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ebangchon Mar 18. 2019

내 영어는 수많은 영어 중 하나일 뿐

네이티브 사이에서 살아남기 2

영어 네이티브들의 영어를 다 못 알아들을 때, 알아듣는 '척'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면, (이전 글 '영어 알아듣는 '척'하기 참고), 그다음의 문제는 영어 말하기다. 요즘 세대야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80년대 초반생의 경우 한창 학습능력이 좋은 유년 시절에 영어 집중 공부나 체험을 하지 않았고, 중-고등학교로 이어지는 정규과정에서 영어는 리딩과 문법에 집중되어 있었다. 영어 듣기 시험은 정기적으로 치렀지만 영어 말하기 시험은 없었다. 모든 능력을 시험으로 측정하는 데 탁월한 한국에서 시험을 치르지 않았다는 건 그 능력을 기르는데 집중하지 않았다는 것. 


대학에 와서야 교양수업에 영어회화 수업이 최소 이수학점으로 주어져 처음으로 원어민을 공식적으로 접하게 되었다. 때론 전공수업에 영어 강의가 있기는 했지만, 강의 자료가 영문(역시, 리딩)이었을 뿐이었다. 졸업시즌이 되어 취업준비를 할 때도, 그때만 해도 영어 스피킹이 토익에 반영되지 않았을 때다. LC(리스닝)과 RC(리딩)에 국한되어 있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영어도 조금 읽을 줄 알고 문법도 상대적으로 잘 알지만, 그 문법이 곧바로 내 생각과 결부해 뇌에서 입으로 곧장 연결되어 튀어나오지는 않는, 그런 특이한 영어 습득을 하게 되었다. 하라는 거 따박따박 모범적으로 해 왔던 80년대생인 나의 경우에 그랬다. 




"오해해서 결혼했다." 

이런 내가 지금의 남편인 미국인을 만나고 연인관계가 되고 결국엔 부부가 되는 그 과정과 결과에서 모두가 의아해했다. '말이 통하는 거'냐고. 그럴 때마다 나는 우스갯소리로 말한다. "오해해서 결혼했다." 언어가 딸리니까 오해했고, 실수로 결혼했다고. 


실은 오해하지 않았다. 언어는 부족해도 커뮤니케이션이 되는 우리니깐. 때론 같은 한국말을 해도 도대체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도 못하겠고, 내가 하는 말을 상대가 정확하게 알아들었는지 알 수 없는 그런 상황을 심심치 않게 접한다. 같은 언어를 하는 데도 소통이 안되는데, 다른 언어로 하면 더 소통이 안 될 것 같지만 나 같은 경우엔 더 잘 됐다. 일단 언어가 짧아서 보다 정확하고 명확한 표현과 단어를 골라 써야 했고, 서로의 대화에서 정확하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나 명확히 그 의미를 모르겠는 부분은 서로 단어 사전을 펴놓고, 때론 번역기를 켜 놓고 더 자세히 파헤쳐 대화하고 서로의 의중을 파악해야 했기 때문이다. 다른 언어여서 같은 언어끼리의 대화보다 훨씬 귀 기울이고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배 이상으로 한 것이, 말에 대한 의중 파악을 잘 못해서나 말꼬리 잡기를 통한 싸움으로 번지지 않게 했다. 


영어 듣기와 마찬가지로 영어 말하기도 마찬가지다. 대화의 배경이 되는 맥락을 공유하고 서로 이해하고 있으며, 서로의 세계에 섞이고 흡수되려는 애정이 있는 부부 사이의 일대일 대화에서 영어 말하기는 크게 곤란하지 않다. 싸우다가도 "방금 네가 쓴 단어 좀 거슬리는데, 사전 좀 열어보자 잠깐" 하다가 실생활에서 그 단어의 용례까지 남편에게 설명을 듣다 보면 아까 우리가 왜 싸우고 있었는지, 때론 싸우고 있던 상황도 잊거나 그냥 지나치기 일수다. 




문제는 미국인 남편 외의 다른 네이티브를 만날 때다. 내가 남편을 아무리 사랑하지만 내 대화 상대가 남편만으로 국한될 수는 없다. 방콕에 모인 자유 영혼 소유자들인 영어 네이티브들과 대화할 일이 자주 있다. 특히 같은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이 가까운 동네에 다 모여 살다 보니 '떼로 모이는' 경우가 다반사다. 듣거나 들리는 척만 하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는 없는 법. 들은 게 있다면 내가 뱉는 것도 있어야 대화가, 관계가 성립이 된다. 


첫 번째 문제는 내 생각을 한국어로는 너무도 유창하게, 거기다가 유머까지 적절히 버무려서 센스 있게 말할 수는 있을 것 같은데 영어로는 핵심 답만도 정확하게 잘 못 뱉을 것 같은 영어 실력의 부족함. 두 번째 문제는 어떻게든 생각을 정리해 영어로 뱉었다 치더라도, 네이티브가 못 알아들을 수 있는 나만의 억양과 뻣뻣한 발음이다. 


일단 영어로 빠르게, 정확하게 뱉어지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시간이 걸리고 때마다 대담함과 배짱이 필요하다. "틀리거나 말거나 나도 내 생각을 말해야겠어!"라고 일단 단어라도 뱉어 본다. 의문문을 말할 때 동사가 먼저 나와야 하는 게 당연한데 말을 뱉을 땐 한 번이라도 더 영어 문법 구조를 떠올려야 하는 의문문 대신 평서문의 마지막에 물음표를 붙여 끝을 올리기로 한다. 머리에서 입으로 연결되는 속도를 어떻게든 줄여보고자 하는 것이다. 내가 영어 말하기를 하는 목적은 말하기 점수를 따려는 것이 아니라 상대와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데에 있다는 것을 상기하면 이런 노력을 할 때도 배짱이 조금 더 두둑해진다. 


Broken English를 하는 내가 하나 믿을 수 있는 게 있다면, 바로 이거다. '내가 개떡같이 말해도 모국어를 쓰는 네이티브들은 찰떡같이 알아들을 수 있을 거야'라는 믿음. 조금 부족하게 말했다고 "what? what?"만 거듭하는 네이티브가 있다면 '아니, 자기 모국어인데 내가 조금 엉망으로 말했기로서니 이해를 못하나?' 하면서 내 부족한 말하기가 아니라 네이티브의 듣기와 이해력을 탓하다 보면 바닥 치는 자존감이 조금은 살아난다. 내 모국어도 아닌 영어를 이만큼이라도 하는 게 어딘데, 약간 뻔뻔해져도 된다.(라고 스스로 북돋는다.)




나는 부산에서 나고 경상남도와 경상북도 출신인 가족들 사이에서 약 20년을 살다가, 서울로 대학 진학 후 약 15년을 서울에서 살았다. 누구는 내 말을 듣고, "여자들은 잘 고친다는데 아직도 사투리를 쓰냐"라고 하고, 누군가는 "깍쟁이 다됐네 서울깍쟁이. 이제 니는 부산 사투리는 하나도 안 쓰는 갑네, 맞제?"라고 한다. 이런 사람들의 반응을 종합해 봤을 때 나는 지금 '서울말도, 부산 사투리도 아닌 어떤 말'을 쓰고 있음이 틀림없다. 한국말을 할 때도 '나만의 억양'이 있다는 거다. 


그럼 내가 하는 영어는 어떤 영어일까. 한국에서만 나고 자라 한국말에도 나만의 특이한 억양을 가지고 있는 나의 영어는? 나도 궁금하다. 하지만 이게 큰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 미국인 남편과 시댁 가족들, 그리고 주위의 네이티브 친구들의 말이다. 영어에는 너무너무 많은 영어가 있다는 거다. 그리고 내가 쓰는 영어는 그 수많은 영어들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것. 이 말을 들은 후 영어를 못해서 쭈구리가 된 내 자존심이 한 단계 계단형 성장을 했다. 


영어를 모국어로 가진 네이티브들도 각자가 나고 자란 지역이나 나라, 개인의 말버릇에 따른 다양한 영어를 쓰고 있다. 미국, 캐나다, 영국, 아일랜드, 호주, 뉴질랜드 사람이 쓰는 영어가 다르고, 같은 미국인이어도 동부, 서부, 남부, 중부에 따라 쓰는 억양(악센트)이나 표현이 다르다. 영국에서 유학한 중국인의 영어, 미국에서 유학한 태국인의 영어, 그리고 한국에서 닥치는 대로 익힌 나의 영어도 당연히 다르다.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데 다양한 영어를 알아듣는 연습을 골고루 하는 건 누구나 필요하고 네이티브인 본인들에게마저 좋은 기회라고 클라우디아(Claudia)가 말해 주었다. '다름'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다 같이 어우러져 살아가는데 네 영어가 내 영어랑 다르다는 걸 인정하지 않거나 알아들을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그런 자세가 잘못된 것이지 내가 나만의 독특한 영어를 구사하는 게 문제는 아니라는 거다


자존감이 바닥을 칠 땐 이런 말도 다 '나를 달래려고 하는 말이군.'이라고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미국 시댁을 방문했을 때, 대가족 사이에서 벌어졌던 대화의 상황을 돌이켜보면 이들의 말이 나를 달래려고 하는 말은 아닌 것 같다. 


미국 시할머니 댁에서 식사를 하던 날, 작은 아버지(삼촌)가 오셨다. 할리우드 배우처럼 잘 생긴 삼촌은 나를 한눈에 반하게 했는데, 식사 내내 대화를 이끌고 있는 삼촌의 말을 나는 삼촌의 입에서 나오는 영어로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대신 삼촌은 손을 엄청 활발히 움직이면서 말을 보충하고 있어, 어느 정도 모션을 통해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는지 알 수 있었다. 


식사가 끝나고 시아버지와 남편, 내가 차에 올랐을 때 남편에게 물었다. 

"삼촌이 아까 무슨 말씀을 하신 거야?" 

남편이 말했다. 

"나도 몰라." 

삼촌이 그렇게까지 열심히 말하시는데 듣지도 않고 있었다는 건가, 집중력이 제로인가 절로 남편에게 잔소리가 나간다. 

그러자 남편이 시아버지에게 질문을 돌린다. 

"아빠, 아까 삼촌이 한 말 알아들었어?" 

시아버지가 다시 남편에게 답을 돌린다. 

"네가 알아들었으면 내게 말 좀 해 줘." 


삼촌은 엄청 강한 억양을 가지고 있고, 말 속도도 빠르고, 성격도 격정적이어서 이야기를 하는 것만 봐도 웃음이 튀어나오는데, 실은 그 삼촌의 말을 알아듣는 건 그 삼촌의 부모님인 할아버지, 할머니뿐이었던 것이었다. 가끔 그날의 상황을 떠올리면서 나는 자신감을 얻곤 한다. 




영어 말하기는 내게 끊임없는 스스로에 대한 위로이고, 부려야 하는 배짱이고, 던지고 보는 대담함이다. 시간이 흘러 흘러 언젠가 입이 절로 트이는 날이 오길 바라고 또 바라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걸 먼저 하기로 한다. 스스로 위로하면서 못 알아듣는 네이티브 탓을 하면서, 일단은 뭐라도 뱉고 보는. 내 영어는 너희가 쓰는 다양한 영어 중 하나일 뿐임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용기가 좀 더 난다. 


개떡같이 말해도
네이티브 너희가
찰떡같이 알아듣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영어 알아듣는 '척'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