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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ebangchon Mar 05. 2019

좋아하는 것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나요?

어디에서 살 것인가

어쩌다 보니 나는 서양인과 태국인 사이 이방인이 되어 있었다. 태국 방콕에 소재한 국제학교에서 근무하는 미국인 남편과 그들 동료인 서양인들, 그리고 내가 사는 방콕의 태국인들 사이에서. 방콕으로 이사를 오기 전까지의 나는 한국 외 다른 곳에선 살아본 적도, 1주일 이상 머물러 본 적도 없었다. 다들 한 번씩은 가 보는 어학연수나 유럽 배낭여행도 가 보지 못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풍경이 너무나도 새롭다. 그 자극은 새롭다는 이유만으로도 나를 활기차게 하다가, 어느새 나를 많은 생각에 잠기게도 한다. 바로 이럴 때다. 방콕 끄트머리에 사는 우리가 시내에 갔다가, 합승해 돌아오던 택시에서 친구 부부와 잡담을 나누던 그런 아무 때.




웨이드(Wade) 부부는 지난 7년간 스위스에서 살다가 작년 7월 태국 방콕으로 이사 왔다. 세상에 스위스라니. 상상만 해도 너무 설레는 마음을 진정하고 최대한 담담하게 물었다. “스위스는 살기 어때?” 웨이드가 답했다. “여행 다니기 너무 좋은 나라야.” 스위스 나라 자체도 여행하기 좋을 뿐만 아니라 유럽 중앙부에 위치하기에 주변 유럽 국가로 얼마든지 쉽게 여행을 갈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때 나는 알았다. 주거 지역을 정하거나 평가할 때, ‘여행하기 좋은 환경과 위치’가 제1순위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런 의미에서 웨이드는 이번엔 아시아 어디로든 쉽게 갈 수 있으며 나라 자체에도 여행 스팟이 많은 이곳, 태국 방콕을 선택하여 이주해 온 것이었다. 미국인 남편, 캐나다인 아내, 그리고 태어난 지 6개월도 안 된 막내를 포함한 아이 셋과 함께.


나는 35년간 한국에서 살았다. 고등학교 졸업까지는 부산에서, 대학 진학 이후는 서울에서. 나름으로는 큰 이주를 한 번 한 셈이기는 한데 진학과 취업의 방향에 따라 움직여진 것이었다. 그 이후로도 이직, 결혼 등 삶의 큰 변화가 있는 순간에도 주거지를 여러 번 옮겼지만 그때마다 통장 잔고, 직장 위치가 내 주거지를 결정했지 내 취향이나 좋아하는 것이 반영되지는 않았다.


여행을 좋아한다고 해서 여행하기 좋은 강원도로 이사한다거나, 위치상의 중심인 대전으로 이사하는 일은 없었다. 당연히 유럽 여행하기 좋은 스위스나 아시아 여행하기 좋은 태국으로 이사하지도 않았으며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 새로운 교육을 받는다든지 잡노마드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지도 않았다.  




사실은 거주지에 대한 선택을 벗어나,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 삶 중심에 두고 실행하거나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 다른 조건을 바꿔 보는 시도를 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늘 여행을 바라지만 실은 여행이 선택의 순간에 우위를 차지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우위를 차지하기는커녕, 이런저런 이유로 가장 밀리는 것이 여행이고, 마음 한편에 ‘여행은 늘 갈 수 있는 것’이라는 변명으로 위안 삼았다. 그 결과로 늘 여행은 버킷리스트나 희망, 계획으로 존재했다. 일년에 15일 연차를 쪼개 쓰면서 여행 갈 준비를 하다가도 중요한 미팅이나 프로젝트가 생기면 당연히 흐지부지 없던 일로 해야 했고, ‘여행 적금’을 들다가도 여행 적금은 언제든지 ‘전세 적금’, ‘치과 적금’, ‘경조사비 적금’ 등으로 빠르게 변모했다. 원래 그런 다목적성 적금이었다는 듯이.  


작년 7월 말, 방콕으로 이사를 했다. 사실 방콕을 선택한 우선적인 이유는 여행하기 좋은 곳이어서가 아니었다. 남편의 괜찮은 이직 조건과 35년간 한국에서만 살아본 내가 적응하기 괜찮을 것 같은 나라라는 이유였다. 물론 한국에서 살 때보다는 시간적 경제적 여유를 가지고 좀 더 많은 여행을 하기를 소망하며. 이제는 나에게도 여행이 단지 소망이 아니라 실행하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 준비를 하면서 우선순위에 두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여행을 늘 연모했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을 위해 움직이거나 다른 조건을 변화시키는 노력을 하기엔 게으르거나 겁이 많았다. 이제는 안다. 좋아하는 것을 위해 움직이는 것은 막상 해보면 해볼 만한 것이라는 것. 그리고 좋아하는 것을 우선순위에 두면 그것을 하기 위해 다른 조건들을 변화시키고 끌어 모을 만큼의 자신감과 책임감, 능력은 모두가 가지고 있다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우선순위에 두는 것,
마음만으론 거저 되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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