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 영장이 날아온 날, 밤을 꼬박 새우면서 계획을 세웠다. 공략대상 1호는 학교도 가 본적 없고 군대도 가 본적 없는 노인네 아버지, 2호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아우였다.
아우는 고등학교 역도부 출신이었고 나는 평생 약골 샌님으로 살아왔으나 기이하게도 얼굴 생김새는 붕어빵처럼 흡사했다.
나는 대학을 마쳐야하니 이번에는 아우가 내 대신 군에 가고, 아우가 복무 마치고 나오면 그때 내가 아우 대신 군에 가겠노라고, 순서만 바꿨지 나라법을 어기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허무하고 맹랑한 한 마디에 아버지는 즉석에서 넘어갔다.
나보다 3년 늦게 세상에 와서 나를 우러러보면서 살아온 아우는 학교에서 일등만 하는 비리비리한 형이 늘 한약을 달고 사는 것을 마음에 걸려한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이번에는 니가 내 대신 가고, 3년 동안 체력 좀 만들어논 담에, 니가 나오면 내가 니 대신 가기로 하자,”는 내 제안에 아우는 동의를 하는 정도가 아니라 기발한 아이디어라며 활짝 반겼다.
내 이름이 박힌 명찰을 달고 아우는 하루 하루 무슨 생각을 하면서 1,000일을 버텼을까?
자신이 국내에 있는 한 형의 미래가 안전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절감한 아우는 제대 직후 한국을 떴다.
그후 40여 년 동안 아우는 한국을 홀로 3번, 짧게 짧게 방문했다.
2015년, 아우의 두번 째 아내한테서 국제전화가 왔다, “갔어요, 암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