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성수동' 혹은 '서울의 문래동' 하면 '카페거리'를 떠올릴 것이다. 그보다 더 시간을 거슬러 간다면 성수동은 인쇄소나 신발공장이 있던 곳이고, 문래동은 방직공장이나 철공소가 있던 곳이었다. 단순히 카페거리라고 한다면 태국 방콕에도 '통러'나 '아리' 같은 곳이 있다. 하지만 성수동 문래동처럼 원래는 이렇게 되리라 짐작하기 힘든 골목이 변신해 각광받는 곳을 찾는다면 방콕엔 '딸랏너이(Talat Noi)'가 있다.
딸랏너이는 방콕의 차이나타운 아래, 아이콘 시암의 맞은편, 차오프라야 강변가에 위치해서 방콕 관광 시 들르기에 위치도 딱 좋다. 방콕의 최근 가장 힙한 곳 중의 하나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이곳을 꼽을 수 있다. 딸랏너이는 화교 공동체의 본거지였다고 하며, 중국인뿐 아니라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민족들이 살기 시작하면서 방콕 최초의 항구이자 이민자들이 상륙한 지역이었다고 한다.(출처: 위키피디아) 이런 내용을 모르고 방문하더라도 곳곳의 오래된 흔적들에서 충분히 짐작이 된다.
딸랏너이의 위치 / 구글맵
골목골목 사이를 걸어 다니며 벽화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오래된 고물상의 찌든 기름 냄새를 맡으며 식당과 카페를 찾아간다. 삐그덕 대는 오랜 나무 계단을 밟으며, 찌든 기름 냄새를 지나치며, '힙함'이 뭔지 생각해 보게 된다. 오래된 흔적을 마치 없던 것처럼 지우고 새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지금의 이곳이 어떤 커뮤니티였는지 짐작할 수 있게 그들의 생활사 한 챕터를 고이 간직한 곳에서 요즘의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즐기는 정취랄까.
딸랏너이 골목을 누비는 중 in Bangkok, Thailand
딸랏너이에서 우리가 방문했던 두 곳의 공간을 소개한다. '홍씨앙꽁(HongSiengKong)'과 '마더로스터(Mother Roaster)'다.
홍.씨.앙.꽁. 발음이 귀여워서 몇 번이고 내뱉으며 찾아가게 된다.
눈부신 밝음 속에서 홍씨앙꽁으로 처음 들어서면 순간적으로 눈앞이 까매진다. 그러다 익숙해져서 시야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곧바로 점원이 메뉴판을 보여주며 주문을 먼저 해야 한다고 안내한다. 들어서자마자 메뉴판을 들이대는 것은 어쩜 당연하다. 이곳은 식당이자 카페이기 때문이다. 인스타용 사진만 찍고 내부 공간을 활보하다가 떠나는 사람들에 지쳤다고 부연하지 않아도 너무 당연한 웰컴 인사일 수 있다.
핫한 곳이라 가격대가 높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메뉴판을 보고 이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주문을 하고 자리를 잡으러 들어서는데 공간이 꽤 크다. 진동벨이 손에 있으니 구경하다 어디든 자리 잡고 느긋하게 기다린다. (태국에서는 느긋한 마음이 중요하다. 더운 나라에서 서두르면 서두르는 사람만 손해 보는 법이다.)
내부에 고가구와 오브제가 눈길을 끈다. 이런 진열공간을 지나 밖으로 나가기까지 모든 것이 볼거리다.
꼬임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서도 고가구와 소품들을 구경할 수 있다.
내부에서 강가 쪽으로 난 문을 열고 나가면, '짜오프라야 강'이 바로 눈앞에 펼쳐진다. 고가구로 조용하고 묵직한 느낌이던 내부와 달리 푸릇푸릇하고 밝다못해 눈부시게 뜨거운 여름날이 펼쳐지고 있는 외부.
차가운 인공바람을 싫어하더라도 딸랏너이의 골목을 탐험하다시피 돌아다니다 보면, 실내의 에어컨 바람이 그리워진다. 진동벨이 울리면 식사를 받아와 내부에서 느긋하게 식사를 한다.
식사를 하면서, 여기가 서울의 성수니 문래동이니, 고물상을 지날 땐 옛날 청계천 같더라 하는 이야기를 하고 식사 후 커피는 어디 가서 마실까 고민하는 여행자의 점심 시간. 식사 후 카페는 태국 로컬 커피빈으로 내린 커피를 맛볼 수 있다는 '마더로스터'로 정했다. 아까 지나온 화려한 벽화 건물이 바로 카페였다.
마더로스터. 방콕 딸랏너이에서 즐기는 태국 로컬 커피빈 드립 커피
밖과 다른 세상을 감추고 있는 듯한 이곳이 마더로스터의 출입구가 맞다. 진짜 맞나 싶을 때, 그냥 들어가면 된다. 삐걱삐걱, 끼억- 소리가 나고, '킁킁'거리게 되는 기름 냄새를 맡으며 계단을 오른다.
1층의 이미지와 달리 포근한 느낌으로 2층에서 만난 카페 '마더로스터'
외국의 스페셜티 원두도 있지만 태국 로컬 원두도 있다. 태국 북부 치앙라이 산지에는 커피 농장들이 있는데, 직접 가지 않고서도 방콕에서 태국산 커피빈으로 드립커피나 에스프레소를 마실 수 있으니 당연히 나의 선택은 로컬 커피다!
이곳의 에스프레소 머신은 사람의 손으로 작동된다. 양손으로 꽈악 내려 눌러 커피를 짜낸다. 챔기름 한 방울 짜내는 기름집이 여기서 생각나는 건 왜일까. 낯선 나라 낯선 골목에서 내가 나고 자라고 생활하는 지역의 문화가 떠오르면 낯선 곳도 금방 익숙해지고 정답게 느껴진다. 딸랏너이 골목, 그리고 딸랏너이 골목에서 힙한 상점으로 부상하고 있는 이곳들이 전 세계 여행자에게 사랑받는 이유도 이것일까.
방콕에서 쇼핑몰 투어, 5성급 리조트 호텔 바캉스 등이 아닌 다른 방콕의 모습을 경험하고 싶다면 딸랏너이 골목에 가서 땀 흘리며 기름내 맡으며 힙한 공간들을 방문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내가 사는 제주에서도 원도심 재생에 대해 많은 논의가 되고 많은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발품을 팔면서 골목 구석구석 누비는 재미가 국내외에서 많은 여행자들의 사랑을 받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