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가 어느 땐데 그런 후진 쇼에 나를 써먹으려고
이번 주 예상치도 못했던 고민상담 요청을 받았다. 취미로 만난 그와 나의 사이에 어울리는 시시콜콜하고 재미있는 이야기일 줄 알았는데 주변에 직장생활 오래 한 사람이 나밖에 없다며 생각보다 진지하게 주고받은 커리어와 인정, 장래 계획에 대한 이야기였다. ‘안 그래도 퇴사를 고심하긴 했는데, 실적으로 보나 업무량으로 보나 누구보다 월등했던 자신의 열심이 어느 순간 의심받고 있음을 느껴 억울한 심경’이라는 말로 요약 분석할 수 있는 그의 사연 속에서 아주 같진 않지만 비슷한 억울함을 느끼고 있는 요즈음의 내 모습이 비쳤다. 회사에 나를 갈아 넣을 위인은 못되지만 그래도 성실히 내 몫을 해내고 있다 생각했는데 주제 파악 안 되는 꼰대에게 하루아침에 태도 불량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게 된 내가.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고 내가 여기서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거취를 생각해보라며, 나 자신에게 속으로 했던 말을 똑같이 그에게 건넸더니 그가 어느 순간 탁 터졌다. “저 정말 잘하고 싶었나 봐요.” 라며 우는 걸 달래지도 탓하지도 않고 고쳐 말해주었다. “잘하고 싶었다기보다 잘하는 나를 인정받고 싶었는데 그게 안되니까 속상하고 억울한 거죠. 나는 이미 잘하고 있었다는 확신이 있으니까.”
요새는 자기에게 부족함이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며 그는 대학생 때 감명 깊게 읽었다는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공중그네 이야기를 꺼냈다.
“그 소설 보면 공중그네 타는 곡예사 얘기가 나오거든요. 서커스에서 공중그네에 매달려서 흔들리다가 맞은편 공중그네에 달린 곡예사랑 손을 맞잡고 그쪽으로 건너가는 거예요. 뭔지 아시겠죠. 근데 그 사람이 계속 실패해요. 그게 안돼서 처음에는 상대편이 손을 안 뻗는다고 생각하면서 계속 시도하고, 시도하고, 실패를 계속하다가 결국 손을 충분히 안 뻗는 쪽이 자기라는 걸 깨달아요.”
“손을 더 안 뻗은 게 자기 탓인가 싶다는 거죠? 그래서 더 뻗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좀 더 열심히 해야 했나. 남들처럼 수당 안 받고 시간 외 근무하고, 남들보다 몇십 건 더 쳐내고도 더 일하고, 매일 야근하고 그렇게 더 열심히 한다고 보여줬어야 했나 하고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내가 손을 안 뻗었다면 안 뻗은 이유도 있지 않을까요. 뻗고 싶지 않았던 거잖아요. 그렇게 힘껏 뻗어서까지 곡예를 성공하고 싶지 않았거나,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던 거지. 그럴 수도 있지 않나. 사실 내가 죽어라 해서 공중그네 성공하는 것보다 접시 돌리기 실력이 더 나은 사람일 수도 있잖아. 그런데 그래도 내가 더 열심히 손 뻗어야지 하고 안되는 거 억지로 애쓰고 있으면 접시 돌리기 잘하는지 안 하는지 시험해볼 기회는 영영 없지 않겠어요? 공중그네 죽어라 안 하고 싶은 것도, 해봤는데 안 되는 것도 다 이유가 있고 그래도 된다고 생각해요.”
늘 가슴속에 품고 자신을 다잡던 공중그네의 교훈을 와장창 깨버린 나에게 그는 원망 대신 감탄을 보냈다. 그렇게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며. 사람은 참 다르구나를 느끼며 나는 내가 지금 타고 있는 공중그네에서 언제 내려올지를 가만 따져보았다. 진자운동만 하면서 내가 달린 곳에서 새로운 방식의 곡예를 펼치는 것도 충분히 할 수 있지만 그런 나를 자격미달의 곡예사로 평가하는 이가 있는 한 그런 취급받으며 계속 매달려있을 순 없지. 때가 어느 땐데 그런 후진 쇼에 나를 써먹으려고. 서커스단이 각성해서 프로그램을 전체 개편하지 않는 이상 나는 손을 더 뻗고 싶지 않다. 그와의 전화통화 끝에 나는 내 결론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