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하루하루 내일의 추억이 될 행복을 쌓으며 지내고 있어요
“잘 지내니? 봄 햇살이 좋은데 네가 생각이 나서. 매번 봄이 되고 목련이 피는 계절이 오면 그때의 그 햇살과 바람이 기억이 난단다. 잘 지내렴”
언니, 부산에는 더 일찍 봄꽃이 폈겠죠? 여기는 벚꽃이 한창이에요. 특별한 일이 없어도 봄에는 괜히 즐겁고 더 희망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언니도 잘 지내죠? 아이들도 이제 엄청 많이 컸겠네요. 만나지 못한 시간이 많이 흘렀어요.
어릴 때는 우리가 만나는 게 평범하고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에 와서 보니 그 모든 평범함이 당연하지 않았네요. 우리 가족도, 우리가 속했던 공동체도, 우리의 관계도 시간 지나면 변하고 좋은 날은 영원하지 않다는 걸, 그때는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될 만큼 언니는 나에게, 우리 가족에게 편하고 당연한 사람이었나 봐요.
아빠와 정서적으로 물리적으로 좀 더 분리하고 살게 된 요즘, 저는 비로소 인생의 다른 국면을 맞이한 것 같아요. 여전히 완전한 독립이라 할 순 없고 많은 부분 아빠를 의지하긴 하지만 그렇게 끈을 남겨두는 것이 아빠도 원하는 편이겠거니 하는 혼자만의 변명을 하고 있어요. 저라는 사람을 만들고 제 어린 시절을 구성했던 많은 부분이 아빠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아빠와 거리를 둔다는 게 그 모든 것들과 작별하는 것이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일 년 반쯤 지난 지금도 익숙하지만은 않아요. 애초에 대체할 수 있는 건 없겠지만 비어 있는 건 여전히 비어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작별하고 싶은 것들로부터 어른처럼 작별했다고 생각했는데 요새도 아는 누구를 만날세라 동네를 돌아다닐 때 조금 긴장하고 역앞이나 아파트 입구에서도 좌우를 살피는 날 발견하면 그저 도망친 것이었나 싶기도 해요. 아빠한테 소소하게 무슨 일이 생겨도 딱히 연락할 방법이 없을 때, 아빠의 보호자가 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는 이게 아니라 다른 방식이어야 했나 밤새 여러번 생각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선택을 후회하진 않아요. 언제가 됐든 필요한 일이었고 좀 더 앞당겨졌을 뿐이겠죠.
언니처럼 지난 세월을 공유한 사람들에게 반가운 연락이 올때면, 지금은 없는 것들, 그러나 분명했던 행복의 기억들이 여전히 내 마음을 지켜주고 있다고 느껴요. 사랑과 기쁨, 믿음과 행복, 온갖 예쁜 추억들 속에 아주 당연하게 언니도 있고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들은 함께이던 누군가가 곁에 없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내가 그 때의 나와 다르기 때문이겠죠. 어떻게든 이전의 나보다는 좀 더 나은 모습으로 달라졌길 바라며, 오늘도 하루하루 내일의 추억이 될 행복을 쌓으며 지내고 있어요 전.
줄곧 궁금해도 먼저 물어보지 못하는 안부지만, 이 글을 빌어 언니와 언니의 가족의 안녕을 바라봅니다. 지하철역으로 가는 도림천의 벚꽃길 풍경을 함께 보낼게요. 보고싶어요 언니. 잘 지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