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티제는 이렇게 이해가 되는데 인티제인 우리 아빠는 왜 이해가 안 되니
“뭐?!!! 이게 뭐야, 아빠가 무슨…”
대유행에 과몰입한 나머지 요새 만나는 사람마다 MBTI필터 씌우고 있는 나의 호기심이 가족에까지 이르렀다. 모처럼 만난 아빠에게 모바일로 할 수 있는 간이검사 페이지를 내민 지 몇 분 후, 내게 되돌아오는 화면에서 확인한, 쉽게 인정할 수 없는 결과.
“INTJ? 아빠가? 용의주도한 전략가? 아니 한평생 사람들 모으고 집단과 함께 일하는 걸 즐기며 살아온 우리 아빠가 내향형 I라고? 우리 집안 세 여자들 다 합쳐도 못 따라갈 정도로 감수성 풍부하고 사람들 감정에 예민하게 신경 쓰는 아빠가 감정형 F가 아니라고?”
이래 봬도 왕년에는 심리학 부전공자로서 ‘마이어스-브릭스 타입 인디케이터 Myers–Briggs Type Indicator (MBTI)를 공부했던 난데, 반칠십 년 간 가족으로 살아온 아빠를 내가 잘못 봤을 리가 없다는 묘한 오기가 발동했다.
“분명 질문에 답을 반대로 했거나, 아니면 아빠가 되고 싶은 모습에 체크해서 그럴 거야. 한 문항씩 다시 봐봐.”
그렇게 테스트 문항을 다시 처음으로 되돌려 질문 하나하나를 말로 주고받으며 재확인하기 시작했다.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보다 혼자 생각하는 게 좋다! 매우 그렇다, 그렇다, 보통, 아니다, 아주 아니다. 어떤 거?”
“매우 그렇다”
“아 무슨 매우 그렇다야, 노상 전화통화 계속하고, 사람들 곁에 두려고 하면서.”
“야가 무슨 소리하노. 내 요새 주중에는 맨날 홍천 가서 혼자 농사짓는 거 모르나.”
“그래? 난 몰랐지.”
이미 뭘 묻는 질문인지 잘 보이는 테스트 문항 몇 개를 더 거쳤다.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소음에 극도로 예민하고, 집중하면 몇 시간이고 서재에 있는, 말은 적지 않지만 생각과 결정까지는 언제나 혼자 다 끝내는 아빠의 여러 모습이 떠올랐다. 아빠는 본성이 혼자 있고 사색하고 싶은 사람이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는 여러 가지 증거들이 생각났다.
“뭐?”
“진짜?”
“아 말도 안 돼.”
“아 아빠가 무슨”
“진짜 이거라고? 진짜?”
나의 반박과 아빠의 쐐기가 야무지게 교차하기를 몇 분, 어느새 끝에 다다른 테스트는 처음에 봤던 것과 같은 분포 점수를 보여주며 우리 아빠의 자가 검사에는 오류가 없었고, 결과는 정확히 인티제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와… 진짜라고…”
그래, 주관식으로 이미 확인했다. 아빠는 인티제가 맞았다. 내가 예측했던 아빠의 성격유형은 모두 다 아빠의 과거 행적들로 반론 제기와 설명이 가능했다.
“그러니까 나랑 똑같은 분석가 타입이라서 우리가 토론으로 붙으면 서로 증거 들이미느라 대화가 안 끝나는 거였군.”
“원래 관심은 받고 싶은데 남한테는 별 관심이 없는 타입이니까 내가 오이를 안 먹는 사실 같은 건 30년째 말해도 까먹으면서 본인 이야기는 늘 신파조로 하는 거겠고……”
“내향 직관이 주기능에 외향 사고가 부기능이잖아! 그니까 남들이랑 상의 없이 머릿속에서 혼자 다 생각하고, 결론 내리면 그때부터 밀어붙이는구먼. 고집부리고.”
“그래, 감정표현하는 기능이 약할 줄 알았어. 그런데 하긴 해야 하니까 애써서 해도 괜히 다른 사람 기분 나쁘게 하는 거지. 그러니까 어제도 아빠가 카톡 보내서 언니가 성질났잖아.”
“뭐 이 가시나야!”
아, 말 잘못했다. 성격 이상하다는 말은 하면 안 되는데…
아니지, 성격 특이한 걸 모든 자료가 다 보여주고 있는데 이상하다고 말도 못 하나. 여기 딱 쓰여 있네 ‘본인이 특이한 걸 알고 있는데 특이하다고 하면 기분 나빠한다’. 이게 뭐야...
그니까 인티제가 어떤 사람들인지는 이제 알겠어. 아빠잖아 딱. 근데 인티제는 이렇게 이해가 되는데 우리 아빠는 왜 이해가 안 되니. 오랜만에 만나서 이야기 실컷 하고 재미있게 놀다가 갑자기 왜 저러는지 이해불가… 아우 스트레스받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