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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 Apr 10. 2022

답장

오늘도 하루하루 내일의 추억이 될 행복을 쌓으며 지내고 있어요

“잘 지내니? 봄 햇살이 좋은데 네가 생각이 나서. 매번 봄이 되고 목련이 피는 계절이 오면 그때의 그 햇살과 바람이 기억이 난단다. 잘 지내렴”




언니, 부산에는  일찍 봄꽃이 폈겠죠? 여기는 벚꽃이 한창이에요. 특별한 일이 없어도 봄에는 괜히 즐겁고  희망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  같아요. 언니도  지내죠? 아이들도 이제 엄청 많이 컸겠네요. 만나지 못한 시간이 많이 흘렀어요.


어릴 때는 우리가 만나는 게 평범하고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에 와서 보니 그 모든 평범함이 당연하지 않았네요. 우리 가족도, 우리가 속했던 공동체도, 우리의 관계도 시간 지나면 변하고 좋은 날은 영원하지 않다는 걸, 그때는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될 만큼 언니는 나에게, 우리 가족에게 편하고 당연한 사람이었나 봐요.


아빠와 정서적으로 물리적으로   분리하고 살게  요즘, 저는 비로소 인생의 다른 국면을 맞이한  같아요. 여전히 완전한 독립이라   없고 많은 부분 아빠를 의지하긴 하지만 그렇게 끈을 남겨두는 것이 아빠도 원하는 편이겠거니 하는 혼자만의 변명을 하고 있어요. 저라는 사람을 만들고  어린 시절을 구성했던 많은 부분이 아빠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아빠와 거리를 둔다는   모든 것들과 작별하는 것이라는  알고는 있었지만   반쯤 지난 지금도 익숙하지만은 않아요. 애초에 대체할  있는  없겠지만 비어 있는  여전히 비어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작별하고 싶은 것들로부터 어른처럼 작별했다고 생각했는데 요새도 아는 누구를 만날세라 동네를 돌아다닐  조금 긴장하고 역앞이나 아파트 입구에서도 좌우를 살피는  발견하면 그저 도망친 것이었나 싶기도 해요. 아빠한테 소소하게 무슨 일이 생겨도 딱히 연락할 방법이 없을 , 아빠의 보호자가 내가 아니라는 생각이  때는 이게 아니라 다른 방식이어야 했나 밤새 여러번 생각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선택을 후회하진 않아요. 언제가 됐든 필요한 일이었고   앞당겨졌을 뿐이겠죠.


언니처럼 지난 세월을 공유한 사람들에게 반가운 연락이 올때면, 지금은 없는 것들, 그러나 분명했던 행복의 기억들이 여전히  마음을 지켜주고 있다고 느껴요. 사랑과 기쁨, 믿음과 행복, 온갖 예쁜 추억들 속에 아주 당연하게 언니도 고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들은 함께이던 누군가가 곁에 없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내가 그 때의 나와 다르기 때문이겠죠. 어떻게든 이전의 나보다는 좀 더 나은 모습으로 달라졌길 바라며, 오늘도 하루하루 내일의 추억이 될 행복을 쌓으며 지내고 있어요 전.


줄곧 궁금해도 먼저 물어보지 못하는 안부지만, 이 글을 빌어 언니와 언니의 가족의 안녕을 바라봅니다. 지하철역으로 가는 도림천의 벚꽃길 풍경을 함께 보낼게요. 보고싶어요 언니. 잘 지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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