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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ebangchon Mar 14. 2019

영어 알아듣는 '척'하기

네이티브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너, 이제 영어 다 들려? 다 알아들어?"

미국인 남편을 둔 내가 자주 듣는 질문 중 하나다. 주로 내가 어학연수나 유학, 외국계 기업 근무 등을 하지 않은 것을 아는 친구나 가족, 혹은 국제결혼에 대해 궁금증이 많은 사람들이 묻곤 한다. 


일단 남편의 영어는 다 들리지는 않지만 다 알아듣는다. 다시 말하면 리스닝은 완벽하지 않지만, 커뮤니케이션엔 문제없다는 것. 왜냐면 우리의 대화 배경에 깔린 많은 맥락을 함께 하고 있고, 처음 만나서부터 지금까지의 시간 속에서 서로를 알게 된 만큼 대화의 대상이나 주제에 대해 어떤 방향으로 말할지 예측이 되고, 이해가 잘 안 될 때는 다시 묻고, 다르게 묻고, 돌려 묻고, 서로의 말을 본인의 말로 바꿔 표현하면서 확인하는 시간을 들일만큼 서로에게 충분한 애정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어 네이티브 친구나 미국 시댁 가족들의 영어가 다 들리느냐, 다 알아듣느냐'라고 묻는다면 이땐 얘기가 달라진다. 한 마디로, 다 안 들리고. 다 알아듣지도 못한다. 특히 자주 만나지 않는 관계에서, 소수보다 다수가 모였을 때 더욱 안 들린다. 첫 문장이나 몇 마디 놓치고 나면 귀를 쫑긋 세워도 아예 전체 대화를 놓치기 일쑤다. 학교 밖에서 조기 축구 회원들이 소리를 지르며 공을 차고, 복도엔 다른 반 학생들이 뛰어다니며, 하늘엔 헬리콥터가 시끄럽게 날아다니고, 뒤에선 공항 비행기가 끊임없이 착륙과 이륙을 반복하는 상황에서 하울링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스피커를 통한 영어 듣기 평가를 치르는 거다. 




나는 미국인 남편과 태국 방콕에 살지만, 주위 친구와 이웃이 모두 남편의 동료들로 구성되어 있어 99.9%의 대화는 영어로 이루어진다. 지금껏 잘 안되던 영어가 갑자기 영어 네이티브들에게 둘러싸인다고 잘될 리 없다. 하지만 그들의 대화가 안 들림에도, 나는 여기서 친구를 잔뜩 사귀었다. 남편 생일날 저녁을 위해 식당에 열명 이상의 친구를 부르고, 주말 아침엔 우리 집에 와서 함께 아침 먹자고 친구들을 불러대기도 한다. 영어도 안 들리면서 용감무쌍하다. 


내가 찾은 네이티브들과의 대화에서 살아남는 길은 '일단 알아듣는 척하기'이다. 친구들을 기만하는 게 아니냐고? 잘못 알아들어 오해하고 잘못 행동하면 어떡하냐고? 일단 친구들을 기만하는 게 아니다. 네이티브 친구들은 애초에 네이티브 아닌 내가 그들의 대화를 다 알아들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잘못 알아들어 잘못된 방향으로 대화를 했더라도 뒤늦게 알아챘을 때 잘못 이해했다는 것을 말하고 의견을 고쳐 말하면 된다. 아니면, 원하진 않았지만 새로운 경험을 용기 내 해 볼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가령, 새로운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신나게 하다가 알아듣는 척하는 내게 '거기에 가겠냐'는 의사를 물어 왔을 때, 툭 치면 튀어나오는 '오케이'를 뱉어버린 상황. 난데없이 새로운 곳에 가게 된 경우 못 가게 되었다고 말을 고쳐하거나, 흥미는 없었지만 이 기회에 그냥 한번 가 보는 것이다.  


내가 과거에 경험했고 지금도 경험하고 있는 외국인 친구들은 우리보다 훨씬 다양성에 대해 이해하고, 사람은 제각각 다 다르며 변화무쌍하다는 걸 우리가 상상하는 거 이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니 내가 대화를 잘못 이해해 결과적으로 말 바꾸기를 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속으로 '원래는 이렇게 변덕스러운 사람이 아닌데 그렇게 받아들이면 어떡하지?'라는 괜한 걱정은 나만 안 하면 된다. 저들은 말을 다 알아들어도 기본적으로 우리보다 더 변덕스럽다. 내가 잘 못 알아들어서 그것을 불편해하거나 못마땅해하는 친구가 있다면? 그런 친구는 옆에 두지 않는다. 누군가와 친구가 되는 데에 언어보다 중요한 게 백가지는 더 있다. 


이 모든 게 싫다면 친구들과 안 어울리면 될 터이지만 해외에서 이런 모든 순간을 피하고 홀로 고립을 자처하는 것이 안 들리는 영어보다 내겐 더 초라한 일일 것이다. 해외 생활을 통해 다양한 삶의 방식을 접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에 그깟 영어 때문에 숨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영어 마스터가 평생의 과제이자 한이 되는 상황에서 '영어'는 못한다 인정하고 가더라도 '친구 사귀기'까지 포기해야 하는가. 




오해는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영어 알아듣는 '척하기'라고 해서 주구장창 대화의 시간에 가짜 연기를 하는 건 아니다. 어떤 언어로 무슨 대화를 하던 제일 첫 말을 알아듣는 게 중요하다. 대화의 주제가 던져지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무엇에 대해 앞으로 이야기할지 알려주는 빨간펜으로 줄 그어야 할 핵심. 하지만 '영알못(영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누군가가 던진 제일 첫마디를 대부분 다 놓친다. 하지만 나는 내 부족한 영어 실력을 성격과 욕망으로 커버한다. 부족한 영어 실력 자리에 '특유의 친화성'과 '알고 싶어 하는 욕구'를 심어 놓은 것. 


대화를 출발시킨 친구의 첫마디를 못 알아듣고, 다시 그 문장을 스스로 떠올리고 있다 보면 말 많은 미국인들은 이미 각자 한마디 이상씩 정리되지 않고 쏟아낸다. 부연이나 답변들 속에서 애초의 문장이 무엇이었는지를 퍼즐 맞추듯이 하면 첫마디를 알아챌 때도 있다. 다만, 내가 스스로 알아챌 때가 되면 다른 대화를 시작한 기차가 저만치 떠나고 마는 것. 나는 덕분에 새롭게 시작된 대화의 첫마디도 놓치고 만다. 이제는 알아채고자 꼬리 붙들 단서조차 없다. 듣기 평가 중간에 자체 종료하고 교실을 뛰쳐나가거나 책상에 엎드릴 것인가? 


그렇게 남은 듣기 평가를 도망치고 나면 다음에 올 듣기 평가는? 그래서 듣기 평가가 시작되면 들리든 안 들리든 교실에 남아 있어야 하고, 1번이 안 들리면 패스하고 2번을 들으려 해야 한다. 대화의 속도에 뒤쳐져 혼자 첫 문장에 집착하지 말고, 대화의 속도에 맞춰 따라가지는 못해도 함께 실려서는 가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다 보면 일단 무슨 주제인지 짐작이라도 할 수 있다. 정 못 알아챌 땐 "도대체 지금 무슨 대화가 진행되고 있는 거지?"라고 옆에 앉은 친구에게 살짝 물어본다. 



영어 알아듣는 척하기로 살아남으려면 중요한 수단이 있는데 바로 '눈치'다. 누가 '영알못'인 나를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더 호감으로, 친근하게 느끼고 있는지 알아채는 눈치, 누가 지나간 대화를 다시 물어도 짜증 내지 않고 반복해서 말해줄 성격인지 알아채는 눈치, 대화의 중심에 서기보다 옆에 있는 사람을 이해시키고 지방 방송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알아보는 눈치, 누가 영어권 국가 외의 국가에서 산 경험이 있으며 말을 보다 분명하고 조리 있게 하는지 알아채는 눈치. 여기서 욕심을 조금 더 부리자면, 내가 낄 수 없는 대화가 이어질 때, 내가 낄 수 있는 주제로 대화의 머리를 돌려줄 내 편, 혹은 전체를 아우르고자 하는 욕구가 강한 사람이 누구인가를 알아채는 눈치!


다행히도 나는 눈치가 빠른 편이고, 불행하게도 남편은 눈치가 없는 편이 아니라 그냥 없다. 하지만 주위에 나를 호감으로 봐주면서 나와 비슷하게 눈치 빠른 친구, 그리고 저러한 성격을 가진 친구가 한둘 있기 마련이다. 네이티브 다수가 모였을 때는 눈치 없는 남편보다 눈치 있는 네이티브 친구 하나가 더 낫다. 그 친구와 가까이 앉으며 대화를 뒤늦게 따라가거나 보충 설명을 요청할 수 있다. 때론 그 대화에서 가지 쳐 우리끼리 다른 이야기로 비껴가기도 하는 것. 그러다 보면 그 친구와도 더 긴밀해지고 그 친구가 나와의 대화에서 흥미로운 것을 발견해 전체 대화로 나를 밀어 넣어주기도 한다. 




이렇게 알아듣는 척을 하지 않고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 있으면 함께 하는 친구들도 불편해하거나 분위기가 가라앉을 수 있다. 또한 스스로도 '내가 여기 왜 있나' 하며 갑자기 존재에 대한 탐구를 하다가 홀로 자존감 바닥으로 치달을 수 있고, 어쩔 수 없이 방콕에서 진짜 '방콕'하는 신세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방콕한 상태로 또 하는 거다. '나는 누구며 여긴 어딘가.' 


귀가 알아서 트여주면 고맙겠지만, 그런 기적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기적 따위 포기하고 '일단 알아듣는 척' 스스로 생존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나도 즐겁고 친구들도 다 같이 즐거울 수 있는 방법이다. 안 되는 언어를 성격으로 커버하며 눈치 기술로 거드는 것이 힘든 날엔, 솔직함을 장착한다. "나 오늘 너무 피곤해. 포기. 귀 닫았어." 


다시 묻는다. "나는 누구며, 여긴 어디지?" 나는 한국말 잘하는 한국인이고 여기는 미국인 가득한 방콕이다. 오케이. 한국인이 영어 안 들리는 게 당연하고 미국인 가득한 방콕에서 태국 말 못 알아들어도 때론 그냥 오케이, 싸와디 카 하고 너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구나. 나도 문제없어! 


네이티브들과의 대화에서 살아남는 길
 '일단 알아듣는 척'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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