을 했는데도 발표날까지 겁을 먹고 있더니  

결국.  그렇게 바라던 '합격'의 소식을 들었다.  비록 SKY는 아니지만 우리는 매우 만족했다.  딸은  집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른다.     

"엄마~~ 끝났어"     

"엄마~~ 신난다!"     

"엄마... 이런 기분이구나!"  아이는 생각이 많은 듯 보였다.      

적어도 몇 년은 쫓아다니며 인생이란 어쩌고 세상일은 저쩌고 하며 가르치고 잔소리를 해야 하는 내용들을  아이는 재수생 일 년 동안 , 그리고 그 결과물을 보면서 혼자 다 배운 모양이다.     

'기다림'    

건축학 교수님의 짝사랑 그녀가 사는 집만큼 그 거리  어디쯤과 비슷한 곳에 있었을 아이의  1년.   

물리적 시간적 심리적 거리 모두 저만큼에  있었을 기다림의 시간. 그리고 그곳에 가기 위해서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보내야 한다는 그 소박한 진실에 대해 아이는 깨우쳐가고 있는 거 같다. 이제 딸내미는  1년을 달려갈 기차를 타게 되었다. 아들 넘도 그동안과 다른 1년의 기차를 탈 것이다.     

두 아이는 자기가 원하는 기차에 몸을 싣게 되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목적지로 잘 달려가겠지.

내 맘이 참 좋다.     

그리고 이제 내가 남아 있다.  나는 어느 기차를 타고 일 년을 잘 보낼 수 있을까...








브런치 모집에 한 번 탈락하고, 두 번째에 글을 써도 된다는 통지를 받고도 한참을 빈방으로 두었다. 멍석 깔아주니까 뭘 해야 좋을지 모르는 거다. 모든 사람들이 보석 같은 글 들을 올리는 것에 주눅이 들어서 그런 거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새해에는 내 방에도 무언가를 채우고 싶다. 

때론 친구 같고 때론 웬수 같은 딸과의 묵혔던 이야기를 꺼내보고 싶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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