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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 Apr 13. 2022

효자

사랑하는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훈육 속에 내가 또다시 조연으로 등장했다

효자들과 나와의 끈질긴 악연이 언제부터였는지 거슬러 올라가 보면 맨 처음은 초등학교 때 단짝 친구와의 교환일기에 등장했던 K라 할 수 있다. 단지 비밀을 공유하기 위해 만들어낸 공동의 화젯거리에 불과했던 K는 우리가 대화를 더해갈수록 ‘관심 가는 남자애’가 되었고, 여자애 둘이서 ‘추근대는’ 게 낯설었던 아홉 살 K는 엄마에게 우리의 존재를 일러바쳤던가보다. 어떤 식으로 전해졌는지 전혀 알 수는 없었지만 K는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엄마가 너네랑 놀지 말래.”라는 말을 던졌고, 그 후 그 아이가 전학을 갔던 2년 후까지 두 번 다시 말을 붙일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우리가 건넨 건 그 또래에서 용인되는 수준의 관심 표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와 친구는 한꺼번에 투명인간이자 악의 축 취급을 받았다. 우리가 전혀 본적도 만난 적도 없는 K의 엄마와 그의 사랑스러운 아들에 의해.


그리고 그 이후 겪은 몇 번의 별스런 경험들은, 당시에는 그저 ‘특이한 남자애’라고만 생각하기도 했지만 돌아보니 ‘모친과의 지극한 애착관계에서 비롯된 행동’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묶을 수 있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 나에게 직접적으로 타격을 주는 건 아무래도 연인관계에 있는 남자들이 효자일 때였다.


가족끼리 서로 잘 아는 관계에서 비공개 연인으로 지냈던 A는 어릴 때부터 홀로 두 형제를 키워오신 자기 엄마의 수고에 감사할 줄 아는 다정한 아들이었다. 엄마에게 비밀은 많아도 거짓말은 하지 않는 그가 내가 보낸 수백 통의 편지를 자기 방 잘 보이는 곳에 보관하고 있고 그 방 청소는 늘 엄마 몫이라는 걸 알았을 때, 그리고 아들의 비밀은 모른 체 해주시기 때문에 ‘너 (걔랑 연애하다가) 상처받는다’라는 말만 던지셨다고 자랑스레 말할 때 나는 불같이 화를 냈다. 우리가 합의한 비밀을 지키는 건 나한테만 조마조마하고 애써야 할 일이냐고. 너희 엄마가 나를 ‘내 아들에게 상처 줄 애’라고 생각하시는 걸 듣고도 너한테 직접 뭐라고 안 하는 게 안심이냐고. 그 이후로 다툼이 부쩍 잦아진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헤어짐의 이유에는 분명히 그가 효자인 까닭이 적지 않은 지분을 차지했다.


효자들이라고 부모님과 티격태격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들은 언제나 자기 부모님이 훌륭한 분이시라는 데 자긍심을 가지는 사람들이고 그런 점을 은연중에 어필하곤 했다. 직접적으로 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하더라도 부모님이 얼마나 사려 깊으신지에 대한 확실한 증거들이 가족의 소소한 에피소드를 통해 흘러나왔다. 그에 비하면 나는 언제나 우리 부모님에 대해 자신이 없었다. 우리 엄마의 무딘 점과 아빠의 예민한 점은 항상 가장 극적인 에피소드를 통해서만 상대방에게 전달되었고, 지나고 생각해보면 우리 부모님은 다른 누가 아닌 나를 통해 상대방 부모님보다 특이하고 경우없(을 것이 예상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딸 사랑이 지나친 아빠가 내 연인을 곤란하게 할 것 같아서 연애 상대는 물론 연애 여부까지 아직 단 한 번도 공개한 적 없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반면에 효자의 부모님들은 지극한 아들사랑에 눈이 먼 탓인지 아들과 교제하는 여자면 일단 ‘예비 며느리’라는 눈금을 들이대곤 했다. 네모칸 안에서 나는 분에 넘치는 예쁜이가 됐다가, 맘에 차지 않지만 그냥 지켜볼만한 애가 됐다가 했고 그 모든 과정이 사랑스러운 그들의 아들이자 다정한 내 애인의 입을 통해 내게 전달됐다. 아주 조심스럽고 예의 바른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유쾌한 경우는 없었다. 맹세코 단 한 번도. 그리고 내 애인보단 효자로, 어쩌면 가부장제 사회의 기득권자로 살아온 세월이 더 긴 그들은 이 모든 전후좌우 사정에서 틀린 점을 찾지 못했다.


싫은 점은 다른데 있지 않다. ‘그런 뜻은 없었던’ 그들이 미처 생각지도 못한 것을 내가 불편하다고 말하고 논리적으로 지적할 때, 무해한 얼굴로 내가 날린 직구를 때려 맞는 것도 모자라 내 속상함까지 배려하는 그 착함이 나를 언제나 악독하고 까탈스럽게 만들었다. 최소한 그런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의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르게 말하면 의도적으로 통제하는 것도 어려운 그 잘못들은 여러 형태로 모습을 바꿔가며 반복되었고, 번번이 사과를 받기만 하다가 결국 내 죄책감에 내가 먼저 나가떨어지곤 했다. 내 손으로 끝낸 관계인데도 결코 후련하지 않은 그런 기분을 잔변감처럼 느끼면서, ‘다시는 착한 남자 만나지 마, 너는 그런 애들이랑 안 맞아’라고 스스로 경고해놓고도 나쁜 놈한테 한번 털리고 나면 엽떡 후에 쿨피스 먹듯이 나는 또다시 순하고 달콤한 착한 남자애들한테서 위안을 받았다. 딱히 필요도 없지만 딱히 마다할 이유도 없는 관계의 독성. 그러니까 네가 그 나이 되도록 그러고 있다고 말한다 해도 반박할 의사가 없다. 그러다 보니 평범한 사람들이 갖는 관계에 대한 절박함이나 목적의식 없이 여기까지 왔다. 여기가 어디냐고? 서른여덟,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만 나이로 서른여섯 사 개월째 되는 비혼 여성.


 달간 우리 집을 자기 집처럼 쉽게 드나들던   명의 효자가 엄마에게 혼난 이야기를 물색없이 내게 꺼냈다. 사랑하는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훈육 속에 내가 또다시 조연으로 등장했다. 악역은 아니지만  선한 역할도 아니다. 너네 엄마지 우리 엄마는 아닌데 엄마는커녕 나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해명할 기회도 없이 조목조목 평가받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리 생각해도 유쾌하지 않아   다시 생각하다 결국 화를 냈다. 어쩔  몰라하는 착한 얼굴이 또다시 눈앞에 나타났다. ‘앞으로  그럴게라는 말까지 모든  데자뷔 같다. 있었던 사람이 어떻게 없었던 사람이 되겠어. 비슷한 일을 계속 겪게  거야. 이건 매일 기승전결이 반복되는 일일연속극이야.  번을   있는  지겨운 광경. 어쩌면  모든  나의 트라우마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피하면 된다. 치료보다 쉬울 테니까.


효자는 나와 어울리지 않아. 연애는 일대일인데 늘 일대다의 관계로 만드는 효자의 붙임성은 도무지 내가 이해하거나 소화할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렇다고 개썅 놈을 원하는 건 아닌데. 착한 후레자식은 과연 존재하지 않는 동물인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연애라는 게 애초에 나랑 안 맞는 액티비티 인지도 모르겠다. 안 해도 인생에 하등 지장 없는데 사실. 시간을 가지고 생각하고 싶지만 나는 왜 이렇게 자기애가 강하고 판단이 빠른지 모르겠다. #난이렇게살아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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